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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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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희수
댓글 0건 조회 879회 작성일 25-11-1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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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는가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를 읽고.


주인공 모모는 파리 벨빌 지구의 다인종·하층민 거주지에서 자라난 고아이다. 부모에게 버려진 그는 유대인 노년 여성 로자 할머니가 운영하는 임시 거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로자 할머니는 과거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매춘부였으며, 지금은 병과 노쇠로 삶의 끝에 가까워지고 있다. 둘의 관계는 동일한 결핍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연대였다. 세상은 이들을 주변부로 내몰았지만, 그 안에서 서로를 지탱하는 작은 온기가 생겨났다.

모모는 할머니의 쇠약해지는 몸을 지켜보며 살아 있음의 의미가 변해가는 순간들을 가까이에서 목격한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점차 힘들어지고, 기억이 흐려지며,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는 시간들 속에서 그는 삶이 단순한 생물학적 지속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견디고 돌보는 행위 속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배운다. 삶은 혼자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비로소 형태를 갖는다는 깨달음이었다.

로자 할머니는 병원에서 기계에 의존한 연명을 원치 않는다. 그녀의 거부는 삶의 가치를 길이가 아니라 방식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조용한 선언이다. 모모는 결국 그녀를 지하실로 옮겨 마지막 순간을 지키는 결정을 내린다. 이 장면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겹쳐지는 지점이며, 보호받던 아이였던 모모가 자신의 생을 직접 감당해야 하는 존재로 이동하는 첫 순간이기도 하다. 남겨진 것은 단순한 ‘앞에 놓인 생’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책임’이었다.


이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질문은 이후 전개를 관통하는 중심축이 된다.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이 물음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인지 확인하려는 절실한 요구였다. 하밀 할아버지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짧은 침묵 끝에 내놓은 “그렇단다”라는 말은 사랑 없이 살아본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백이었으며, 동시에 그런 진실을 아이에게 건네야 한다는 죄스러움이 담긴 고개 숙임이었다. 그 대답은 모모에게 “너도 사랑 없이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비통한 현실처럼 들렸고, 결국 울음으로 이어졌다. 그 울음에는 사랑받지 못한 생의 고통, 앞날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인지 묻는 절규가 한꺼번에 얽혀 있었다.


이 장면은 소설 전체의 질문을 가장 명확하게 제시한다.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는가. 작가는 사랑이 없어도 “살아지기는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지는 삶은 고립에 쉽게 잠식되며, 인간을 서서히 닳게 만든다. 사랑은 생존의 조건은 아닐지라도, 삶이 삶답게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구조이다. 모모와 로자 할머니가 서로를 돌보며 버텨낸 시간은 바로 그 구조의 형태였고, 서로의 결핍을 메운 것은 제도가 아닌 조용한 관계의 온기였다.


로자 할머니가 떠난 이후 남겨진 것은 결핍 그 자체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말하는 핵심은 결핍의 지속이 아니라, 그 결핍 이후의 방향이다. 상실은 삶의 종결이 아니라, 남은 자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출발점이다. 모모는 잃어버린 사랑을 대체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빈자리를 있는 그대로 견디며, 스스로의 삶을 다시 구성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서 인간은 다시 관계를 갈망하는 존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한다. 모모에게 주어진 것은 새로운 보호자가 아니라, 스스로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야 하는 책임이다. 사랑을 ‘받는 존재’에서 ‘사랑이 어떤 형태였는지 기억하는 존재’로 이동하는 과정. 그 기억이 앞으로의 생을 살아내는 가장 작은 기준이 된다.

작품은 삶을 미화하지 않는다. 가난과 노화, 정체성의 불안, 죽음의 그림자는 줄곧 등장한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삶은 아름답다”는 평평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결핍 속에서도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고, 그 결핍을 품은 채 살아내려는 태도에서 삶의 의미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책을 덮고 나면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사랑의 부재를 어떻게 견디고 있는가.

누군가에게 지켜지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는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삶이 충족의 연속이 아니라 결핍 이후의 태도로 결정된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이 시간을 지나가야 하는가.


『자기 앞의 생』은 이렇게 말한다.

삶은 결핍과 상실을 피할 수 없지만,

그 결핍을 견디며 의미를 만들어가는 인간의 태도 속에서

비로소 자기 앞의 생이 조금씩 완성된다.

남은 자의 삶은 빈자리를 채우는 과정이 아니라,

그 빈자리를 품은 채 하루를 살아내려는 의지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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