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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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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근
댓글 0건 조회 879회 작성일 25-11-20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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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씨앗이 심어졌는지 정체를 알 수 없던 새싹들이 어느새 이파리가 무성한 나무로 자라듯, 한때는 끝없이 열려만 보이던 나의 미래도 조금씩 모양을 갖춰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가 쉽사리 의식하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시간이 더 흘러가다 보면, 그 무성했던 나무도 마침내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마른 나무가 된다는 점이다. 싱그럽던 스무 살 초반까지의 기억으로는 영원히 청춘이 이어질 것 처럼 보였지만, 푸르른 녹음의 여름과 오색 단풍의 가을이 지나면서 하나, 둘 잎이 떨어지듯 우리의 화려한 순간들도 서서히 저물어 간다. 그렇게 한 겹, 한 겹 느리지만 계속하여 떨어지면서 드러나는 가지들은 우리의 특별해 보였던 삶이 어느 순간 점점 뻔한 일상적인 삶으로 변해가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고, 그 열매가 떨어진 자리에는 다시 씨앗이 남아 새로운 생명이 잉태한다. 생명이 사라지는 자리와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자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에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는 마음이 마냥 슬프지 만은 않게 되고, 그 빈자리 어딘가 담담한 수긍과 잔잔한 기대가 함께 스며들게 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떨어지는 잎, 낙화처럼 나의 찬란한 젊은이 과거로 남게 되고, 이제는 인생의 다음 장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 가장 중요한 마음은 얼마 남지 않은 꽃잎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기꺼이 그것을 떼어내는 용기를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꽃이 지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자연의 엄숙한 섭리인 것처럼, 이는 가야 할 때가 다가온다는 것을,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준비해야 함을 선언해 주는 것이다. 시든 꽃잎을 붙잡고 다시 봄을 연장하려 애쓰기보다, 다가온 변화를 덤덤히 덤덤히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낙화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앙상한 가지 속에서 단단히 여물어갈 내면의 씨앗, 즉 다음 장을 위한 나의 참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분분한 낙화

결별을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한 잔은 떠나간 너를 위하여, 한 잔은 너와 나의 영원했던 사랑을 위하여...’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망망대해 어딘가 어부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를 타며 전달된 저 두 마디는, 솔직한 감정을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하고 낭만이란 걸 애써 잊은 채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절실하면서도 하나의 위로와 같이 다가왔다. 우리는 무엇이든 오래 붙들고 더 많이 가지려는 문화 속에서, 오래 매달리는 사람을 더 간절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깔끔하게 물러나는 사람은 어쩐지 차갑고 이기적이거나, 혹은 포기가 빠른 사람으로 보이기 부기지수다. 그러나 한 계절을 충분히 살아낸 뒤, 자신이 설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조용히 걸어 나오는 용기도 필요함을, 그리고 제때 물러나는 법을 아는 사람만이 다음 계절의 씨앗을 품을 수 있고, 자기 삶의 다음 장을 온전히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음을 우리는 몰랐다. 이제는 나는 바래본다. 언젠가 찾아올 여러 전환과 이별의 순간에, 흩날리는 꽃잎을 떠올리며 조금 더 단단하고 담담하게, 차분하게 걸어 나갈 수 있기를, 기꺼이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길 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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