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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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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인
댓글 0건 조회 6,032회 작성일 16-07-1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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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하는 삶> - 이창래 저


  “참혹한 전쟁 속에서 피어난 아름답고 순결한 사랑, 일본군 위안부의 참상에 충격을 받아 집필한 작품”이라는 작품 소개와 함께 나는 이 책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일본군 위안부의 참상에 충격을 받아 집필한 작품이라는 소개를 접하고서 나는 이 작품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한국의 젠더 문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본의 식민 정치, 그 중에서도 전쟁 시기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구나. 게다가 이 작품은 한국계 일본인으로서 미국에서 노년기 생활을 보내고 있는 남자를 주인공을 설정하여 이주 문제에까지 맞닿아 있었다.


   작품초반 부분은 지나치도록 평화롭고 평온했는데, 사실 이는 반전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전쟁과 위안부 문제에서의 가해자이지만 동시에 피해자이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물로서, 그리고 그 이후의 그의 한국인도, 일본인도, 결국 미국인도 아닌 그의 정체성,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이방인으로서의 그의 정체성과 삶을 그려내는데 긴장감을 높여주는 장치와도 같았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성실하고 매력이 넘치는 부동산업자 리브 크로퍼드가 은퇴한 70대 노인 프랭클린 하타에게 집을 팔라고 권유하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작품의 중후분부를 구성하는 핵심 이야기 축으로 등장하며, 결국 지나온 주인공 하타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조선인 위안부 ‘끝애’라는 인물에 주목해볼 수 있다. ‘끝애’는 양반가의 네 번째 딸로 태어나 이름이 '끝애'로 교양을 갖추었으나,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자 막내인 남동생이 징병으로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위안부로 보내지게 된다. 집안의 남동생의 안위와 보호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고 허락해야 하는 위안부로 팔려나간 것이다. 이 사실 자체도 ‘여성이 남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당대의 사고와 여성관을 그대로 보여주며, 그것은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던 것이다. 또 위안부로서의 삶이라는 것도 ‘여성은 남성을 위한 성적 쾌락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왜 여성은 남성을 위해 그 어떤 희생 -자신의 몸을 파는 것에 더해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도 무릅쓰고, 남성을 위한 성적 유희와 향락의 대상, 장난감이 되어야 했는가! 하타에게 ‘제발 나를 죽여주세요.’하고 애원하고 간청하던 끝애처럼, 차라리 죽고 싶었지만 ‘죽을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많은 조선인 위안부들…. 너무도 무서우리만큼 담담하고 잔잔한 문체와 함께, 그러나 정말 생생하게 현실감 넘치는 사건들에 대한 묘사로 마치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듯한 비명과 절망에 휩싸인 그들의 삶의 한 자락, 그 이야기들….


   한편, 나는 특히 이 작품의 제목에 주목해보고자 했다. ‘척하는 삶’을 살았던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뿐 아니라 가족이, 나아가서는 조선이란 국가가 일본의 식민 아래 전쟁 속에서 처한 상황 때문에 ‘척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던 끝애…. 온전한 의미에서 자신의 삶이라 할 수 없는, 마치 ‘타자화’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 무엇을 위해, 그들은 그런 삶을 살아야 했고, 아니 왜 그런 의지로 살려고 자처했을까.


   주인공 하타는 현재 70대 노인으로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훌륭한 미국 시민’으로서 주변 이웃들에게 인정받으며 –겉으로는 참으로 잔잔하고 평화롭게- 살아간다. 하지만 사실 그를 온전한 정신으로 가만히 놓아두지 못하게 하는 그의 기억 속의 잔상에는 바로 그 자신의 20대 청년 시절의 기억이 존재한다. 조선인 위안부를 착취하고 살해하기까지 했던 버마의 한 일본군 부대에서 군의관으로 일한 하타는 끔찍한 기억을 가슴에 묻은 채 미국으로 이주했던 것이다. ‘척하는 삶’이라는 작품의 제목은 바로 이런 참혹한 역사적 상처를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냥 ‘모범적인 시민인 척’ 살아가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척하는 삶’을 살아가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버려야 했던 그와 많은 이들의 여러 삶들의 기억과 내면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자신의 삶과 진정한 모습을 감추고 마치 다른 이로서의 삶을 살면서 ‘척하는 삶’을 형상화하고 있는 그들은 결국 어디에도 진정으로 속하지 못한 채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조선인 위안부 끝애의 집단 강간과 학살의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그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속마음, 내면, 진실을 말하지 못한 채 자신의 깊은 마음속 어딘가에 감춰두고 영원히 감금해놓을 뿐이다. 그것을 ‘미국의 모범시민’이라는 명성 하에 완벽하게 포장해서 감춰 놓으려 하는 것이다. 조선인 위안부 끝애를 사랑했던 청년 시절의 과거 기억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이자 그의 발목을 잡아놓는 끈과도 같은데, 그는 의사로서도 일본인으로서도 결혼한 평범한 한 가정의 남자로서도 살아가는 삶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독신 남자로서의 여생을 살아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에게는 그 기억이 자신이 변화시킬 수 없었던, 그래서 놓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아픈 사랑이자 과거의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낙인된 기억과도 같은 것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척하는 삶’을 위해 자신이 입양한 한국인 소녀 ‘서니’에 대한 강렬한 부성애를 지니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보다 훌륭한 미국 시민으로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된다.


   사실 이 작품은 현재와 과거를 드나들며 역순행적으로 흘러가는 줄거리 구성보다 주인공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며 읽는 편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겉으로는 참으로 평화롭고 모범적인 이 주인공의 내면은 사실 정말 복잡미묘하다. 끝애에 대한 사랑과 죄책감, 속죄의식은 그를 결혼한 평범한 한 가정의 남편으로도 살아가지 못하고 평생을 혼자 살아가게 만들었으며, 끝애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감정은 자신이 입양한 한국인 여자 아이 서니에게 투영되면서도 서니를 훌륭한 미국 시민으로 키워내는 것이 그의 여생의 목표가 되며, 서니에게 진정한 사랑의 감정과 부성애를 느끼면서도 서니가 가출해 흑인 남자의 아기를 임신했을 때, 딸의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해주면서 진정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해주지도 못한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했던 그의 정체성…. 사실 이것은 그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대 일본에 지배당하는 조선의 식민지 현실과 전쟁 상황이 맞물리면서 발생했던 끔찍한 문제가 아닐까. 하타를 단순히 ‘가해자’, ‘악’이라는 이름만으로 가둘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상과 현실 상황을 고려하는 일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서니와 끝애와 같은 조선 여성들의 삶과 가장 가깝게 연결된 하타의 삶을 그려내면서, 남성의 시선을 따라가지만 자연스럽게 우리네 여성들의 젠더 문제를, 그래서 그간 제대로 다뤄지고 고찰되지 못했던 ‘위안부 문제’를함께 끌어들여 진솔하게 그려내는 이 작품은 우리에게 읽을 때보다도 읽고 나서 더 많은 혼란을 던져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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