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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태어난게 잘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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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인
댓글 0건 조회 5,655회 작성일 15-12-1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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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태어난게 잘못이야 - 토머스 게이건 저


  이 나라는 참 이상하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이지만, 기차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시설은 형편없고, 국민들이 아파도 국가는 개인에게 책임을 넘기며 돌보지 않는다. 국민들은 하루 종일 죽도록 일하지만 저축은커녕 평생 빚에 허덕인다. 전 세계 항우울제의 2/3가 이 나라에서 소비되고,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세계 최하위이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나라의 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30점을 겨우 넘겨 148개국 중 114위에 올랐다. 이는 베트남은 물론 65.7점의 쿠바나 61.5점의 엘살바도르의 절반도 안되는 수치이다.

 

   이 나라는 어디일까. 미국이다. 그렇다. 한국이 ‘선진국’의 대명사라고 부르는 나라 말이다. 물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다. 2015년 미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은 5만 6천 불로 2만 6천 불인 한국의 2배가 넘는 수치이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우리의 목표가 그저 수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미국을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늘 미국을 표방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체제는 이미 미국과 많이 닮아있다. 최근 대두가 되고 있는 가계부채의 증가와 더불어 소득 양극화, 기업 탈규제, 탈제조업화, 천문학적인 등록금을 비롯하여 청년들의 일자리까지 위협하는 고용 불안정이 그렇다. 미국보다 그나마 덜 미국적인 부분이 대중교통과 의료, 전기, 수도 등의 공공서비스인데, 이 부분도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고 ‘개선’이 아닌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민영화’라는 말이 들릴 때마다 국민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는 부분이 힘들어진다. 물론 정부는 ‘민영화’라는 말 대신 ‘선진화’나 ‘개혁’이라는 말을 즐겨쓰지만 말이다.

 

   한국 사람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지만 능률은 가장 떨어지고 삶의 만족도는 가장 낮은 편이라고 한다. 미국처럼 말이다. ‘유연 출퇴근제’와 같은 진보적인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CEO의 마음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어쩌면 미국과 상당히 많이 닮아있는 것이다. 카페에서 한 시간 아르바이트를 해도 그 커피를 사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 사회구조가 그렇다. 미국에서 단전 사태가 발생해 끼니도 거르고 응급 복구를 하다가 피자를 먹었다는 이유 하나로 해고된 사건은 최근의 노동 시장 개혁을 추진하는 한국과 많이 닮았다. 피자 한 조각의 문제가 아니라 어이없이 해고되는, 파리와 같은 노동자의 목숨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 사회를 이해하기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100년간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낡아버린 이념의 시대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안보’를 주장하는 헤드라인을 단 신문이 1면에 걸리는 나라에 살고 있다. 이것은 좌우의 대립이 아니라 ‘상식’의 문제다. 우리가 우리나라를 볼 때에 자괴감이 드는 이유는, 모든 대립과 갈등이 ‘이념’의 문제로 환원되는 대한민국의 사회성 때문이며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00년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나라와 참 많이 닮아 있는 미국은 대한민국의 모든 제도와 문화의 기준을 이 나라에 두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단어만 보아도 미국은 현재까지도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숨쉬는 꿈이 아닌가.

 

   미국은 완전하고 가장 선진적인 사회라고 볼 수 있을까. 완벽한 안보를 갖추고 가장 잘 사는 나라, 민주주의의 나라일까. 미국인이 이야기하는 미국은 어떨까. 이 책의 작가 토머스 게이건은 하버드를 졸업한 변호사이다. 그는 미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자본주의적인 나라의 국민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사는지 보여준다. 작가가 바라보는 미국인은 더 열심히 일할수록 더 부채(빚)의 늪으로 빠져드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이 책의 초점은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독일의 사회에 맞추어져 있다. 분단 국가의 역사를 가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독일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다. 그동안 한국 언론이 유럽에 대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해왔는지,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복지 때문에 유럽이 망하고 있다거나 등의 이야기 말이다. 물론 모두 거짓이다. 미국은 경쟁과 효율을 주장하며 무자비하게 임금을 내리고 직원을 해고하였다. 이런 비인간적인 기업들을 공권력으로 보호했던 미국은 결국 제조업을 포기하게 되었고,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독일을 비롯한 프랑스, 스웨덴 등의 유럽국가는 미국과는 정반대의 정책을 펼침으로써 첨단 제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고, 세계가 금융위기로 괴로워할 때 사회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수출 총액에서 세계 선두를 달린 것은 중국이 아니라 ‘유럽사회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인 독일이었다. 독일은 순채권국이다. 힘 빠진 미국처럼 순채무국이 아니다. 2009년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은 대략 3조 달러 이상의 순대외부채를 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위험한 순대외부채가 해마다 1조 달러씩 늘어난다는 것이다.” (131쪽)

 

   미국이 부채의 늪에 빠져 있을 때, 독일이 착실하게 경제 성장을 이뤄 온 비결이 뭘까. 노동자들이 충분한 임금과 휴가를 받도록 하고, 기업이 직원들을 쉽게 해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도 삶이 어려운 국민들에게는 높은 수준의 복지혜택을 베푸는 것이다. 즉, 한국이나 미국의 정책인 저임금, 비인간적인 경쟁, 노동 유연성과는 다르게 진정한 경쟁력을 얻은 것이다.

 

   독일의 노동시장은 유연하지 않고, 저임금 노동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힘이 센 동네이다. 현장 노동자도 노사공동결정제도 덕분에 기업의 경영에 대한 정보를 줄줄이 꿰고 있다. 경영자는 노동자의 동의 없이 기업을 이끌어나갈 수 없기 때문에 함부로 행동하지 못한다. 또한, 독일은 기업평의회가 합의해주지 않으면 인력 구조조정도 불가능하며, 부득이한 경우에는 해고수당이 지급된다. 국민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이러한 환경 덕분에 제조업이 건강하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당연한 권리를 너무 많이 포기하고 하는 것이 아닌지, 사람답게 사는 권리를 갖지 못하는데 익숙한 것은 아닌지, 정상과 상식이 아닌 것에 매몰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것은 잘못이 아니다. 당연한 권리를 우리가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짜로 주워지는 권리는 없다. 미국의 사회 지도층은 자기들이 잘 사는 나라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그 잘난 하버드 출신의 변호사께서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가 높아지면 곧장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편협한 한국의 언론에 이제 그만 속아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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