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아포칼립토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서유진
댓글 0건 조회 6,399회 작성일 15-09-30 23:00

본문

아포칼립토(Aplocalypto), 2006

 

 영화는 “거대 문명은 외세에 정복 당하기전 이미 내부로부터 붕괴되었다”라는 문구로 시작되며, 이 표현을 전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영화는 이야기 구성에 있어 크게 두 분류의 집단 대립을 보여주는데 그 첫 번째는 마야 문명 안에서 명백한 침략자인 마야 제국과 피지배자인 표범 발의 마을의 대립이며 두 번째는 영화 말미에나 잠깐 등장하는 침략자인 유럽 문명과 마야 문명 간의 관계가 그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하였던 “마야 제국이라는 거대한 문명의 붕괴는 에스파냐라는 외세에 의해 정복당하기 전에 이미 손 쓸 수 없을 만큼 부패하였다”라는 문구에 의해 이러한 대립은 무의미해지고 베타적인 시선으로 바라 본 마야 문명의 야만적인 모습만이 남게 되었다.

 

 ‘표범 발’은 마야 문명에 속하는 작은 부족 마을 족장의 아들로 건재한 아버지 아래에서 또래들과 함께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그들을 둘러싼 우림은 맹수와 독충이 즐비한 위협적인 곳이지만, 선조 때부터 살아온 삶의 터전이자 요람이기에 위협적이지 않다. 그런 그들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위험은 바로 부족을 습격하는 같은 마야인 들이다.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던 마야제국은 인신공양을 통해 활로를 찾고 민심을 다스리고자 표범 발의 마을을 습격하게 되고, 그로 인해 그의 마을은 하루 아침에 풍비박산 나고 만다.

 

 표범 발의 마을을 습격한 마야 제국의 이미지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남미 인디언 문명의 부정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미신을 숭배하고 피에 굶주린 사람들은 인신 공양이라는 무의미한 희생을 강요하고, 최선의 사회 이념이라고 얘기되는 민주주의와 동떨어진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명확한 경계는 화려하고 장엄한 건축물들에 대비되어 그들의 의식 수준을 더욱 초라하게 비춘다. 이러한 불편한 시선으로부터 주인공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광활하고 거친 대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그들은 신비로우며, 동식물 심지어 바람과 같은 자연물과의 영적 접촉을 시도하는 친자연적이고 온화한 이 선한 인디언들은 ‘동양 아시아’와는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을 보여주지만 이들 또한 야만인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처음에 언급하였던 문구를 되 내어 볼 때, 영화에서 나타나는 마야 문명은 선악을 떠나서 야만적이고 미개하다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그 절정은 탐욕스러운 인신공양 문화에서 잘 나타난다.

 

 실제로 남아메리카 인디언인 아즈텍이나 마야 문명에서 종교적 또는 사회적 문제를 이유로 인신 공양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나, 문제는 이러한 문화가 그들의 문명을 대변하는 이미지로 포장되어 인종적 또는 문화적 열등감을 나타내는데 사용된다는 점이다. 남미 원주민 문명은 현대인의 시야에 부적절한 비인륜적 풍습을 통해 단순히 야만적이고 미개한 문명으로 그려지곤 한다. 동 시대의 유럽이나 아시아 문명과 비교할 때 제련과 같은 기술적인 부분의 발달 수준이 더딜 수는 있으나, 혹독한 자연 환경과 가축이나 탄수화물 주식과 같이 충분하지 않은 기초 자원 조건 하에서 제국을 이루는 문명은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에 가깝게 발달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즉 인디언 문명은 다른 문명에 비해 미개한 것이 아니라, 다른 조건에서 독특한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다. 우림 지대에서 거대 석조 건축물을 건설하고, 고도의 천문학적 지식과 의무 교육 등 우수한 사회를 이루었으며, 나라의 안정과 원활한 인신공양을 위해 시행되었던 아즈텍의 인간 목장은 역설적이지만 해당 문명이 나름의 체계적인 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고증을 바탕으로 한 사실 주의적인 영화라는 선전에 걸맞게 영화 <아포칼립토>는 이전까지 표현되지 못했던 남미의 화려한 문화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였으나, 영화가 취하고 있는 스스로 붕괴한 미개한 문명에 대한 제국의 침략 당위성 제공이라는 표면적인 입장은 다소 불편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주제 의식을 배제한다면 문명의 허무와 약육강식에 대한 처절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