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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던 엄마, 엄마를 원하지 않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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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위주형
댓글 0건 조회 6,332회 작성일 15-10-06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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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빈에 대하여 >

 

 

 

 

인간의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인 ‘출산’. 현대 사회는 모성애의 신화를 강조하며 임신과 출산을 축복으로 여긴다. 사회의 그 누구도, 심지어 주인공인 에바의 남편마저 그녀의 두려움과 박탈감을 이해하지 못한다. <케빈에 대하여>는 경쟁적인 사회 속에서 어떻게든 엄마가 되고자 고군분투하는 한 여인의 기록이다. 이 긴 이야기는 '엄마가 된다는 것'의 공포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 공포다.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에바는 임신 이전부터 잉태의 첫 순간, 그리고 출산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불안과 두려움을 경험한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경제가 활황을 누리던 1980년대 중반, 자신의 똑똑함과 유능함으로 사회적 성공과 경제적 풍요를 누리던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여성이 남성들과 똑같이 고등교육을 받고 똑같이 사회에 진출하여 열심히 노력하면 대등한 지위와 성공을 누릴 수 있었던 첫 세대에 속해 있었다. 그런 에바가 사랑하는 남자와 가정을 꾸리면서 임신과 자녀양육이라는 현실에 부딪치게 된다. 에바에게 임신과 출산, 양육은 생물적이면서 동시에 문화적인 경험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헤쳐 나가는 에바의 눈을 통해 우리는 간단하게 위대한 모성애, 순수한 사랑으로 포장된 부모-자식 관계의 속살을 볼 수 있다.

 

가임기 치고는 늦은 나이인 서른일곱에 임신을 결심하게 되는 계기부터 의미심장하다. 에바가 자식을 갖기로 마음을 정한 것은 어느 날 남편 프랭클린이 당한 작은 사고 때문이었다. 단지 차가 고장난 것 뿐이었지만 남편과 연락이 두절된 몇 시간을 겪으면서 에바는 남편의 부재 시 '벽난로 옆에 던져진 양말 외에 뭔가가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기를 원하게 된다. 즉, 에바에게 자식이란 일차적으로 사랑하는 남편의 복제물, 대용품으로서의 의미였다. 요즘 트렌드인 아동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성숙한 부모의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의미를 걷어내면 에바는 근본적으로 그녀의 아기에게 적대적이다. 에바는 아기를 자신의 몸에 들어온 침입자로 인식했으며, 늘 주의를 기울여 유지하던 날씬한 몸매가 망가지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엄마로서의 책임을 두려워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의 몸을 아기를 위한 매개체로 대우하는 남편과 사회에 분통을 터뜨린다. 에바는 아기 때문에 그녀가 사랑하던 일을 중단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희생을 치르고 태어난 아기는 전혀 보상이 되지 못했다. 케빈은 에바에게 보상이라기보다는 절망에 가깝다. 에바는 케빈이 젖을 빨기를 거부한 첫 순간부터 아들에게 소외당했다고 느끼고,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아들과 내내 씨름해야 했다.

 

이 절망적인 모자 관계에서 문제는 에바일 수도 있고 케빈일 수도 있다. 에바가 보게 된 것처럼 케빈이 선천적으로 만사를 지루해 하고, 인간적인 감정에 메말라 그저 엄마를 괴롭힐 뿐인 소시오패스일 수도 있고 반대로 케빈은 단지 출생부터 거부당한 엄마의 진실한 애정을 갈구하며 삐뚤어져 버린 아이일 수도 있다. 이 책은 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이 모자가 유도한 파국을 제시하고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끊임없이 되짚어나가려 애쓰는 에바의 회상을 들려줄 뿐이다. 그리고 에바의 독백을 통해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라는 근시안적 물음보다 훨씬 깊은 진실을 보여준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어머니는 희생을 치르는 만큼 자식을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여성이 단지 재생산의 고리가 아닌 남성과 같이 한 개인으로 존재하게 된, 1980년대 1세계의 진리이다.

 

물론 이 진리는 지금도 완전하지 않다. 사회는 여성에게 교육과 직업, 사회적 성취에서는 남성과 같아지라고 주문하면서도 동시에 임신과 출산, 양육을 겪는 여성의 몸과 삶은 사회의 '공공재'로 취급한다. 에바는 이 상충되는 요구를 내면화하여 스스로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한편으로 그녀는 케빈을 자신에게서 성공적인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삶을 박탈한 침입자로 인식하지만, 엄마로서 그녀는 케빈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아이를 그늘 없이 사랑해야 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괴리 때문에 에바는 막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의 힘겨움, 불안, 두려움을 감추고 필사적으로 '좋은 엄마'를 연기한다. 자식을 위해 뉴욕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혐오스러운 교외에서의 삶에 자신을 맞추고, 6년 이상의 경력 단절을 스스로 선택하고 감수한다. 그러나 케빈은 그녀의 위선을 꿰뚫어보고 비웃기라도 하듯이 끊임없이 에바의 속을 썩히는 아이로, 결국에는 자신의 가족을 포함한 열한 명을 살해한 살인자로 자라나고 만다.

 

케빈에 대하여.jpg  

 

책의 내용은 내내 어둡고 잔인하다. 소설이기에 그렇다고 이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지금의 여성들이 처한 현실세계를 간접적으로 잘 비추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졌다. 최근 뉴스를 통해서 나오는 수많은 ‘신생아 유기사건’들을 보면서 나는 남자라는 인간으로서만 그런 여성들이 잔인하다고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인간으로서 바라본다면 그저 잔인하다고 욕만할 수 있었겠는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양성평등’을 외치던 말도 이제 수십 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아직도 사회는 여성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출산과 양육을 당연한 의무로 치부해버린다. 이런 근본적인 생각들이 변하지 않는 한 양성은 아직 ‘불평등’하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말들을 사회에 던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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