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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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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성준
댓글 0건 조회 6,379회 작성일 15-10-3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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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군주론> - 니콜로 마키아벨리 (옮긴이 : 신동준)

 

요즘 나오는 많은 인관 관계 및 조직 관리에 대한 서적을 보면 이상적인 행동 강령에 대한 이야기와 그러한 행동이 주는 장점만을 나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로 인해 소위 말하는 ‘자기계발서’들을 탐독하면 당시에는 깊은 감명과 영감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내용은 물론 어떤 책을 읽었는지 조차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다. 내용이 너무나 이상적인 나머지 그 모든 것을 실천하고 행동하기에는 현실적인 문제와 직접적으로 상충하는 경우가 많이 때문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대중에게 공개되는 문헌에 현실적이긴 하지만 도덕적 통념과 반하는 내용을 기술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인간 관계/조직 관리에 대한 내용이라는 평을 듣기 위해서는 그 당시 사회적 환경과 이상적 관념을 적절하게 섞을 필요가 있는데, 이에 대한 기준을 잡기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다양성이 인정되고 사고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오늘날에도 이럴진데, 하물며 봉건 사회인 중세 유럽에서는 어떠했겠는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평가받는데는, 군주의 자질에 대해 현실적인 면과 이상적인 면을 적절하게 혼합하여 논하였고, 이를 자신이 주군에게 보낼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봉건시대 군주로써 갖추어야 할 기본적 자질과 함께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시 대처할 행동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대부분의 논의가 전쟁과 연관되어 있어 오늘날과는 괴리가 있지만, 안정된 군주국 형성을 위해 필요한 자질과 시민들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현대 사회에서도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상깊었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관대’와 ‘인색’사이에서의 선택인데, 일반적인 통념 (혹은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관대’한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좋다 할 것이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군주처럼 지존의 위치 (오늘날로 따지자면 지도자 혹은 리더의 위치)에 있는 자가 관대할 경우 오히려 큰 해를 입을 수 있다고 역설하고, 오히려 관대하게 처신한다는 세평을 듣기 위해 행동하면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거니와 오히려 반대로 비난에 직면할 것이라고 까지 한다. 이유는 군주가 관대하다는 세평을 듣고자 하면 탐욕스러워질 수밖에 없고 이는 백성에 대한 중세重稅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군주의 관대한 품성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줄 뿐 대다수의 백성들에게는 피해로 나타나고, 군주가 뒤늦게 깨닫고 방침을 바꾸면 즉각 인색하다는 악평이 나돌게 되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탐독하며 오늘날 복지에 대한 관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복지와 발전은 현실적으로 상충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지나친 복지는 과중한 세금의 부담을 수반하고 혜택의 균형적 분배의 어려움이 있을 뿐 아니라, 후에라도 복지 축소에 대한 어려움이 있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의 주장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물론 현대 사회는 봉건주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시각으로만 현상을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시장경제에서 복지가 없다면 심화되는 빈부격차를 막을 방법이 없고, 사회적 약자 층에 대한 관심은 도의적 측면에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오늘날 복지는 반드시 필요하고 확장되어 나가야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주장과 같이 무조건적인 복지는 사회 전체의 부담과 수혜자 문제를 야기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준 높은 복지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길거리 노숙자들을 위해 무상으로 급식을 배분하는 것 보다는, 각자의 능력에 맞는 특정한 미션을 주고 이를 해결할 시 보상을 줌으로써 노동의 필요성과 보상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군주로써의 자질로 ‘가혹’과 ‘인자’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적합한지에 대한 논의가 있다. 결론적으로는 가혹한 군주가 인자한 군주보다 낫다고 한다. 지나치게 인자한 나머지 많은 사람이 죽거나 약탈당하게 만드는 군주보다 일벌백계로 기강을 바로잡는 군주가 훨씬 인자하기 때문이다. 전자는 공동체 전체가 화를 입지만 후자는 특정한 개인만 화를 입는다. 친애와 공포 중 공포가 나은 이유로는 신민이 군주에게서 친애를 느끼는 방법은 물질적 보상을 얻는 방법인데, 이는 위험이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만 유지되고 본인의 안위에 위험이 닥칠 시 여지없이 깨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오늘날에도 주변에 무조건적으로 친화적이고 누군가 부탁을 하면 항상 들어주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처음 한 두 번의 호의에는 고마움을 느끼지만 이것이 반복되면 감흥이 반감되기 마련이다. 우스갯소리로 애인 사이에서 항상 집에 바래다주던 남자가 어느 날 그러지 못했을 시 사랑이 식었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과 같다. 만일 집단의 리더 자리에 위치할 경우 일대 일이 아닌 일대 다수 간의 관계가 되는데, 이 경우 인자함을 유지하기는 더더욱 힘들어 진다. 집단 구성원 개개인의 사정을 모두 봐 주고 지속적인 호의를 베풀기만 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큰 호의를 베풀어야만 한다. 과거 베풀었던 호의를 철회할 경우 오히려 집단의 불만이 발생한다. 리더로써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이 넘어서면 결국 그 집단은 와해되거나 부패될 것이다. 그렇다고 가혹함만 추구해서는 또 안 된다. 마키아벨리도 주장하였듯이 가혹함을 추구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증오를 사는 것인데, 사람이 증오를 품게 되면 본인의 처지가 어떻든 군주를 살해할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리더도 집단 구성원의 증오를 사면 결국 집단이 붕괴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결국 인간의 감정은 상대적인 것이기에 항상 인자만을 혹은 가혹함만을 추구하기 보다는 가혹과 인자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조직의 기본적인 원칙과 비전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가혹함으로, 조직 구성원들의 삶과 행복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인자함으로 대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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