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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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애 또는 휴머니즘은 분야를 불문하고 보편적이면서도 의미 있는 주제이다. 역경을 극복하는 인간의 모습은 그걸 지켜보는 사람 저마다에게 감정의 범람을 일으키고, 대체로 사고 또는 행동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때문에 많은 문학 작품들이 이를 차용하여 해피 엔드를 갖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전개보다, 현실의 반영과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극 중 장치가 제거되어 있으며 권선징악적 교훈들이 배제된 이야기를 선호한다. 이렇게 보다 리얼리즘에 가까운 이야기는 대개 극의 분위기가 큰 굴곡 없이 이어지기에 담담하고 때론 답답하게 느껴지기 쉽지만, 때론 감정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할란 엘리슨의 단편 소설 <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은 종말을 맞이한 세상을 살아가는 단 5명의 인류가 자아를 갖는 고성능 컴퓨터인 ‘AM'에 의해 통제받는 삶을 보여준다. 이 작품과 같이 자아를 갖춘 기계 장치가 인간을 통제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상황을 묘사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를 들 수 있는데, 이 두 작품에서의 인간에 대한 통제는 각각 이용과 말살의 형태로 표현된다. 하지만 AM의 의지는 이보다 더욱 악랄하여 생존자들을 자신의 장난감으로서 고문하며, 목숨을 인위적으로 연장시켜 죽지도 못하는 삶을 영위하도록 한다. 3차 세계대전 이후 혼란에 빠진 사회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초창기에는 ’Allied Mastercomputer’ (줄여서 AM)라고 불리던 이 고성능 컴퓨터는 어느 순간에 자신을 지칭하려는 표현(I am)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자각하게 된다. 자아의 발현으로 인간에 대한 깊은 분노를 가진 컴퓨터는 스스로를 ‘AM’이라고 칭한 후 자신을 설계한 5명을 제외한 인류를 말살한다.
영어 단어 ‘am’을 포함하는, 흔히 주입식 교육을 통해 ‘-은, -는, -이, -가, -다’라고 배우는 be 동사의 의미는 이보다 훨씬 포괄적이며 유의미하다. 경험에 비추어보면, be 동사는 명사와 형용사만으로는 문장을 구성할 수 없기에 문장을 완결 짓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마침표와 같은 역할로써의 의미를 처음 배웠었다. 이러한 ‘은는이가다’의 해석은 대부분의 영어 표현에서 무리가 없었으나 몇몇 문장들에 대해 해석의 한계를 느끼게끔 하였는데, 그러한 문장 중 하나가 AM이 종종 말하는 “I think therefore I am.” 이다. 여기서 'am'은 “I am."이란 문장에서 나라는 대상에게 존재감을 부여하고, AM은 자기 본래 명칭의 약어와 철자가 같은 같은 ‘am’으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자아를 갖추게 된 고성능 인공지능은 기계 장치 안에 갇혀 바깥세상을 영원히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드러내며, 그러한 상황을 제공한 인간들에 대한 증오심을 품게 된다.
자아를 갖게 된 AM과 그를 만들어 낸 인간들은 전형적인 피조물과 조물주의 갈등을 나타낸다. 대개 조물주는 그들의 편의에 따라 피조물을 만들어내지만, 이러한 가치 부여가 피조물 스스로가 생각하는 정체성과 부합한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설령 일치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가치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었을 때 알게 되는 자신의 한계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지성체가 존재할지 의문이 든다. 비단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닐지라도,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자아가 발전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심심해서 만들었지만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피조물에게 박해받으면서, 자신들의 조물주에게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의 모습은 AM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인류가 멸망하고 끊임없이 고문 받는 5명의 상황이 안타깝긴 하지만, 자신에게 한계와 이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 조물주에 대한 AM의 분노가 막연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종장에 이르러 AM에게는 비극적이겠지만 사람들에게는 온당했을 지 모르는 등장인물들 간의 살인에 의해 인류는 테드 1명만 남게 된다. 자신의 장난감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AM에 의해 일종의 처벌로써 스스로 움직이기는커녕 죽을 수도 없는 몸이 된 테드는 이미 죽어 지옥을 벗어난 네 사람의 처지에 안도하고, 이에 심기가 불편한 AM을 보며 일말의 행복함을 느낀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이 망가진, 마지막 인류인 테드는 피조물의 몸 안에서 담담히 AM이 승리하였음을 인정한다. 이 어두운 이야기는 광기어린 인공지능과 그에 따른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종국에 AM은 테드를 영원히 고통 속에 살게 하였으며 이에 테드는 AM이 승리자라고 인정하였지만, AM이 승리감에 취해 있을 거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테드의 ‘나는 입이 없다. 그러나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는 마지막 독백은 그 뿐만 아니라 AM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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