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페이지 정보

본문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 다니엘 튜더
얼마 전 어느 경제평론가가,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관료들의 문제점을 두 가지로 요약해 설명한 바 있다. 먼저 불필요하고 과도한 비밀주의다. 최근 메르스 사태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툭하면 ‘국가의 안위’가 달린 문제라 공개할 수 없다고 하지만, 국가의 안위가 아닌 그들 자신의 안위에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숨기려 한다는 것을 이제 국민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다른 하나는, 자신들은 오류가 없고 틀릴 수 없다는 강력한 믿음에 근거한 엘리트주의다. 만약 우리 정부 고위관료들이 스스로의 생각만큼 그토록 뛰어났다면 최근 들어 유달리 자주 발생했던 여러 국가재난사태에서, 애초에 예방은 고사하고 사태이후, 국민들은 정부의 대처를 신뢰하고 차분히 기다렸을 것이다. 이 역시 국민을 자신들의 아래로 보는 오만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리 관료들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그토록 뛰어나다면, 그토록 당당하다면 도무지 국민들에게 숨길 이유가 없지 않는가. 별 것 아닌 것을 대단한 성과인양 과대 홍보하고 자랑하는 것이 정부인데,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과로 자자손손 남길 것들을 국민들에게 숨길 리 만무하다. 섣부른 일반화 일수는 있지만, 이들은 국민들에게 차마 까발려지기 싫은 실력을 숨기기 위해 비밀주의를 고수하는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쭉 빠져버리는 이 책에는 2012년부터 2년간 한국에 머물며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으로 일했던 영국인 다니엘 튜더의 한국정치에 대한 비평이 담겨있다. 이미 익숙해져버린 한국인들과는 달리 외국인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정치는 조금 이상하다고 한다. 한국은 좌파도 우파도 없고, 국민들의 의지와 의견이 정치적 흐름에 쉽사리 반영되지 않는 무능한 정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진보도 보수도 아니면서 기이하게 고착화돼 양분된 좌우 진영논리는
정작 유권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모든 종류의 의제를 집어삼킨다.’
물론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표면적으로는 상당 다른 정당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과연 어떠한 차별성을 느낄 수 있는가. 대북정책에 대한 부분을 제외한다면 난 그렇게 큰 차이점이 없다고 생각한다. 두 정당 모두 재벌에 관대하고, 기형적 의미의 시장옹호주의자들이다. 국민복지에 대한 인식도 둘 다 형편없다.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 것은 이들이 그 어떤 잘못된 정책을 펴도, 유권자에 대한 그 어떤 배신행위를 한다 해도 유권자들의 지지율은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조금 과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기초연금 월 20만 원을 약속한 후 이를 보기 좋게 파기한 이들에게도 노령층 유권자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동 반응하여 지지한다. 묻지마 지지다.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미스터리인데, 저자의 눈에는 얼마나 신기하게 보일까. 국가자본주의, 정실자본주의가 바로 한국 재벌 기득권자들의 모습이다. 오죽하면 메르스 사태 때 삼성병원 관계자는 이렇게 말을 했다. “설사 국가가 뚫린다 해도 삼성은 뚫리지 않는다”. 이미 권력은 넘어가 버렸다.
‘나쁜 정치인에게 정치에 무관심한 대중은 최고의 선물이다’
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치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느냐가 문제다. 결국 우리는 우리 수준에 걸맞은 정부를 갖게 되어 있다. 갈수록 많은 국민들이 민주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사실상 ‘선택’이 무의미해졌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도 한 가지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구세주는 없다. 영웅을 기다리지 말자.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자. 욕하는 건 쉽지, 답을 내놓아야 진정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할 수는 있지만 이젠 국민들이나 정부가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서 부정과 부패를 관례라 받아들이지 말고, 정치인의 공약 파기를 당연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또 유권을 행사할 때 정치인이 어떤 인격을 가진 사람이냐는 것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겠다. 여느 정치인처럼 국회의원 자리가 목표인가, 아니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려는 마음이 더 큰가, 침묵을 지키는 것이 편한 때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 어린 발언을 했는가 등 국민 스스로가 희망을 잃지 않고 조금 더 신중하고 까다롭게 선택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무관심’이라는 선물을 제공하는 꼴이 되지 않으려면 진정 우리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적과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바로 우리가, 우리 가족이, 국민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겠다.
- 이전글풍수지리 15.08.01
- 다음글12인의 성난 사람들 15.08.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