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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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중국 영화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려보라고 하면, 지루한 무협 영화의 이미지밖에는 생각나지가 않는다. ‘패왕별희’라는 영화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그런 지루한 이미지 때문에 쉽게 볼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막상 보고 나니 중국 영화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패왕별희는 오래 전 만우절에 자살한 중국의 유명배우 장국영이 출연하는 작품이다. 실제로 그는 동성애자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래서인지 영화 속의 케릭터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준다.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으나, 중국 전반의 시대상을 그려내고 있는 심오한 작품이다. 영화의 시작은 1925년 중국 군벌시대로부터이다. 어린 시절의 청데이(장국영)은 경극으로 유명한 학교에 들어가 친구 샬로(장풍의)를 만난다. 둘이 오랫동안 연습한 것은 바로 경극 패왕별희이다. 여기서 청데이가 맡은 역할이 우희인데, 이는 여자 역할이다.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자 역할을 해야 하는 어린 청데이가 겪는 정체성 혼란은 엄청나다. 그러나 꾸준히 여성을 강요받은 결과 청데이는 극뿐만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완벽한 우희로 변하게 된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문화대혁명 기간에 청데이와 샬로가 끌려나와 인민재판을 받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두 팔을 뒤로 꺾인 채 나무 판자를 앞에 매고 사람들에게 끌려 오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 와중에도 두려움에 떠는 샬로에게 우희 분장을 한 청데이가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분장을 해 주는 감동은 감동적이었다.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경극이 구문화로 분류되었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고 경극 그 자체를 사랑하는 청데이의 마음이 정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살기 위해 비굴한 모습을 보인 샬로는 청데이의 동성애를 폭로했고, 그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버린 청데이 역시 샬로의 부인 쥬산(공리)의 과거를 폭로해버린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 간의 관계, 신뢰를 파괴하고, 서로를 비난하게 된 사람들의 모습이 과연 마오쩌둥이 바란 혁명의 모습이었는지 궁금했다.
군벌시대부터 일제 시대를 통과하여 문화대혁명시대로 이어지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문화대혁명이라 할 수 있다.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이 주도한 정치운동이다. 그 내용과 목적은 “학술, 교육, 신문, 출판, 문화 각계의 부르주아의 대표적 인물을 비판하라”라는 것이라고 한다. 우습게도 이 호소에 최초로 호응한 것은 당 고급 간부의 자녀와 사회주의 이상에 순수하게 배양된 중학생으로 구성된 홍위병이라고 한다. 그 후 혈통주의를 내건 홍위병들이 나오면서 혁명가의 자녀는 혁명가이고, 반혁명 분자와 지주 등의 자제는 반혁명분자라고 하는 공식이 성립되었고, 그들은 교사, 당위원회, 구 자본가 등을 탄압했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정치인들의 정책이 단순히 자기들의 표심, 권력을 위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도 영향을 크게 끼칠 수 있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이라는 말도 안 되는 혁명을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실시하지만 않았더라면, 쥬산이 자살하고, 청데이도 자살해 버리는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경극이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임을 요즘 사람들은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런 경극을 구시대의 문화라고 하여 탄압하고 경극 배우들을 다 탄압하는 것이 과연 문화 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지 마오쩌둥에게 묻고 싶다. 실제로 정치인들의 정책이라던지, 시대상황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꿔놓기도 한다. 97년의 외환위기는 많은 실직자를 양산했고, 지금의 4.50대에게 질문하면 외환위기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들 말하는 통계자료를 본 적이 있다. 정치인들이 결정하는 정책이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국민 개개인의 인생에까지 크게 영향을 미친다면, 그들은 정책 결정에 좀 더 신중해야할 것이다. 권력층의 한 계급으로 자리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결정에 어떤 피해가 예상되는지는 충분히 검토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극을 위해 남자가 여자로 강요받고, 하루아침에 잘나가는 경극배우에서 구시대 문화를 실연하는 반동분자가 되어버린 청데이의 모습은 문화대혁명을 겪은 중국인들의 정체성 혼란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패왕별희’를 통해 중국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었다. 1925년부터 1966년의 문화대혁명 시기를 역사책을 통해 접했다면 지루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그 시대의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동안 나는 중국의 역사를 이야기 하면, 사극에서 잠깐씩 보았던 청나라만을 떠올렸었다. 즉, 중국의 현대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감상하면서 일본이 중국에 침입했고, 공산당의 집권으로 이데올로기의 변화를 겪었으며, 문화대혁명으로 혼란의 시기를 겪은 중국의 현대사를 쉽게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일본군이 중국 본토를 침입한 사실을 보니 우리와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그 동안 중국인들은 잘 씻지 않고, 목소리가 크며, 매너가 없을 것이다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중국을 은연중에 무시해왔다. 그러나 현재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과 과거 중국이 걸어온 역사를 보니 그들의 성장이 무섭다. 중국은 더 이상 인구만 많고 땅덩이가 큰 나라가 아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매체를 통해 중국을 좀 더 바라보고 그들의 삶과 문화양식을 배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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