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샘 피지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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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빈익빈 부익부의 세상이다. 많은 부를 가진 자는 권력과 더불어 더 많은 부를 축적 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만 늘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서민은 독한 현실 속에서 생물학적 생존마저 위협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막대한 자본을 축적하고 있는 상위 1 %의 슈퍼리치들과 최저 생계비라도 보장 받고자 하는 슈퍼푸어들이 혼재하는 현 시대의 모습이 과연 자본주의가 진정 계획한 모습인가? 아니면 우린 부자들의 자금축적을 위한 명분으로 전락해버린 자본주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일까?
저자 샘 피지개티는 뉴욕타임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다양한 매체에 수십년간 글을 기고하고 있는 베테랑 언론인이다. 특히 그는 ‘경제 불평등’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관련 사안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진보적인 글을 쓰는 노동전문기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저서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는 미국의 금권주의 역사, 부자들에 대하여 저항한 보통사람들의 끈질긴 승리사, 정치인들의 과감한 부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며 부의 평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역사의 흐름은 탐욕에 눈먼 부자들의 끈질긴 금권주의 역사가 대부분인 듯 하다. 금권주의를 사수하기 위해 부자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펼쳤던 여러 꼼수들은 물론 이들의 엄청난 소비생활까지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자본의 힘을 등에 엎고 대부분의 경우 승리했다. 하지만 책의 원제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부자들이 항상 승리 하지는 않았다”) 부자들의 부패는 깨어있는 시민들에 의해 날카로운 심판을 받기도 했다.
1900년대 초 미국이 세계대전과 경제 대공황을 겪던 시절 부자증세 정책으로 큰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당시 어려운 나라살림으로 인해 부자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여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정치권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소득세율을 제도화 시켰다. 부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국민들의 열망과 현실적 흐름 앞에 부자들은 엄청난 세금을 내게 되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는 소득세율이 90%에 이른 슈퍼리치도 있을 정도로 부자에 대한 세금 부과율이 높았다. 또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기업에서 발생하는 이윤에 대해 최대의 세금을 부과했고, 나아가 세금을 내고 난 후의 순 소득이 25,000달러 이상을 넘지 않도록 소득에 대한 강제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따라서 부자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은 자연스레 중산층으로 흘러가게 되었고 이는 두터운 중산층 형성을 가능케 하였다. 그 결과 사회 전반의 자본흐름이 원활하게 되었고 각 사회계층이 균형발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자본의 독점은 자본주의를 후퇴시킨다. 사람의 몸 곳곳에 혈액의 흐름이 필요하듯 자본의 흐름이 원활해야 자본주의는 더 발전한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부의 평등’을 실현하는 것 또한 자본주의를 후퇴시킨다고 본다. 부의 평등은 잔잔한 호수와 같아 돈의 흐름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부의 계층화는 필수불가결하다.
그럼 건강한 부의 계층화를 이룩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필자는 ‘부자증세’보다 먼저 ‘임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근로자의 임금은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의 수익을 낼 수 있는지에 기준을 두고 있다. 즉 ‘일의 가치’가 임금결정의 기준이 되고 있다. 정당한 임금지불 방식 중 한가지로 볼 수도 있지만 상당히 많은 부자들이 자본과 권력을 바탕으로 크게 힘들이지 않고 많은 부를 쌓아온 현실을 이해한다면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서민들 사이에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내 삶은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다’라는 회의론이 번져나가는 이유가 바로 임금지불의 기준을 ‘일의 가치’에 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임금의 기준은 ‘일의 수익성’이 아닌 ‘노동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정신적·육체적 노동을 얼마나 소비했느냐에 따라 임금기준을 매기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한 발명가가 자신이 생각해낸 아이디어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현실화하고 수백억의 고수익을 올렸다고 생각해 보자. 임금의 기준을 ‘일의 수익성’에 둔다면 그가 온전히 수백억원을 가질 권리가 있지만 ‘노동의 가치’를 바탕으로 생각해본다면 그가 벌어들인 액수는 그가 정신적·육체적으로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너무 높을 수 있다. 수백억원의 이익을 남기는 노동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단지 그가 투자한 노력이 그 시대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그렇게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막대한 수익을 보장해준 사회와 소비자에게 환원이 되어야 하는 게 맞는 것이다. 기업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이 만든 혁신적인 제품뿐만 아니라 그것을 소비해준 사회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발생한 이익이 온전히 모두 자기노력의 결과라는 착각 속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상류층의 자본독점을 막을 방법이 없다. 아무리 ‘노동의 가치’를 외치더라도 부자들의 머니파워에 무참히 밟히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이다. 따라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부자증세 카드를 꺼내 들고 이를 통한 부의 재분배를 실현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하지만 부자들은 쉽사리 자신의 자본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자본을 잃음으로써 굶주릴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욕심이라는 그릇이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진정한 의미는 자본을 통해서 인간이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본다. 결코 자본으로 자본을 지배하는 것이 자본주의가 아니다. 저자 샘 피지개티의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읽고 슈퍼리치들에 대한 증세와 부의 재분배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있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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