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인의 성난 사람들
페이지 정보

본문
12인의 성난 사람들
수많은 화제거리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살면서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철학과 심도 깊은 사고 끝에 얻은 의견일수도 있지만, 그저 다수의 의견과 복잡한 사고에 대한 귀찮음으로 얻어진 의견일수도 있다. 이러한 면에서 개인의 의견이 편견과 군중심리에 얼마나 휘둘릴 수 있는지 생각할 기회를 준 "12인의 성난 사람들"이란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1957년도에 촬영된 미국 배심원제도를 다룬 흑백영화이다. 평범한 시민으로 이뤄진 12명의 배심원들이 한 흑인 소년의 살인 혐의를 판결해 나간다. 유죄를 증명하는 증인도 있었으며 살인동기도 충분한 소년의 형사재판에서, 한 남자는 무죄라는 충분한 근거나 확신도 없이 그저 '토론을 해보고자' 무죄를 주장한다. 그는 한 소년의 목숨에 달린 문제를 다른 배심원들보다 더 무게감 있게 보았던 것이다. 다른 배심원들은 더 이어가봤자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득실도 없는 ‘누가 봐도 뻔한’ 배심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자기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 남자는 피고 소년이 가진 목숨의 가치가 한 시간의 토론보다 못하냐며 ‘Guilty’라고 주장하는 다른 11명의 배심원들에게 의심의 ‘Not guilty’를 외친다. 하지만 나머지 열 한명의 배심원들은 흑인 빈민굴에서 자랐고, 전과도 있었던 피고 소년의 목숨에 대해 무관심했고 자신의 사소한 일에만 신경이 가 있었기 때문에 당장 의견일치를 볼 것을 그 남자에게 강요한다. 그러나 그 남자가 제기한 아주 작은 의문, 아무리 일급 흉악범의 피의자라고 하더라도 나에게 주어진 그의 생사를 쉽게 결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에서 이 배심은 ‘진정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의문은 점점 증폭되다가 나중에는 배심원단 전체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결국 확실하다고 믿었던 것, 명백하다고 믿었던 것이 어쩌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된 배심원들이 열 번의 투표를 걸치며 하나 둘씩 자신의 주장, ‘길티’를 번복하게 된다. 의심을 통해 진실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가게 된 것이다.
이 영화에서 결국 진실은 어떤지 밝혀지진 않지만, 맨 처음 ‘Not guilty”를 외친 그 남자는 의심을 통해 진실규명과 정의를 위해 노력했다. 언뜻 보기에는 명백해 보이는 증거들이 모두 피고 소년을 유죄라고 가리키고 있지만 그는 의심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의 사회를 이러한 남자의 태도에 비추어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모든 사물을 그저 있는 그대로만 바라보고 그것들을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시대, 의심을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그저 주어진 체계에 순응하고, 이 많은 사람들 중 나 아닌 누군가 하나쯤은 모두를 위해 정의를 밝히고 진실을 규명하려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 의심하지 않는 사유 풍조가 만연한 사회는 이미 진실이 진실일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다시 말해 누군가 진실을 외쳐도 그 소리가 묻힐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는 어떠한 눈에 보이는 사실에 대해 의심할 기회를 갖지 않고 피상적인 사유만을 일삼으며 그저 수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옳은 것, 곧 진리가 되어버리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요즘과 같이 SNS가 발달된 사회에서는 그러한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세모자 사건’의 경우, 사건보도 초기 단계에는 피해자라 주장하는 세모자의 말만 믿고서 수많은 네티즌들은 SNS를 통해 가해자라 불린 사람을 매도하기 바빴으며, 사건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가해자를 두둔하는 자로 몰아가며 마녀사냥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점차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자 세모자에 대한 옹호 여론은 씻은듯이 사라졌다. 사회적 약자로 보이는 세모자의 위치, 권력을 휘두르는 이미지의 타락한 목사, 그리고 자극적인 주제인 성적 학대까지. 윤리의식, 편견, 그리고 군중심리에 휘둘린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사람들은 ‘의심’이라는 단어에 대해 대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떠올린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무조건적 ‘믿음’이라는 단어이다. ‘믿음’이라는 행위는 그 자체로 숭고한 것임엔 틀림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라는 이름아래 하는 행위는 사실 ‘무관심’에 가까운 것이다. 어떤 일에 대해 알려고 하는 노력이 배제된 맹목적 ‘믿음’은 오히려 무언가 알려고 끊임없이 사고하는 ‘의심’보다 더 비열한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영화의 초반에는 ‘낫 길티’를 주장한 한 배심원만이 열린 사고를 통해 다른 배심원들의 단단히 굳어 있는 사고의 문을 두드렸다. 이러한 자세는 편견을 가지지 않는 사고의 발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배심원과 같이 사회의 어떤 통념이나 일반적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열린 사고를 가져야 할 것이다.
- 이전글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15.08.06
- 다음글빅 픽처 15.07.3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