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소포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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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인기리에 방영 중인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이 제작진이 주는 보기에 대해 선택을 하며 한 에피소드를 만들어 낸 적이 있다. 잘못된 선택을 하여 멀리 마라도까지 자장면을 먹으러 간 멤버들을 배경으로 ‘인생이란 B와 D사이의 C이다’라는 자막이 깔렸다. 인생은 출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라는 이 말은 그 어떤 말 보다 가슴에 와 닿는다. 매일 점심 메뉴를 고민하거나, 버스를 탈지 택시를 탈지 고민하는 등 우리는 항상 선택의 문제에 직면해있다. 메뉴 선택에 실패하면 단순히 맛 없는 음식을 먹은 것에 지나지 않으나, 국가의 통치권자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 혹독하다.
테바이의 왕이었던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 역시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안티고네에게는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라는 두명의 오빠가 있었는데, 둘이 결투를 하고, 둘 다 죽어버렸다. 에테오클레스의 시신은 장례의 절차를 거쳤지만, 폴뤼네이케스는 테바이에 반역의 죄를 지었으므로 테바이의 왕 크레온은 엄중한 법도에 따라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새의 먹이가 되도록 내버려두라 명한다. 이는 국법을 엄격히 적용, 준수하는 것으로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크레온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국법과 천륜사이의 갈등 끝에 무참히 버려진 오빠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를 지내주려 한다. 여동생인 이스메네도 그녀를 말리나, 그녀의 결심을 꺾을 순 없다. 결국,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사를 지내준 안티고네는 그 사실을 알게 된 크레온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물론 주위의 반대와 설득 끝에 원래 의도대로 바로 죽인 것은 아니지만, 외진 동굴에 가둬놓고 자연사하기를 기다리는 벌을 받는다. 즉, 국법을 준수하느냐, 천륜을 따르느냐의 문제에서 안티고네는 천륜을 따른 선택을 하고, 국법을 어긴 것에 대한 책임을 받게 된 것이다.
과연 천륜을 선택한 안티고네의 행동과 국법을 중요시하는 크레온 중에 어느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먼저, 법에 의한 통치는 일관성으로 인해 국가를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하나의 맹점이 있다. 바로 그 법이 정당성에 대한 문제이다. 국법이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고, 실질적인 정당성까지 확보했다면 그 법에 따르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법이 형식적으로는 민주적이지만, 그 내용의 실질이 정당하지 않다면 정의롭지 못하다. 정의롭지 못한 법에 따른 통치는 오히려 국가의 존폐를 위태롭게 한다. ‘안티고네’가 쓰여진 시대는 그리스로 민주정이었던 그리스 사회의 모습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이를 생각한다면, 테바이의 국법은 비교적 정당성을 확보한 것이라 사료된다. 그렇다면 이런 국법을 어긴 안티고네를 무조건 처벌한 것은 정의로운 결정이었을까?
나는 일단 안티고네와 국법 적용의 대상인 폴뤼네이케스의 특수한 관계에 주목하고 싶다. 이 둘은 남매관계로 하나의 핏줄이다. 핏줄은 천륜인데, 어떻게 자기 오빠의 시신이 새떼에게 뜯어먹히도록 내버려둘 수가 있겠는가. 법 위에 도덕이 있고, 더 높은 가치가 있다. 모든 걸 떠나서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면 우리가 지켜야 할 도리가 있고, 믿어온 관습, 신념이 있다. 예를 들자면, 죽은 사람에게 예를 갖춰 장례를 치루고 49재를 지내는 등의 일이다. 이는 사람들 사이에 보편타당한 것으로 법의 영역으로도 침해할 수 없는 것이다. 안티고네가 국법을 무시하고 오빠의 시신을 수습해준 것은 법보다도 상위의 가치인 인간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법은 개인 간의 사회계약의 산물이지만, 천륜은 그보다도 더 본질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국법이 우선인지, 천륜이 우선인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만일 내가 안티고네였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생각해봤다. 내가 안티고네의 입장이라면, 나는 안티고네와 같은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내 핏줄의 시신이 무덤에 가지도 못하고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것을 지켜보기만 한다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사유로 국법을 어긴다면, 과연 국가의 기강이 바로 설 수 있을까싶다. 여기서 나온 것은 안티고네 단 하나의 사례이지만, 이런 식으로 인간의 도리, 신의 뜻을 내세우며 국법을 어기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난다면, 국가의 통치권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책에서 보면, 크레온의 주위 사람들, 심지어 저명한 예언자까지도 그의 그러한 행위를 잘못되었다고 판단한다. 법집행에서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제로 적용되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켜야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만일 내가 안티고네였다면, 하데스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큰 화를 부르니 그렇게 하지 말라는 주위 사람들의 의견이 생겨났을 때를 기다려 이용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을 모아 크레온이 명령을 거둘 수 있도록 국법의 탄력적인 적용을 간청하는 방향으로 그와 타협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모두가 다 죽어버리는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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