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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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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성준
댓글 0건 조회 6,104회 작성일 15-09-13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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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미쳤다!> - 에리크 쉬르데주

 

최근 들어 한국 특유의 수직적 조직 문화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0년 KT가 팀장 이하 직급을 매니저로 통일한 것, 2012년 한화 그룹이 사원, 대리, 과장, 차장의 직급을 매니저로 통합한 것, 다음카카오가 영어닉네임을 직급 대신 부르는 것 등을 보면 한국 기업들 내부에서도 수평적 조직문화에 대한 필요성을 점차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KT나 한화 그룹 등이 다시 원 직급 체계를 부활시켰고 그 이유로 업무상 혼선과 리더십의 부재, 임직원의 사기 저하 등을 꼽았다는 사실은 아직까지도 한국 기업 문화 DNA에 수평적 조직문화의 효율성에 대한 집착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 에리크 쉬르데주는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프랑스 LG 법인의 영업마케팅 책임자부터 법인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본 책은 프랑스인의 시각으로써 바라본 한국 기업이 가진 조직문화에 대한 장점과 한계점을 잘 서술해 놓았다. 프랑스나 기타 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미국, 심지어 일본과 같은 아시아계의 회사들에서 조차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는 LG (그리고 한국 재벌 기업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비판을 엿볼 수 있어, 한국 기업들이 갖고 있는 시스템 상의 한계점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견해 중 가장 인상적이며 공감이 되는 부분은 생산, 경영, 마케팅 부문에서 한국 기업은 구체적인 실적이 중시되는 왕국이라는 점이다. 인간미나 정서는 파고들 틈이 없고, 사원 개개인이 성취해야 할 명백한 목적, 효과적인 관리 시스템, 수치화된 목표 달성을 위해 기계처럼 굴러간다. 업무를 설명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은 필요 없다. 업무의 결정자와 수행자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료의 업무를 두고 어떤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인가에 대한 토론은 할 수 없다. 개개인에 대한 각각의 업무가 상사로부터 내려오고, 철저한 계급에 입각한 조직 구조 상 상사의 지시에 토를 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현대판 봉건사회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조직 구성원들은 자신의 위치에 어울리는 업무를 할당 받고 이를 정해진 기한 내에 처리하면 된다. 최고의 효율성이 보장된 프로세스를 따르기만 하면 되니 창의성이 발현될 여지가 없다. 이 같은 구조가 마치 정교하게 짜인 톱니와 같이 맞물려 전체 시스템을 구성한다. 대리는 사원들을 관리하고 그러한 대리들은 과장이 관리한다. 이러한 피라미드식 구조가 정점을 찍는 곳이 임원진들이다. 그렇다고 임원진들은 조직의 비전을 위해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가? 오히려 계약직이라는 불안정성에 얽매여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려고만 한다. 책에서 나온 LG의 남 부회장이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려고 하자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사회에 의해 경질된 것은 얼마나 한국 기업들이 경직된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직의 경영 방침은 신적인 존재에 위치하는 회장/부회장 (혹은 이사회)의 의중대로 갈 수 밖에 없다. 과거 봉건주의 시대에서 왕의 말 한 마디가 곧 법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체제의 장점과 한계는 명확하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지도층의 강력한 리더쉽과 명확한 비전을 바탕으로 한 최고의 효율성으로 무장하여 기업 발전을 빠르게 이끌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사실 한국 재벌 기업이 지금과 같은 문화를 갖게 된 것에는 역사적 요인도 한 몫 한다. 일본 식민지배와 한국전쟁 이후 황폐화된 땅에서 반세기만에 1인당 국민소득 20배 증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 된 것은 효율성으로 무장한 시스템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정부의 국산품 장려, 수출 장려, 저축과 투자 중시, 재벌에 유리한 예산 및 통화정책은 한국 기업들이 성장하는데 최고의 환경을 마련해주었다. 이 당시 기업들은 선진국들의 성공 가도를 그대로 차용하여 빠르게 따라잡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최고의 효율성을 보여야만 했다. 특히 제조업 기반의 산업 부흥을 꾀하려면 수직적 조직문화의 도입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수직적 조직문화 하에서 조직원들의 무조건적인 충성과 희생을 기반으로 하여 눈부신 성장을 이룩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현재 세계의 패권을 다투는 리더 기업으로써는 수직적 조직문화는 오히려 기업 성장에 독이 될 수 있다. 한국 기업의 직원은 물건을 고객에게 파는 게 아니라 상사에게 판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나온다. 기업 구성원 입장에서 개인의 발전은 묵살되고 회사의 지시대로만 움직여야 하니 상사의 눈치만 보며 정치적인 수완만 늘어갈 뿐이다. 회사 전체로써는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로 인해 급변하는 외부 정세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LG의 이동전화 사업 실패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과거 20-30대를 겨냥한 초콜릿폰 흥행 이후 스마트폰으로 사업 전환에 실패함으로써 세계 이동전화 시장에서 처참하게 무너진 것은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급변하는 시장에 대한 LG의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기업들에게 한국 기업들의 전유물이던 조선, 반도체, 가전 등의 시장 점유율을 점차 빼앗기는 모습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과거 전 세계를 평정했던 일본 가전이 한국 기업들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진 것은 지속적인 혁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에만 취해있어서 이다. 현재까지는 한국 기업이 전자, 가전 등의 분야에서 패권을 쥐고 있지만, 조만간 과거 일본과 같은 모습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삼성, LG의 스마트폰 점유율은 샤오미에게 밀린지 오래다. 샤오미의 눈부신 성장을 단순히 저가 물량 공세로 폄하할 수는 없다. 매주 유저 피드백을 통한 OS 업그레이드, 중국 내에서 샤오미폰 보급량을 늘려 자신들 만의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기업 비전 등이 샤오미가 무서운 이유이다. 특히, 샤오미의 수평적 조직문화 (구성원의 직급 구분이 매니저와 팀장, 최고경영자 단순 3단계로 구성)로 인한 자유로운 토론과 창의성의 발현은 샤오미의 혁신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이라 평가된다. 심지어 기업 내부 사원들로 하여금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과감히 회사를 떠나 창업을 독려하는 문화는 한국 기업으로써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모습이다.

 

적자 생존이다. 과거에 한국 기업들이 시대 상황에 맞게끔 효율성을 추구하는 조직 문화를 갖추었다면, 현 시대의 흐름은 혁신과 창의성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다. 조직 말단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기안되더라도 상사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반려되는 모습은 시대착오적 현상이다. 한국 기업들 스스로가 그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근본부터의 변화를 모색해야만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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