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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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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준
댓글 0건 조회 5,471회 작성일 15-05-3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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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기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있기 마련이다. 서로 다른 문화, 역사적배경 등이 삶을 살아가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남과는 다른, 그 만의 존재가치를 부여한다. 인간은 동물과는 다르게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삶의 방향성을 간직하고 각자가 상상하고 바라는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 세상에 오직 나만이 나로써 존재하고, 나만의 이상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아주 특별한 것이다. 하지만, 이 특별함이 과연 축복인 것일까. 어쩌면 이 명제의 진위여부가 궁금해 단번에 읽어내려간 밀란 쿤데라의 작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세상’, 그리고 ‘인간의 존재’간에 연결성의 관점에 입각한 철학적인 서술, 그리고 사랑을 통한 존재의 본질적 접근을 위한 쿤데라의 노력이 매 한 문단 한 문단에 저며있는 그러한 작품이었다.

 

   인간의 삶에는, 참을 수 없는 무거움과 동시에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또한 존재한다.

애초에 인간의 삶에 무게라는 잣대를 들이밀어, 비교적 무거운 존재의 가치를 지닌 인간과 가벼운 존재의 가치를 지닌 인간을 구분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기야 하겠지만, ‘개인이 느끼는 자신의 삶의 무게’라는 초점에서 본다면 충분히 적용가능한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삶의 무게를 결정짓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작품의 인물들에게 주어지는 육중한 무게 요인은 바로 시대적 배경이다. 저자가 이 작품을 저술할 당시인 1960년대 체코는 소련의 침공이란 시련에 놓여있었고 사람들은 기존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극중 인물들의 삶에 크나큰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여기서 한가지 눈여겨 볼 부분은 직업과 관계없이 인물들 저마다 자신이 추구하고 바래왔던 삶의 방향이 이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외부로 표출되었다는 점이다.

 

   추구하는 이상향을 이루기위해 개인이 매 순간 행동을 결정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단순화하여 물에 잠긴 ‘양팔저울’로 생각해 보았다. 한 쪽은 현실의 무게, 다른 한 쪽은 이상의 무게를 재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자. 평소에 무겁게 자리하고 수면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개인의 이상은(현실과의 괴리가 클수록 그 무게는 더 하다), 전쟁이라는 무겁디 무거운 삶의 무게가 양팔 저울의 현실접시에 자리잡게 되고 그로 인해 이상은 수면밖으로 고개를 내밀게 된다. 내가 나로써 이 세상의 존재한다고 가슴에 와닿게 느끼는 것은 자신의 이상을 가슴에 품고 그 것을 실현해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일 것이기에 이 같은 상황에서 그들은 존재감을 절실히 느끼게 되고 타인에 의해서 쉽게 그 방향이 틀어지지 않는 상황이 된다.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나는 한동안 제목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첫 번째로는 앞서 언급했듯이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것이었다. 인격체가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기에 앞서, 그 에게 무게의 잣대를 들이민다면 자칫 인간의 존엄성을 헤칠 수도 있는 부분이겠지만 이 작품에서 저자는 이런 용도로 ‘무게’의 의미를 존재에 부여한 것이 아니었다. 요지는 자신의 삶의 무게를 가볍게 느끼는 인간과 무겁게 느끼는 인간의 대립, 그 대립 속에서 빚어지는 삶의 방식 변화를 낱낱이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두 번째로는 ‘참을 수 없는’의 진정한 의미였다. 어쩌면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수도, 현생과 후생을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치게 된 것이고, 이것은 마치 한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막연한 것이다.

 

   인생은 두 번 세 번 살 수 없으므로,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을 존재의 가벼움으로 살아야하는지, 무거움으로 살아야 하는지, 어느 것이 옳은 삶의 방향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개인이 그 순간 원하고 바라는, 어쩌면 미래의 내가(현생에서) 어떠한 삶을 더 바람직하게 여길지 이 순간 생각하고 설계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다르게 살아본다고 해서 가벼움과 무거움의 삶중에 어느 것이 나은 삶이라고는 또 말하기가 힘든 것이 아닐까. 존재의 가벼움을 선택하여 가벼운 인생을 살아갈지, 무거움을 선택하여 무거운 인생을 살아갈지는 순전히 우리의 선택이고 책임인 것이다. 나는 ‘참을 수 없는’의 의미가, 다시는 오지 않을 나의 삶의, 방향을 설계하고 인생을 바친다는 것은 경중을 막론하고 피할수 없으며 또한 참을 수 없는 책임감이 따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인간의 한시적 인생은 직선과도 같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저마다의 방향을 가지고 또 다른 직선을 그려가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필히 마주하게 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은 내 삶의 양팔저울에서 현실과 이상 중 어느 쪽을 중히 여기게 될지 어쩔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할 것이지만, 나는 그 선택의 기로에서 꿋꿋이 나의 이상을 펼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한 번 주어진 인생에서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 둘 다 막중한 책임감이 따른다면, 내 인생의 직선이 타인에 의해, 혹은 다른 어떤 요인에 의해 꺾이거나 타인의 직선과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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