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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 - 미우라 아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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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환
댓글 0건 조회 6,106회 작성일 15-05-31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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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이 책은 이해하기가 다소 난해하다. 작가에 대한 설명이 없으면, 이 소설은 한 가족의 드라마와 같은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단순한 시간때우기용 소설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미우라 아야코는 원래 기독교를 증오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사람들이 교회에 몰리는 것을 보고, 우연히 읽게 된 전도서의 구절에 마음을 빼앗겨 진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러니 이 소설은 그 이면에 기독교적 신념이 자리하고 있고, 인물들의 대사 속에서도 성경 구절이 간간이 등장한다.

 

 ‘빙점(氷點)’은 인간의 마음 한 구석 깊숙이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음이 얼어붙는 지점으로, 인간의 원죄를 의미한다. 아무리 배짱 좋고 긍정적인 사람도 어느 순간이 되면 무너져버리는 지점이 있는데 그 지점이 바로 그 사람의 빙점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동물과 다른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들과 차별되는 도덕성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 도덕성이 강할수록 사람은 더한 죄책감, 자책감에 빠져들어 어려워진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구되는 도덕성이 큰 올가미가 되어 결국은 인간을 큰 수렁으로 빠지게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죄책감, 배신감, 증오, 질투심 같은 감정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의존, 즉 신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일본 훗카이도의 아사히가와라는 도시이다. 이야기는 쓰지구치 병원의 원장인 게이조와 그의 아름다운 아내 나쓰에의 어린 딸 루리코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게이조와 나쓰에 사이에는 루리코와 아들 도루가 있다. 게이조가 출장을 떠난 어느날, 같은 병원의 안과의사인 무라이는 나쓰에에게 마음을 전하고, 나쓰에는 그와 함께 있고 싶어 어린 루리코를 밖으로 내보낸다. 그녀가 무라이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루리코는 유괴되고 결국은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아내의 부정에 괴로워하던 게이조는 아내에 대한 기막힌 복수를 생각한다.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을 따라 루리코를 죽인 살인범의 딸 요코를 입양하는 것이다. 자기 딸을 죽인 범인의 딸을 키우는 꼴이라니 정말 기가 막힌 상황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뒤 결국 나쓰에도 게이조의 편지를 통해 모든 사실을 알고 남편과 요코에 대한 증오심에 휩싸인다. 그 후 그녀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축제 때 입을 옷을 마련해 주지 않거나 졸업식 답사 연설문을 백지로 바꾸어놓는 등의 행동으로 요코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러나 요코는 굉장히 훌륭한 여성으로 성장했고, 기다하라라는 학생과 연인관계가 된다. 이것을 질투한 나쓰에는 기다하라의 앞에서 요코의 정체를 폭로하고, 요코는 충격을 받아 자살을 결심한다. 다행히 늦기 전에 밝혀진 요코는 병실로 옮겨졌고, 그 즈음에 요코의 입양을 도왔던 게이조의 친구 다카기에 의해 요코가 살인범의 딸이 아님이 밝혀지고, 요코가 의식을 서서히 회복 할 때쯤 소설은 끝이 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신뢰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덕목이라고 믿고 있다. 신뢰는 분명 도덕적으로 좋은 것인데, 이 소설에서는 도리어 그것이 비극의 씨앗이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내에 대한 복수로 살인범의 아이를 입양하겠다는 게이조에게 다카기는 차마 그럴 수가 없어 요코를 살인범의 아이라고 넘겨주었다. 여기서 다카기는 자신의 친구가 성경의 말씀을 실천할 수 없을것이라고 판단, 즉 게이조에 대해 신뢰를 하지 않았으나 게이조는 친구를 믿었다. 또 나쓰에 역시 남편의 편지를 그대로 믿음으로써 요코가 살인범의 자식임을 확신한다. 요코 역시도 자신이 살인범의 자식이라는 어머니의 말을 의심의 여지 없이 믿는다.

 이러한 믿음이 형성되는 것의 대전제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은 절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는 사람 사이에 확고한 신뢰가 있었다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이상적인 선에 도달했지만, 결국 이 믿음은 사람을 괴롭게 하여 요코가 자살을 시도하게 되는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까지 아무리 괴로운 때라도 꾹 참을 수 있었던 것은 나는 결코 나쁘지 않다, 나는 옳다, 때가 묻지 않았다는 생각에 의지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살인범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금에 와서는 저는 의지하고 설 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유감스럽게도 저에게는 이미 살아갈 힘이 없어졌습니다. 얼어 버린 것입니다.···저의 핏속을 흐르고 있는 죄를 참으로 용서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존재가 있었으면 합니다.”

 

 요코가 유서에서 말했듯이 언제든지 긍정적이고 밝던 그녀에게도 빙점이 존재했다. 아무리 강해보이는 사람,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마음 속 깊은 곳에 빙점이 자리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점에 도달했을 때 무너져버리고 만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성을 가지고 자신을 제어한다는 것만으로도 우월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스스로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은 누구나 그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종교에서는 인간을 나약하다고 하며, 그 나약함을 구원해 줄 초월적인 존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만큼은 남들과 다르다’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교만함을 이 소설은 비웃는다. 인간에게는 요코의 유서에서처럼 나의 죄가 용서되었음을 말해줄 수 있는 권위 있는 존재가 인간에게는 필요한 것이고, 저자는 그 존재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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