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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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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형도
댓글 0건 조회 6,259회 작성일 15-08-0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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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디치 가문이 군주론을 배척했던 내막 추측-

 

오늘은 하나의 추측을 해보고자 한다.

 

         오랫동안 책장에 박혀있던 책이 있다. 어릴 때 그저 제목이 섹시(?)하다는 이유로 골랐던 책이지만, 옮긴이의 수준이 내가 범접할 수 없었던 레벨이었기에 장식품으로서의 역할만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던 책이다. 그리고는 조금 머리가 커졌다 싶어졌을 때 그 책을 읽어봤다. 그리고 그보다는 좀 더 컸을 때도 다시 읽어보고.. 또 몇 년 지나 읽어보고 해보니, ‘아 책이라는 건 독자의 레벨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수확이 다를 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29살이 되고나서 이 책을 다시 보니, 이제는 나름의 생각으로 어떠한 상황에 대한 추측이 가능해 진 것 같다. 앞으로 몇 살 더 먹고 나서 읽으면 논문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주 건방지면서도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해보며 글을 시작한다.

 

         시작은 마키아벨리는 이 책을 왜 집필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군주론이 나왔던 이유를 현재의 우리 또래 사정에 비유해 본다면 이해하기가 쉽다. 그저 직장을 잃은 취업준비생이 쓴 이력서 정도랄까. 자신의 고용주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우려내서 담아냈다.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올린 헌사에서도 군주론을 집필한 목적을 확인할 수 있다. ‘메디치 가문은 나를 고용하기 바란다!!’ 나는 이렇게 살핀다.

         아마 별다른 사정이 없으면 메디치 가문은 이 취업준비생을 채용했을 것이다. 진시황이 타국 출신 인사를 추방하는 ‘축객령’을 내리고 난 뒤, 이사가 올린 상소인 ‘간축객령’을 보자 ‘축객령’을 철회하면서 이사를 중용했던 사례를 떠올린다. 메디치 가문과 이 가문이 장학한 피렌체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메디치 가문은 마키아벨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문은 자신들이 거느린 개들을 지식인이 직접 전달한 논문보다도 더 챙겼다. 개보다 못하다는 낌새를 내비치면서. 메디치 가문은 군주론을 배척하면서 나아가 마키아벨리에게 멸시와 모욕으로 여길 행위도 했다. 속된 말로 그냥, “아 쟤 싫어. 그냥 싫어”다. 그러면 왜 메디치 가문이 마키아벨리를 싫어했을까?

 

        때는 1494년, 피렌체 공화국은 메디치 가문을 추방했다. 로렌초를 이어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 된 피에로. 그가 여러 사람에게 한심하게 보일 실정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1차 이탈리아 전쟁을 일으키며 이탈리아를 침략한 프랑스와 교섭하는 도중에 발생한 사건이다. 프랑스의 압력에 밀려 피렌체가 막대한 전비를 떠맡도록 한 것에 이어, 주요 요충지인 피사를 독립시키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피렌체의 국익과 위신을 깎는데 앞장선 꼴이다. 피에로가 했던 이러한 행동 때문에 피렌체 시민의 ‘메디치가문 지지율’은 요즘시대의 익숙한 모습처럼 급락한다. 이런 배경으로 반 메디치 세력이 힘을 얻었고, 정쟁에서 패한 메디치 가문은 추방당하고 만다. 그 후 1512년이 되어서야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에 다시 입성할 수 있었다.

         이 1494년에서 1512년 사이. 이 기간 동안 피렌체 공화국은 반 메디치 세력이 장악했다. 마키아벨리는 이 기간 동안 피렌체 정국의 요직에 있었다. 이인자 자리는 물론, 어떤 경우에는 최고 실권자의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망명자 생활을 했던 메디치 가문 사람들에게는 마키아벨리가 곱게 보일 수 없었던 것이다.

         위문단에 제기한 상황만으로도 메디치 가문은 마키아벨리를 싫어했다. 상대가 자신의 가문을 비판했기에, 싫어하는 정도는 말로 표현되지 않을 정도일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정치 성향을 살짝 살피니,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정치 체계는 군주정이 아닌 공화정이다. 고대 로마처럼 공화정이 제대로 돌아갔던 상황을 이상향으로 삼았다. 이런 정치관 때문에 그가 메디치 가문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메디치 가문은 군주정을 표방하여 지배해왔기에 이런 행위는 아주 가증스럽게 들렸을테다. 그냥 ‘저 못된 놈’이었을 것이다.

 

         결국, ‘다른 사람은 몰라도 쟤는 싫다. 쟤만 아니면 된다.’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는 가문인데, 여기에 더하여 마키아벨리의 속이 너무 뻔히 보였다. ‘야 내가 니네 편 되어줄게.’

그래서 가문은 마키아벨리를 채용하지 않았다. ‘忠의 사람이 필요하지 智의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다’라는 이유로 그냥 문전박대 당했다. 메디치 가문 사람에게는 명령에 순순히 따라와 줄 사람만이 필요했다. 더욱이 메디치 가문이 바랐던 것은 마키아벨리와 아주 다르다. 그들은 피렌체를 지배하며 부와 권력을 누리려고 했지 그들의 기준으로 허황된 야심은 없었다. ‘이탈리아를 통일해서 고대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자!!!!’라는 마키아벨리의 야심은 메디치 가문에게는 그저 옆 동네 정치꾼의 몽상이자 허황된 야심에 불과했다. 또한 여타 귀족 가문처럼, 누가 자기 머리 위에 있는 상황을 싫어했을 뿐이다.

         메디치 가문을 좀 더 살펴보면, 이 가문은 상인 가문에서 기반을 닦으며 귀족이 된 케이스다. 유명한 장사꾼인 조반니 디 비치와 코시모 데 메디치는 경쟁 가문의 의심 및 견제를 피하는 데 애쓰면서 처신을 잘 했다. 그리고 여러 사람으로부터 메디치 가문을 존경받도록 만들었다. 이 두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 품었던 속셈이 따로 있을지언정, 처세에 관해서만 언급하자면 상당히 훌륭한 처세임이 확실하다. 이 시기는 훌륭하게 보냈지만, 귀족 가문으로 올라갔을 때는 점점 추악한 본질을 드러냈다. 뭐 당연하겠지만 상인 시절의 덕목이 필요할 일이 없을 터니까 말이다. 중세 유럽 사회에서 귀족이 특권을 행사하는 그 행동에 동참했다. 위대한 로렌초의 아들인 불행한 피에로가 가문을 망친 행동을 거듭한 밑 배경이 나는 이렇다고 생각한다. 귀족이니까 내 맘대로. 내 밑이니까 내 맘대로. 이런 습성이 피에로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에게도 이어간 듯하다.

         ‘피렌체의 가슴과 젖을 활용하여, 내 욕망을 채워갈 것이다.’ 로렌초 데 메디치가 비서에게 한 이야기다. 할아버지의 위대한 이름을 이었지만, 그냥 그랬을 뿐인 그였다. 이런 근성이 박힌 사람이니 마키아벨리가 아주 성가시게 여겨졌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니, 본인의 개를 위대한 논문과 사람에 비해 더 애지중지하는 그의 모습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을 뒤늦게 해본다.

 

        왜 명사가 쓴 훌륭한 저서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를 고용하지 않았는지까지. 아주 어설픈 탐정의 실타래 풀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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