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된 이십 대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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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 대의 자화상 >
2008년, 한 시간강사가 강의실에서 바보가 되었다. ‘인권과 평화’라는 과목을 강의하던 그는 매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주제 하나를 골라서 이를 보편적 인권의 차원에서 설명했다. 그날의 주제는 ‘KTX 여승무원들의 철도공사 정규직 전환 요구’였다. 사안은 다음과 같았다. 여승무원들은 2004년 최초 채용 당시 정규직 전환을 보장받고 들어왔는데 사측은 그런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갑의 횡포에 화가 난 여승무원들은 2006년 철도공사의 정규직 직접 채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강사는 모든 정황을 살펴봤을 때 “당연히 사측이 무조건 잘못한 거다.”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이 갑자기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되잖아요?” 이 말에 강사는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그를 더 당혹스럽게 했던 건 그 말이 학생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강의실에 있던 대부분 학생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날을 계기로 그는 4년간 대학생을 주제로 연구에 매진했고, 그 결과 한 권의 책을 내게 된다. 바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차별하는 것도, 차별 받는 것도 당연하게 여기는 20대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20대는 개인의 능력이나 학벌 등에 따른 차별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고 저자는 말한다. 잘 되면 내 탓, 못 되도 내 탓이라는 자기계발의 논리에 20대가 길들여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회에 퍼진 자기계발의 논리가 성공과 실패를 개인의 탓으로 만들고 있어 20대 학생들이 자기계발에 몰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성공한 사람은 누구보다 노력한 사람이고 실패한 사람은 노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를 낳았다. 그는 이 논리의 허점으로 ‘기회의 평등’에 대해 말한다. 흔히 사회에서 쓰이는 기회의 평등이 실제론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은 부유한 집에서 자란 학생과 시작점이 다른데 이를 기회의 평등이라고 볼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 애초에 기회가 평등하지 않았는데 ‘노력 부족’이란 말로 실패자를 깎아내리는 논리가 20대 사이에 퍼져 있다고 말한다.
자기계발 논리가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지금 20대에게 발생하는 문제들의 큰 원인인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차별로 이어진다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20대가 차별에 찬성하는 세대일까? 차별의 뜻은 ‘평등한 지위의 집단을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불평등하게 대우함으로써, 특정 집단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통제형태’다. 바꿔 말해 차별은 폭력이다. 정말 20대는 폭력에 찬성하는 몰상식한 세대인 걸까? 그렇지 않다. 20대는 ‘차별’에 찬성하는 게 아니라 ‘차등’에 찬성한다고 하는 것이 더 맞다. 차등이란 ‘차이가 있음’을 뜻한다. 차별은 객관적 조건이 같을 때 다르게 대우하는 걸 말하고, 차등은 객관적 조건이 다를 때 다르게 대우하는 걸 말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대우한다면 ‘차별’이지만, 모두 똑같은 인간이란 걸 인정하고 능력에 따라서 다르게 대우하는 건 ‘차등’이다.
차등 분배는 자본주의의 핵심 논리다. 차등 분배는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으로 봐야 한다. 지금의 20대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차등 분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차등을 인정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차등 찬성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차별에 찬성하는 건 아니다. 문제의 KTX 토론 사건에서도 학생들은 사건의 전말을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차등 분배 논리로 사건을 분석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일반적인 원리로 생각해본다면 ‘차등에 찬성’하는 게 나쁘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 물론, 차등이 가져오는 학벌주의, 상대적 박탈감, 물질 만능주의, 외모 지상주의 같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
사회는 점차 각박해져가고 있다. 그 각박해져가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 20대들은 오늘도 전쟁터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이러한 20대들의 문제를 당장 해결해줄 수는 없다. 또한 이들에게 ‘힘내!’라는 2글자만 던져주는 위로 따위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저자는 이러한 20대들을 위로하기 보단 20대들의 현재를 냉철히 관찰하고, 그 원인을 짚어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도 이 책에서 명확한 해답은 내리지 못했다. 아마 해답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이미 뿌리 깊게 박힌 우리의 사회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정부와 국민들의 좀 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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