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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배신 – 화이트칼라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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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중건
댓글 0건 조회 4,471회 작성일 15-04-14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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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배신 – 화이트칼라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


예전에 현대 그룹의 신입사원 공채 과정 중에, 같은 사진을 조금씩 변형하여 다른 이름과 주민번호, 이력으로 지원한 ‘가짜 자기 소개서’가 수십 장 발견된 적이 있다. 경찰은 취업 컨설팅업체가 한 짓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으나, 실제론 모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의 연구활동으로 밝혀졌다. 이 연구의 목적은 높은 스펙이 과연 취업에 정말로 유리한가를 알아보는 데 있었다고 한다.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기사가 번번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시대에 ‘취업’과 ‘자기 소개서’ 라는 단어는 그 이름만으로도 한숨을 내쉬게 만든다.

‘긍정의 배신’, ‘노동의 배신’을 저술한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배신 3부작’의 마지막으로 ‘희망의 배신’이라는 책을 펴냈다. 저자는 자신의 기존 경력이 호환되지 않는 세계에 허위 이력서로 취업에 도전하고 그 과정을 책에 담았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얻은 경험과 출판사 홍보부 사람들과 함께 일해 본 경험 등을 떠올려 가며 ‘홍보 전문가’라는 직업으로의 재취업을 가정하였고, 구직을 위한 재활프로그램을 통해 이력서의 작성요령부터 없던 자신감을 만들어내는 교육까지 이수하며 취업을 시도한다. 보통 이런 류의 책을 읽다 보면 책의 중반쯤엔 재취업에 성공하고 기존과 다른 기업에서 일하면서 과도한 야근이나 상사의 험담 등에 힘들어 하는 경험담이 나와줘야 하는데, 저자는 책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원하는 ‘홍보 전문가’ 로써의 재취업에 성공하지 못한다. 근 10개월의 구직활동 동안 임시로 영업직을 몇 번 뛴 것이 저자가 이뤄낸 전부이다.

물론 해당 분야를 전공한 더 유능한 사람이 넘쳤을 수도 있고, 저자 자체가 원래의 글 쓰던 돌아갈 장소가 있어 절실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구직 재활프로그램이나 취업 알선 행사에서 만난 전 화이트칼라 구직자들에게도 연락을 해 본 결과, 11명의 사람 중 본인이 원한 일자리를 얻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비정규직으로 대형 마트에서 육체 노동을 하거나, 건물 화장실 청소 등에 매진했을 뿐이다. 그들은 현재의 일자리는 ‘진짜 일자리’를 얻기 위한 ‘생존용 일자리’ (저자가 구직활동 동안 했던 영업직 등) 라고 이야기하지만, 저자는 그 상태가 결코 재취업을 위한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고 실업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본문 중에 “그들은 열심히 일하면 물질적 풍요와 안정을 누리게 된다는 구식 청교도 윤리 속에서 만사를 올바르게 해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이전에 저자가 저술한 ‘긍정의 배신’과도 같은 맥락이며, 시중에 만연한 자아반성적 자기개발서에서 이야기하는 내용과도 같다. 책 속의 화이트칼라 실직자들은 자신들의 ‘올바른’ 행동이 적어도 자기 분의 치즈 한 조각만큼은 언제라도 그 자리에 있게 해줄 거라 착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맹목적인 충성을 바친 회사에서 버려지고, 실업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일부러 비용을 지불해가면서 까지 구직 재활프로그램에서 실직자끼리 명함을 교환해가며 그들만의 어설픈 네트워크를 꾸리고 있다. 마치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관성을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게다가 구직 재활프로그램에서 그들에게 들이미는 것은 자아반성적인 조언이나 구체적이지 못한 유사 종교적인 제안이다. ‘실직의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으며, 자신의 내면의 문제와 마주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일자리를 끌어들이라’는 말에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 불안한 시기일수록 장사가 잘 되는 건 보험사와 종교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비정상적인 구직 상황은 그러한 우스개도 현실로 받아들이게 한다.

저자는 경제 성장과 안정적 고용 등이 보장됐던 중산층의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지금의 기업 세계는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없애야 전진할 수 있는 서바이벌 게임이 되었음을 떠올리게 한다. 실직은 더 이상 ‘개인적인’ 불행의 범주에 놓여져 있지 않기에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여 어려운 고민을 시작해야 하며, 되려 이러한 공통의 문제에 함께 맞설 기회가 어느 때보다 풍부하다는 지적을 한다. 현 사회의 문제점을 구직 도전기 라는 형식으로 적나라하게 파헤치나 그 답에 대해서는 다소 모호한 결론을 내고 있어 아쉽긴 하다. 허나 책 전반에 깔려있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력은 독자에게 무조건적 복음주의나 긍정주의에 물들지 않는 냉철한 시선을 가지게 해준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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