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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정치 _ 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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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준
댓글 0건 조회 4,576회 작성일 15-04-0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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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정치 _ 한병철



   아침에 눈을 뜨고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았다.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나는 보통 머리맡에 있는 스마트폰을 집어들고 SNS를 확인한다. 누가 어떤 글을 올렸는지, 오늘은 또 무슨 가십거리가 나도는지 등 시덥잖은 글과 그림들을 생각없이 쓸어내린다. 하루를 마치 프로그래밍이라도 된듯이 일련의 무의미한 SNS‘짓’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인생의 낭비라고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각종 달콤한 서비스들에 중독되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여과되지 않은채 무방비하게 쏟아지는 정보들에 주체없이 현혹되고, 선동되는 많은 사람들은 불과 10년 전만해도 자신들의 삶이 이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자유와 구속. 너무나도 상반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도저히 합쳐질 수 없는 이 두 개의 개념이 한 데 잘 어우려져, 잔인하리만큼 조화로운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대사회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의견에 쉽사리 공감할 수 없는게 당연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스마트폰 중독세태를 떠올려보면 스마트폰이 자유와 동시에 구속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손에 들면 못할 것이 없을 정도로 활용도가 높고 전지전능한 힘을 줄 것만 같은 자유로움에 젖겠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스마트폰은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의사결정에 상당한 부분 영향을 주고있다고 볼 수 있다.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하기 보다는 특정 사안에 대해서 유명 인물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여론은 어느 쪽을 향하는지 검색하고 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경향이 농후하다.

 

   자유롭고자 선택한 것이 결국 자신을 구속하는 도구로 작동한 것이다. 이렇듯 스스로는 알아차리지 못한채로 무엇인가에, 누군가에게 구속되어 살아가는 것이 바로 정보화시대 신자유주의의 교묘한 지배방법이다. ‘할 수 있다’를 넘어 ‘하고 싶다’라는 욕망을 창출하고 그 것을 이용함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착취의 굴레로 뛰어들게끔하는 은밀하고 잘 짜여진 신자유주의의 통치술을 ‘심리정치’라고 부른다. 이른바 ‘스마트 권력’이라고도 불리우는 심리정치법은 근대 산업사회의 ‘규율권력’과 대조적이다. 감시를 통해서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제약을 행했던 근대권력체제와 달리, 현대의 정치∙권력 작동방식은 대중을 심리적으로 조작한다. 힘의 논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권력에 스스로 복종하고 자유를 헌납하게 된다.

 

   현대 정보통신기술의 근간을 마련했다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개념인 빅데이터는 심리정치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쏟아내는 빅데이터는 문명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고,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첨단기술을 가능케해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땅치 못한 이가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고, 어떠한 내용의 공약이 특정 지역 주민들을 매료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인간 행동의 모든 것이 정량화되고 예측가능해짐으로써 스마트 권력은 이를 효율적이고도 비열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내가 생성하는 데이터라곤 잠들기전 끄적되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무의식적으로 누른 좋아요밖에 없지만 이 또한 그들에겐 ‘스마트한’ 정치를 위한 좋은 영양분이 된다.


   개인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일상을 네트워크 상에 투영하는 순간,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내적 자아를 통제당하게 된다는 것, 이것이 신자유주의사회에서 빅데이터 기술이 가져오는 특징이다. 온갖 행위 패턴들이 데이터화 되어 이를 통해 사람들의 무의식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지만 실제로 많은 사례가 있어왔다는 사실에, 또 한번 구 산업시대의 이른바 ‘빅브라더’가 부활한 것은 아닌지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나라 기술, 경제발전의 주된 동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만큼 거대한 기업인 삼성도 예외는 아니다. 마치 겨울철 철새의 이동경로를 추적하고 데이터화하듯이 사내에서 사원들이 어디서 얼마를 머물렀는지, 현재 어디에 있는지 등의 정보가 기록된다. 대외적으로 이 데이터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는 그들이 밝히지 않았지만 나의 자취 데이터가 사내 데이터베이스 혹은 네크워크 이곳저곳에 떠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적잖이 찝찝하다.

 

   핵융합 기술이 원자폭탄의 발명을 가져왔듯 기술이 발달하면 애초에 바라지 않았던 부작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마트권력가들의 이 같은 지배방식은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자유를 착취당하고, 힐링으로 킬링되는 사회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우리 마음 자체가 자본의 인질로 붙들려 착취의 대상이 된 지금, 개인 하나하나가 내면을 비우고 자본이 만들어놓은 자유의 그물, 자본의 유혹에 얽혀들지 않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우리들은 마치 ‘매트릭스’라는 거대한 가상공간에 갇혀있지만 이를 깨닫는다 하더라도 극중 네오처럼 빨간약이나 파란 약을 선택할 기회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런 기회는 늘 존재하지만 그런 선택을 할 용기가 없어 생각을 안 한다고 보는 것이 더 맞겠다. 나조차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학생이기에 현명한 대안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모두가 조금 더 느긋하게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가 미끼에 달린 먹이를 덥썩 물지않도록 현명하고 넓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라’고 했던 레닌의 말처럼 각자 내면의 힘을 기르다보면 언젠가는 심리정치를 타파할 수 있는 혁신적이고도 모두가 행복한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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