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역사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위주형
댓글 0건 조회 4,831회 작성일 15-04-14 21:39

본문

 

< 세계사 편력 >

 

  

 

 

 

‘역사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史官)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한국사와 세계사를 교과서를 통해 배워왔다. 그리고 교과서나 선생님이 해주는 설명이 100% 사실인 양 믿고 기억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역사서는 승자들의 의해 기록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논란이 있음은 자명하다. 승자들이 기록하는 전쟁에는 커다란 당위성과 명분이 포함되고, 패자들의 입장을 전혀 대변해주지 않는다. 즉, 기존에 배워오던 역사 교과서에 실린 사실은 과거 역사서를 지은 사람이나 정권, 혹은 현재의 교과서를 지은 사람에 의해 항상 재해석되어 왔다.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주는 세계사 이야기를 담은 <세계사 편력>. 간디와 함께 인도의 독립 운동을 이끈 지도자이자 초대 총리였던 자와할랄 네루가 옥중에서 13세 딸에게 보낸 편지글을 엮은 책으로, 고대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세계사의 주요 흐름을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 형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세계사의 사건들을 두루 살펴보면서 단순한 사실 나열에 그치지 않도록 재미있게 구성하였고, 한 사건이 일어난 다양한 측면들을 전체적으로 일깨워준다. 특히 서구 중심의 역사관을 거부하고 국왕이나 황제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과 소수민족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네루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돋보이는 책이다. 즉, 기존의 승자 위주의 세계사 관점이 아닌 패자 혹은 중립적인 자세에서 이 책을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세계 역사를 서구 중심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균형 잡힌 세계관과 역사관을 갖도록 안내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지도층이 갖추어야 할 도덕적 지침을 전하며, '역사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균형 잡힌 역사 감각으로 역사를 보는 건전한 안목을 키워준다.

“아시아는 지도 전체에 걸쳐 크고 육중한 거인처럼 네 활개를 펴고 드러누워 있지만, 유럽은 왜소하다. 그러나 아시아가 크기 때문에 유럽이 보잘것없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자칫 유럽이 발하는 광채에 눈이 멀어 과거를 잊기 쉽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크게 세계를 움직인 위대한 사상적 지도자, 즉 여러 주요 종교의 창시자들은 낳은 곳이 바로 아시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시아는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소생하고 있다. 세계의 눈길은 아시아로 쏠리고 있다. 아시아가 위대한 역할을 떠맡을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이제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다.” 1931년에 네루가 했던 말이다. 동북아와 동남아의 제 3세계권 국가가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역사의 주도권이 다시 아시아로 넘어오고 있는 듯하다. 네루는 그 누구보다 역사의 이런 시대적 흐름을 앞서 읽었던 것이다. <세계사 편력>이 시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네루는 그간 서양 일변도의 역사적 안목을 조율하여 균형 있는 역사 감각을 가지게 해주며 서양에 대비되는 동양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배워오던 일반적인 교과서와 구별되며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과 가치관을 심어주고 나아가 역사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키워줌으로써 역사를 보는 건전한 안목과 사고력을 길러준다.

 

<세계사 편력>은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교훈이나 인생이야기, 가치관, 도덕과 윤리를 역사라는 매개물을 빌어 풍부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간디의 행동주의에 영향을 받은 네루는 마지막편지를 통해 “행동은 사상의 종점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네루의 편지 속에는 어떻게 지도자가 탄생하고 역사를 이끌어 가는지가 자세하게 담겨 있고, 이 편지글은 훗날 인도의 초대 여성총리가 된 인디라 간디의 신념과 용기의 원천이 되었다. “행동을 동반하지 않는 사상은 모두 미숙아이며 반전이다. 만약 우리가 사상의 주인이 되려 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행동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네루의 말은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 피압박 민족에 대한 애정을 강조한 격조 높은 역사서이자 오늘날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역사란 교과서 속에서 박제화 된 것이 아닌, 함께 참여하여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살아 있는 역사서인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예전에 있었던 일은 시대에 맞게 바뀌어, 그러나 여러 번 되풀이된다. 사람들이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전의 있었던 일이 성공한 것이라면 그것을 본떠 시대에 맞게 재구성하면 되고, 역사의 일이 실패로 끝났던 것이라면 그것을 교훈으로, 또 발판으로 삼아 이번에는 성공을 일구어 내면 되는 것이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사실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국제 정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한 국가였고, 정세는 한동안 서양 열강에 넘어가 있다가 현대에 와서는 다시 중국을 향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 정세에서 역사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반복되는 역사는 항상 ‘진보’만 하지 않고, 때로는 ‘퇴보’의 길을 걷기도 한다. 과거 침략 역사에 대한 독일과 일본의 다른 관점은 역사의 관점에 따라 문제의 본질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또한 과거 역사를 통해 누군가는 ‘진보’의 길을... 또 다른 누군가는 ‘퇴보’의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여실히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라 불리는 강제수용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학살되고 고통을 당했다. 바로 독일의 통치자였던 히틀러, 나치의 잔인한 유대인 학살 정책으로 무려 40만 여명이 희생된 끔찍한 사건이었다. 2015년 1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해방 70주년 행사에서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이러한 과거 끔찍한 사건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거듭 강조했다. “아우슈비츠는 독일 역사의 일부이고 그것 없이 독일의 정체성은 없다. 여기에서 벌어진 일에 굉장한 수치심을 느낀다. 수백만 명이 고통과 죽임을 당하고 일부 독일인이 이를 용인했다는 점에 죄책감을 느낀다. 수백만 희생자에 대한 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매년 독일은 나치 대학살 만행을 뉘우치며 인권과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

 

반면, 일본의 아베 총리는 일본의 패전 70주년을 앞두고 준비 중인 새 담화에서 일본의 과거사를 반성한 무라야마 담화에 담긴 ‘식민 지배와 침략에 대한 통렬한 반성, 사죄’와 같은 주 핵심 단어를 쓰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한, 일본인 학자와 언론인, 정치인 8,700명이 모여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강제동원을 인정한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일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명분으로 소송까지 낸 상황이다.

 

메르켈 vs 아베.jpg

 

용서를 바라는 자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독일과 최소한의 양심조차 외면한 채 역사를 부정하고 있는 일본. 역사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일본 침략에 가장 큰 피해자였던 우리나라 국민의 1인으로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역사에 대한 관점을 바로잡는 시간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