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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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근래 영화계에 분 여러 바람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장르를 꼽자면 바로 DC와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물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우주와 유사해보이지만 서로 간섭받지 않는 평행우주의 지구에서 펼쳐지는 히어로물의 줄거리는 보통 ‘영웅(hero)’과 그에 반하는 ‘빌런(villain)' 사이의 대립을 다룬다. 전직 군인에서부터 신에 이르는 넓은 스펙트럼의 영웅들과 빌런들이 갖는 고유의 특징이 히어로물을 이끄는 주된 요소인데, 이러한 캐릭터성과 영화 제작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히어로물은 파격적인 시각 효과와 뭇 남성들의 추억과 로망을 자극하여 21세기 영화 컨텐츠를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캐릭터는 비단 히어로 영화 뿐만 아니라 소설, 드라마 그리고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 컨텐츠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데, 이러한 면에서 ‘안톤 쉬거(Anton Chigurh)’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캐릭터성 뿐만 아니라, 코엔 형제의 영화에서 나타나는 안톤 쉬거의 비범한 비쥬얼은 차갑고 현실적인 문장으로 유명한 소설 원작자인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의 묘사 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잃어버린 돈 가방을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안톤 쉬거의 행적은 일반적인 범죄 또는 액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이코패스 범죄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만의 논리에 강하게 속박되어 목적을 위해 어떠한 방해물도 거리낄 것이 없는 그에게는 일반적인 사이코패스적 특징 외에도 남 다른 철학이 존재하는데, 어떠한 의사 결정이 순간적인 상황이나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매 순간의 우연에 맡기는 행동 양식을 보인다. 예를 들어 자신의 삶에 누군가가 간섭해 들어올 경우 그 당시의 감정 또는 예정에 따라 무차별적 살인을 저지르기보다, 대상이 직접 참여하는 어떠한 분기를 통해 피해자가 자신의 처우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유도하며 그 결과에 따라 대상은 제거되거나 또는 살아남는다. 이러한 그의 독특한 철학은 사막의 어느 휴게소에서, 마치 휴게소 주인의 운명을 결정짓기 위해 제조된 이후 22년 만에 휴게소에 당도한 동전을 이용한 동전 던지기(coin toss) 씬에서 잘 묘사된다.
이러한 그의 방식은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나, 얼핏 보면 무차별적으로 희생될 수 있는 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처럼 보인다. 제어할 수 없는 우연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우연의 결과는 피해자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불성설로 안톤 쉬거가 잠정적 피해자에게 자신만의 부조리한 규칙을 강요함으로써 생기는 것으로, 결과를 떠나서 그가 위해를 가할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에 불과하다. 돈 가방을 들고 달아난 모스의 아내가 자신에게 목숨을 건 동전 던지기를 강요할 때 “동전이 아니라 당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하는 것처럼, 얼핏 보면 담담하게 세상을 대하는 것 같은 안톤 쉬거의 이치에 맞지 않는 그의 철학은 영화 전반을 아우른다. 우연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스스로에게도 엄격하게 적용할 만큼 가치관이 확고하기는 하나, 재앙과 같은 그의 행보에는 안톤 쉬거 자신의 선택이 온전히 배제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앞서 언급하였던 동전 던지기 또한, 해당 동전의 운명이 휴게소 주인의 행방을 결정짓기 위해 22년 간 여행을 했다기보다 안톤 쉬거가 본인의 가치관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라고 보는 것이 정당해 보인다. 운명 또는 결정론자와 같은 자세를 취하지만, 실제로는 스스로를 거스를 수 없는 힘의 집행자라고 생각하는 궤변론자에 불과하다.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bad ass 중 하나인 토미 리 존스가 이번 영화에서 만큼 무능력하게 비춰지는 경우는 드물다. 지적이면서도 뛰어난 행동력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역할을 주로 연기했던 토미 리 존스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도 여지없이 연로하지만 능력 있고 현명한 보안관인 에드 톰 벨을 연기하였다. 하지만 그는 무력하다. 영화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지만, 책에서 그의 말은 나레이션과 다름없을 만큼 보안관으로서의 그는 무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경험과 이성적 판단은 우연을 가장 부조리한 가치관에 통용되지 않으며, 쫓는 쉬거 뿐만 아니라 쫓기는 르웰린 조차 선악을 구분하기 어려운 캐릭터이기에 쉬거와 르웰린의 행적을 꾸준히 쫓음에도 작품 끝까지 뜬구름만 잡다가 끝난다. 보안관으로서의 능력을 떠나 수십 년간 세상을 경험한 현명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해당 작품에서 안톤 쉬거와 그 주변인들의 행적에서 느낀 것은 일반적인 가치 판단을 무시하는 부조리함의 무서움과 그러한 비합리적인 사회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이성의 위태함이다. 마치 세상 밖에서 온 것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안톤 쉬거의 행동은 우연에 대한 그의 철학과 달리 그의 의지가 미치는 영향력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벨이 전체의 상황에서 이러한 사건을 바라보지만, 현실은 보다 많은 것들을 품고 있으며 대부분은 경험에 의해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함을 내재한다. 벨의 경험이나 안목이 그러한 것들을 간파하지 못할 만큼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처럼 세상은 그가 감당하기에 벅차 보인다. 세상이 개인의 노력과 선택과 무관하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가득한, 우연으로나 설명할 수 있는 염세적인 곳은 아니지만 이를 쉽사리 간과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러한 허망함과 대처할 수 없는 삶의 무력한 면모 때문에 더욱 더 경험을 쌓고 올바른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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