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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배신 -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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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충선
댓글 0건 조회 5,898회 작성일 15-05-1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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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배신 -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  


  최근 대학생들에게 유행하는 ‘5포 세대’라는 말이 있다. 몇 년 전까지 3포 라고 불리던 결혼, 연애, 출산에 내집마련과 인간관계까지 5가지를 포기해야만 하는 세대라는 뜻으로,  여가와 정신적인 자기개발은 사치라는 요즈음의 대학생들과 청년들의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5포 세대’와 맞물려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용어는 바로 ‘스펙사회’ 로, 대학생 사회 내에서는 스펙으로 나를 들어내고, 스펙으로 평가받는다는 분위기가 대학생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대학생들이 스스로의 존재를 찾아 사색하는 시간들이나, 눈으로 보이는 성과로써 나타나지 않는 실제적 경험 – 예를 들어, 아르바이트 라던지 혹은 이력서에 쓸 수 없는 봉사활동 이라던지 – 들을 단지 ‘시간낭비’로만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단지 취업 혹은 진학 자체가 목표가 되어 버린 수십개에 달하는 스펙을 쌓아 가며, 소위 ‘시간낭비’를 하지 않고 정신없이 시스템이 정해 놓은 길에서 발버둥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과연 대학생활 – 혹은 우리의 인생 전체 - 에 어울리는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온라인에서만 100 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던 ‘엘리트 교육의 허점’ 이라는 평론을 쓴 저자 월리엄 데레저위츠는 이 책에서 소위 ‘명문대’로 불리우는 하버드, 예일, 스탠포드를 비롯한 미국의 수 개의 대학들의 교육방식에 대해 문제점을 제시하며, 그런 학교에 다니는 대학생들을 ‘Excellent Sheep” 이라는 양 떼에 비유했다. 명문대 학생이라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같은 길을 걷도록 종용하는 시스템 앞에서 매우 온순하게 걸어가는 양 떼와 같다는 뜻이다. 한 예로 2011년 예일대학에서 1학년의 설문조사에서 때 졸업 후 컨설턴트나 투자전문가가 되겠다고 대답했던 사람은 단 1 명도 없었지만,  4분의 1이나 되는 학생이 금융업과 컨설팅 없계에 취직했다. 이는 예일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며 하버드나 다른 명문대에서도 40% 이상의 졸업생들이 금융업계에 취직하는 현상을 보였는데, 이에 대해서 월스트리트에서 근무하는 한 학생이 작성한 글은 어떻게 해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 월스트리트는 대학이 아주 똑똑하지만 완전히 혼란에 빠진 졸업생을 수없이 많이 배출하고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정신력도 강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직업윤리 또한 지니고 있지만, 앞으로 무엇을 할지 아무런 생각이 없는 아이들 말입니다.”

 

  위의 사회적 현상과 학생의 글은 지금의 대학생들의 어떤 모습을 대변하고 있을까.  ‘돈과 안정, 그리고 성공했다고 바라봐 주는 남들의 시선’ 이 학생들의 목표가 되고, 또한 성공한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졸업생들을 많이 배출해 내고 그들로부터 기부금을 많이 받아내는 것이 대학의 목표가 되었다. 과거의 하루종일 풀밭에 앉아서 시를 읽으면서 사색하고, 밤을 새가면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어했던 일들을 위해 탐구하며, 혹은 정치권으로 올라가기위한 스펙으로써가아닌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옹호하기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길거리를 점령하며 시위를 했던 대학생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단지 돈을 많이 벌고 인정받으며 안정적이기 까지 한 금융업을 위해, 로스쿨을 위해, 의사가 되기 위해 쉴 세 없이 스펙을 쌓아가는 학생들이 있을 뿐이다.

 

 대학은 단지 학생들에게 같은 길을 걷도록 종용하는 기관이 아니다. 자아 성찰과 자기 발견, 이것들이 대학을 통해서 대학생들이 얻어낼 수 있는 최고의 길이다. 물론 자아 실현이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대학의 시스템을 통해서 얻어낼 수도 있겠지만, 단지 안정적인 직업과 돈이라는 물질적인 ‘목표’를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혼란에 빠져 무엇을 할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스펙 사회’의 물결에 휩쓸려 하나씩 쌓여가는 스펙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많은 명문대 대학생들이 마약에 중독되거나 혹은 우울증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자아에 대한 성찰 없이 정해진 길,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을 걸어가다 껍데기만 남아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공허함을 느껴버린 것이 아닐까. 대학은 이제 갓 성인이된 혼란스러운 사람에게 일률적인 길을 제시하고 따라가게 만드는 기관이 아닌, 그들 스스로 ‘무엇이 추구할 가지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책의 후반부에서 작가는 부와 교육이 세습되어 질 수 밖에 없는 현대 ‘실력사회’에 대해서 비판한다. 미국의 명문대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학생들은 비싼 돈을 들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몇몇 사립 학교들이며, 또한 명문대를 졸업한 부유한 부모들은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는 닦여진 길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명문대들은 모든 유능한 학생들에게 입학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정의하는 ‘유능한’의 범위는 돈과 돈으로 얻어 질 수 있는 빠른 정보로 잘 만들어질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부와 계급, 그리고 학력이 세습되어 질 수 밖에 없는 현 시스템이 만들어 진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비단 미국사회 뿐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살고 있는 동네는 유독 기초 생활수급자나 한부모 자녀들이 많은 동네이다. 다행히 꽤 많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었던 나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이나 과외 등으로 이 동네 아이들에게 수학이나 과학을 가르쳐 주기도 했었는데, 이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학력의 세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다. 심지어 초등학생 때부터 특목고와 서울대를 목표로 5~6개의 학원들 다니며 학습해오는 부유한 가정들의 아이들과는 달리, 한 군데의 학원도 다닐 수가 없는 아이들이 수두룩 하다. 또한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아이들은 앞으로 갈 대학이 결정되는 고등학생 기간동안 자의와는 상관없이 집 주변의 음식점을 비롯한 아르바이트 현장으로 내쫓기게 된다. 대학들은 보편적인 공평한 선발을 이야기 하지만, 에초에 시작부터 다른 불공평한 환경속에서 자라난 학생들인데 대학들이 어떻게 ‘잘 교육된’ 학생이 아닌 ‘우수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는 말일까.

 

  작가는 ‘양 떼’를 벗어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으로써 인문학에 대해 이야기 한다. 과학과 경제학, 공학 등은 사실을 머리속에 주입하고, 그것으로 다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학문이다. 사람이 아닌 다른 것들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할 여지가 적고 오로지 전공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정해진 길을 잘 걸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학문이다. 고대로 부터 이어진 철학, 인간의 감정이 풍부하게 묘사되어져 있는 문학, 그리고 예술을 통해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배운다.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배우는 것이 인문학의 끝이 아니다. 사람의 생각과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으며 실현해가며, 추구할 만할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다. 물론 인문학 뿐만이 아니라 대가를 바라지 않는 봉사, 혹은 사람들과의 진정성 있는 상호 관계를 통해 껍데기만 남긴 몸으로 영혼없이 걸어가던 닦여진 길에서 진정한 가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영혼으로 현재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은 후반부에서 설명했던 ‘실력사회’ 에 대한 해결책으로도 설명되어 질 수 있다. 단지 ‘돈’을 위한 연구와 학생선발 그리고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과의 상호관계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에 대한 관심, 그리고 명문대의 허울뿐인 공평한 입학 기회가 아닌 소외된 지역 학생들에게도 진정한 의미의 관심을 기울이며 그곳에서도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의 개편이 바로 그것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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