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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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규정하기엔 그리 많이 알지도, 열정적인 관심도 없지만,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창조론자에 속한다. 사실 현재에 와서는 ‘이젠 잘 모르겠다’는 축에 속하므로 과거에는 그랬었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고 1때 새 친구를 만나 짧은 기간 교회를 나간 적이 있었는데, 나는 몇몇 구성원과 함께 마치 방과 후 활동인 것 마냥 함께 근처 카페를 전전하며 종교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 하나가 창조론이었는데, 그 당시는 공부 빼곤 다 재미있을 때라 아주 흥미롭게 참여했던 것 같다. 이 때문에 교회를 나갔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관련된 서적을 함께 탐독했고, 노아의 홍수가 역사적 사실이라는 주장을 들어가며 ‘젊은 지구론’과 같은, 왠지 감히 나의 얕은 지식으로 언급하면 안 될 것 같은 부분까지도 흥미로운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2년 뒤, 고3 지구과학시간에 수업과 관련한 다큐를 보게 되었다. 그랜드캐니언은 지속적인 퇴적작용에 의해 높이가 수 백 미터에 달하는 정도로 지층이 만들어졌고, 강물이 흐르면서 침식작용으로 또 수 백 미터 깊이의 협곡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 다큐를 보면서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다. 고등학교 수준의 지식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의 퇴적-침식작용의 결과는 근 6천년 만에 생겼다고는 판단하기 힘든 것이었다. 최소 수 천만년, 혹은 그 이상일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지구론에 대한 나의 믿음이 끝난 시기였다.
이후 지구 혹은 우주에 대한 지식들을 접하게 되면서 우주의 역사가 137억년이나 된다는, 부인할 수 없는 과학적 증거를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항상 믿고 싶어 했던 부분은 생명에 대한 창조론이 아니었나 싶다. 나의 얕은 지식에서는 진화라는 것이 결코 과학적으로 사실일 수가 없다는, 나름대로의 확고한 근거를 통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그저 창조론자였던 셈이다.
나는 이전부터 종교와 과학을 떠올리면서 항상 대립만을 기대해왔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제시하는 크리스천 과학자들과의 가상 대담에 상당한 호기심을 느꼈다. 잠시 벗어나면, 책 읽기의 보람은 사실 이런 호기심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확인 작업은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주장이 다른 사람과 어떻게 다른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게 그 스펙트럼이 커져 내 능력을 벗어나기 시작하면 보람은 둘째 치고 더 이상 생각하기가 싫어진다. 이 책의 영향이 바로 그러했고,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기가 상당히 힘들었던 책이었다.
일단 결론을 밝히자면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아직 '창조'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못했다. 근거를 하나 대보자면, 만약 점진적인 진화가 사실이라면 중간단계 생물의 화석 즉, 진화의 중간에 걸쳐있는 반 파충류-포유류종과 같은 종이 온전한 파충류, 포유류의 화석보다 훨씬 더 많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이러한 화석이 거의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 그리고 만일 이런 중간단계 생물들이 존재했었다고 할지라도 그 불완전성으로 인해 생존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진화론의 한 부분에서는 조류는 파충류가 진화한 형태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파충류에서 조류로 진화하는 중간단계에 있는 동물을 상상했을 때 과연 파충류처럼 뛰거나, 먹이를 잡거나, 아니면 조류처럼 날 수 있는 상태였을까? 이런 생명체가 과연 경쟁자들을 모두 제치고 환경에 적응하여 계속 진화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예로, 기본적으로 양서류와 파충류는 심장의 구조가 다르다. 심장은 작은 구멍 하나만으로도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심장의 구조가 변하는 진화과정에서도 과연 이 생물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 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이러한 몇 가지 의문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분명 크리스천들에게(나는 아니지만) 신앙에 근거하면서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에 관한 분명한 통찰을 던져준다. 아마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원리주의'가 아닌가 싶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종교적 믿음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것이다. 마치 사람을 침대에 맞추어 다리를 잘라내려는 것 마냥 세상을 그 조그만 믿음의 틀 안에 끼워 맞추려는 태도가 가장 위험한 것 같다. 심지어는 이슬람의 IS와 같은 극단주의 세력이 보여주는 폭력적인 방법까지도 동원되기도 한다. 사실 이런 원리주의자들은 바로 이 땅의 종교인 중에서도 매우 많다. 지금 한국의 종교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리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큰 부분이 이러한 원리 주의적 태도가 아닐까 싶다.
항상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종교인,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도 막론하고, 항상 모든 사람들의 주장을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에 대해서도 항상 합리적인 의심을 견지해야한다. 물론 성경에 근거한 건전한 신앙의 핵심은 아무리 많은 합리적 의심의 시험이 있더라도 정금과 같이 변함없는 모습을 지킬 것이다. 이런 믿음이야 말로 참되고 소중한 믿음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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