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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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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인
댓글 0건 조회 5,158회 작성일 15-05-06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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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 이옥순 저



      지금껏 살아가는 동안에 내 생각과 가치관을 가장 많이 바꿨던 시간은 2014년 2월부터 시작한 한 달 동안의 배낭여행 기간이었다. 2014년 2월 1일, 나는 인도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었고, 인도에 도착한 뒤 내 몸통만한 배낭을 메고 인도를 여행했다. 왜 하필 인도였을까. 인도에 갔다 온 친구들이 이 나라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인도의 매력을 알고 싶었다.

 

    내가 인도로 배낭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굳이 그렇게 더럽고 지저분하며 위험하고 사기꾼이 많은 곳을 왜 가냐’였다. 게다가 그 시즌에 성폭행을 비롯한 많은 사건과 사고가 발생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도라는 나라를 보는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을 때라 주위에서 유독 심하게 여행을 말렸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라는 책을 읽고 난 뒤 생긴 호기심 때문이었다.

 

    ‘인도를 일주일 여행한 사람은 책을 한 권 쓰고 일곱 달을 머문 사람은 글을 한 편 쓰지만, 인도에 7년 동안 거주한 사람은 아무 것도 쓰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인도라는 나라는 알수록 그 깊이를 알기 어려운 다원적인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흔히 인도를 ‘천의 얼굴’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도는 천의 얼굴 중 하나 혹은 두 개의 얼굴 일 뿐이다. 단일한 논리와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도의 많은 얼굴들이 존재한다. 책의 제목에서도 보여주듯이,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란 제목은 우리가 아는 인도는 실제 인도가 아니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이다. 마치 중국에 짜장면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천의 얼굴이라는 별명을 가진 나라답게 북쪽에는 히말라야 산맥이 있고 남쪽에는 고원 지대와 열대 우림 지역, 그리고 모래 덮인 사막과 해변이 모두 있는 나라이다. 넓고 다양한 기후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양한 인종과 언어들이 발달했고, 이에 따라서 다양한 문화들이 생겼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오랜 세월동안 다양함이 어우러져 공존한다는 것이다. 세계 2위인 13억 명에 가까운 인구, 공용어로만 16개가 지정되어 있는 나라이다.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사람들이 살고 있음에도 하나의 나라를 오랫동안 유지해나간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15세기 멕시코에 온 스페인 정복자들은 아스텍 사제들을 불러서 너희의 신은 죽었으니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아스텍 사제들은 “우리의 신이 죽었다면 우리도 신을 따라 죽겠다.”라고 하고 용감하게 목숨을 버렸다. 만약 인도에 똑같은 상황을 가정했다면 어떠했을까? 분명 인도인들은 기꺼이 가톨릭을 바꿨을 것이다. 단지 인도인들은 그들의 신을 힌두 문화의 하나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힌두의 신처럼 ‘예수 신’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인도를 약 800년 간 통치한 무슬림도 인도의 종교를 바꾸지 못했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무슬림들도 대개 전통적인 힌두의 생활을 그대로 지켰고, 힌두의 신을 숭배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조차도 250년 동안 인도를 통치했지만 그들의 종교를 바꾸지 못했다. 1991년의 인구 센서스를 보면, 무슬림과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11.4퍼센트와 2.4퍼센트를 차지한다. 약 1000년에 가까운 외부 세력의 통치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그 중심을 상실하지 않은 것이다.

  

   앞에서 말한 인도 종교의 특성은 ‘천의 얼굴’이라 불리는 인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다. 영국인들에게 땅과 권력을 빼앗긴 인도인들은 겉으로는 식민지가 되었지만, 속은 결코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 약하고 수동적이라는 비난을 받은 그들은 먼 훗날의 독립을 위해 잠시 비겁하게 보였을 뿐이다. 그들은 외부 세계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단지 그것들에 대해 순응하며 살아간다. 중요한 사실은 그들의 뿌리는 살아있다는 것이다. 비겁하고 위선적으로 보이는 이들의 행동은 힌두 문화의 영원한 생존을 위해서 잠시 죽은 척을 하는 것이다.

 

    인도를 돌아다니면서 크게 충격을 받았던 사건이 있다. 어느 마을에 인상적이었던 건물이 하나 있었다. 그 건물의 안은 기독교 예배당이었는데, 커튼을 걷어보니 힌두 사원이 있었다. 근처 사람에게 물어보니 오전에는 기독교 예배당으로 쓰고, 오후에는 힌두 사원으로 쓴다는 것이었다. 우상숭배는 없어져야한다며 망치를 들고 불상을 부시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충격적이었다. 또한, 인도의 캘커타라는 도시에는 ‘빅토리아 메모리얼’이라는 대표적인 관광지가 있는데, 이 건물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식민지 시절 세워진 건물을 일본의 잔재라며 철거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한민족’이라 부르고 있으며,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지역별로 기후가 크지 않다.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명목 하에 소수의 사람들을 배척하였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나라가 분단되었고,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서 서로를 배척한다. 우리는 ‘다름’에 상당히 민감하며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천의 얼굴’은커녕 두 개의 얼굴도 공존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반면, 인도에는 부와 빈곤, 높은 건물과 판자촌이 나란히 있다. 컴퓨터를 만지는 공학도와 대장간에서 풀무질을 하는 대장장이가 같이 산다. 자동차와 소가 공존하며 도심지와 밭이 함께 존재한다. 고상한 철학과 미신이, 전통을 지키는 보수와 체제를 변화시키려는 진보가 함께 있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한민족이라는 자존감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서로 달라서 좋다고, 서로 다르지만 우리는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포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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