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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장 지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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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성호
댓글 0건 조회 5,234회 작성일 15-05-06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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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계 피라미드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는 근본은 피라미드 상부의 계체가 하부의 계체의 생명을 앗아갈 때 자기 자신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만큼만 섭취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인간이 문명을 이룩하고 도구라는 사다리를 타고 피라미드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올라가면서 이 피라미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필요 이상으로 농경을 시작했고 필요 이상으로 사냥을 했으며 더 나아가 필요 이상으로 다른 인간을 착취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약육강식의 식민지 시대가 찾아왔을 때 강자에 의한 필요 이상의 착취는 극에 달했다. 이러한 식민지 시대, 착취는 형태만 바뀌었을 뿐 지금까지 지속된다. 강대국들의 시민들이 과도한 칼로리 섭취로 인한 비만으로 걱정할 때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의 약소국에서는 어른, 아이 모두 굶주려 죽어간다.


  현재 아프리카나 아시아, 남아메리카의 기아 문제는 자연재해들로 인한 간헐적인 기아 문제가 아닌 인프라와 정치 구조 등으로 빚어진 상시적인 기아의 문제이다. 이들 경작지에는 농업 인프라와 시설이 희박하며 세계적인 정치와 국지적인 정치 모두 현 상태를 바꿀 의지 없이 이들을 착취하여 자신의 배를 살찌우는데 급급할 뿐이다. 아직도 과거 자신들의 식민지국들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 및 유럽의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지도자는 여러 방법으로 축출하고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부패 정치가들을 수장으로 세우려 한다. 또한 과거에는 국가가 주체가 되어 식민지국을 지배했었다면 요즘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라는 ‘트렌드’에 잘 맞는 다국적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약소국의 권리를 약탈한다. 기아를 만성적이고 지속적인 사건으로 만드는 이러한 흐름의 민낯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칠레에서의 아옌데 정권 붕괴와 부르키나파소에서의 상카라 살해 사건이다.


  1970년 칠레의 정권을 잡은 아옌데 대통령은 소아과 의사 출신으로서 자국 어린이들의 심각한 영양 부족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매일 0.5 리터의 분유를 무상 배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공약의 이행을 위해서는 남미의 분유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던 스위스의 다국적 기업 네슬레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러나 아옌데 정권의 개혁으로 인해 남미에서의 영향력 축소를 우려한 미국과, 네슬레를 포함한 다국적 기업들은 아옌데 정권의 모든 정책을 철저하게 방해했고, 결국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부 쿠테타에 의해 아옌데가 대통령 궁에서 살해당함으로써 모든 개혁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1983년 정권을 잡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지도자 상카라의 개혁과 좌절도 유사한 공식을 보이고 있다. 그는 자주관리 정책을 통해 비대한 공직사회를 개혁하고 부패를 척결해갔다. 그리고 철도건설사업을 통해 종족간의 갈등 발생을 억제하고 인두세의 폐지와 토지의 국유화 및 재 할당을 통해 4년만에 자급자족 경제를 성취하고 한층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성할 수 있었다. 문제는 별로 눈에 띄지도 않던 이 나라의 개혁 성공이 주변 부패정권이 들어선 국가들에게는 별로 반가운 현상이 아니었고 더 나아가 이 부패한 국가들을 꼭두각시로 거느리고 있었던 프랑스에게 불편함을 안겨주었다. 결국 상카라는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콩파오레에 의해 살해되고 부르키나파소는 과거 식민지 종주국 프랑스의 이익에 부합해 자기 나라의 식량을 생산해야 할 땅을 프랑스에서 필요로 하는 작물을 공급하는 땅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물론 그 작물에 의한 수입은 부패한 지도자와 관료에게 돌아갔다.


  저자는 이러한 부당한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국가들과 그 국가들을 움직이는 강력한 자유주의 시장원리주의자들의 악마와 같은 속성을 지적하고 있으며 이를 넘지 못하면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저자가 생각하는 문제 해결 방향은 공동체적 대응과 개인적 대응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공동체적 대응이다. 그는 단호히 원조보다는 개혁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배고픔의 고통에 시달리는 민중들이 그 문제의 원인으로서 금권에 휘둘리는 자유주의의 본질을 인식하고 그것에 놀아나는 부패한 관료들에게 단합된 힘을 과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앞서 칠레나 부르키나파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 국가가 혁명의 첫 단추를 꿰기 시작했다면, 자유주의의 망상에 찌든 국가들이 이를 훼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이러한 행동은 범죄행위로서 분명히 인지되어야 하고 국제적 범죄행위의 예방을 위해 세계 경제는 '기아는 극복되어야 하며 지구상의 모든 거주민은 충분히 식량을 확보해야 한다.'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굴러가야 할 것이다. 과거 루소는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고 법이 해방이다.’ 라는 말을 했다. 자본주의, 자유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에 경제를 맡기면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 주장하는 학자들과 권력에 대항해서 싸워야 한다.


  둘째, 개인적 대응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의 고통을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임을 인식하여 연대감을 키우면 인간성의 회복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몇몇 학자들은 기아가 마치 자연이 스스로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어느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이론을 펼치고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개개인은 이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불가피한 희생에서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은 사람일 것이다. 즉, 그들이 말하는 희생은 남의 희생이지, 나의 희생이 아니므로 이미 보편성과 타당성을 상실한 궤변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아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전체 식량 생산량이 120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통계는 이미 1984년에 나왔다. 지난 30여 년 동안 몇 차례 발생한 식량 가격의 폭등은 생산량의 감소 때문이 아니라 일정 가격을 유지하거나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려 이득을 보려는 선진국들의 이기심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자유주의가 만연하는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다. 낙수효과라는 궤변이 경제이론의 허울을 뒤집어쓰고 이 사회를 장악하고 있고 그 속에서 강자들을 위한 정책이 생기고 또 강자들은 이러한 정책을 남용한다. 장을 보러 마트에 가면 진열장마다 물건이 쌓여있다. 많은 물건들이 팔려나가지만, 한편으로 많은 물건들이 폐기되고, 그 폐기되는 것들 중 상당수는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생명을 내어준 육류와 어패류들이다. 현대 사회에서 자신이 사회에서 약간이라도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면, 또는 대형 마트 진열장에 물건이 모자라 약간이라도 빈 구석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이는 곧바로 패배의식과 불안감으로 개인을 억누른다. 우리가 이러한 시스템에 익숙해져버린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 그리고 이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에 끊임없이 질문과 의심을 던져야 한다. 이러한 질문과 의심들이 우리를 각성하게 만들 것이고, 거대하게만 보이는 불합리한 사회는 바로 개개인의 각성에 의해 붕괴될 것이다. 공감하는 인간의 본성을 되찾고, 이러한 공감을 지구와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게 확장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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