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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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 Cass R. Sunstein
미국에서 9.11 테러가 일어나고 3년 뒤인 2004년, 여론조사 결과 뉴욕 시민의 약 49%가 정부 관료들이 사건을 사전에 알고도 일부러 대응하지 않았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13년 미국의 한 여론 조사 결과, 미국인의 약 37%가 기후 변화가 거짓말이라고 믿으며, 21%는 미국 정부가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감추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2010년 천안함 1번 어뢰 폭침 사건, 이명박 정부 시절의 자원외교, 2011년 중앙선관위의 디도스 공격, 2012년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4.16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 등, 최근 한국에서도 이른바 ‘음모론’이라 불리우는 이슈들이 끊임없이 회자된다. 음모론은 뒤늦게 진실로 밝혀지기도 하고, 일부 확신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보편적인 거짓으로 인식되며 차차 수그러들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며 출처가 명확한 민주사회에서 음모론이 설 자리는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이다.
자유 언론이 부재하는 독재 정권 치하의 국민들은 그들이 듣는 공식적인 발표를 전부 혹은 대부분 불신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음모론이 진실의 실체일 확률도 높아진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견제와 균형이 지속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정부가 진실을 오랫동안 감추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 2009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된 ‘미네르바’ 사건의 경우를 보게 되면 과연 대한민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정부가 말하는 ‘소통’이 인터넷 통제, PD수첩 수사, 촛불집회의 공권력 투입 등과 같은 것이라면, 국민들은 정부의 공식 발표를 전적으로 믿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질만 하다.
국민들은 지난 몇 년간,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공식적인 방법에 의한 언론 발표나 비공식적인 주식판에서 판을 치는 찌라시 같은 형태의 것들로 펴져나가는 음모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알아오고 있다. 만약 권위 있는 이들이 음해성 거짓말을 퍼뜨린다면, 악성 댓글이 공고화 된다면, 공작성의 찌라시가 증권가를 휩쓴다면,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다면 국민들은 이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것도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국가나 국가 기관에 대한 것이라면 말이다. 대개의 음모는 부풀려지기 마련이지만 그런가? 했다가도 곧이어 그렇군!으로 바뀌는게 음모론의 파괴력이기도 하다. 개인이 직접 진실 여부를 조사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기에 대중들은 음모론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는 음모이론(Conspiracy theories)을, 고통과 재난 등이 어떤 강력한 개인이나 집단의 음모에 의해 발생한다고 설명하는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던 대중을 감시하는 빅 브라더가 무서워 국민들은 순응하면서도, 정부가 제아무리 합리한 이야기를 꺼내도 믿으려 들지 않는 불신에서 어떤 음모가 있을 것이라고 추청하면서 유언비어를 만들어 낸다. 부도덕한 정권하에서 벌어지는 믿기 힘든 사건들은 늘 유언비어와 음모 이론을 낳게 마련이다. 음모이론은 일반적으로 사회가 혼란할 때 가장 설득력을 갖는데 즉, 우리의 삶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서 명확한 해석이 어려울 때, 사회를 이끌어 가는 중심적인 역할을 할 무언가가 없을 때, 바로 지금 같은 때, 음모이론이 빛을 발한다는 뜻이다.
소문과 거짓말, 그리고 그 속에 섞여 희석된 진실들. 그야말로 수많은 이야깃거리들이 무성한 세상이다. 낭설도 있고, 음모론도 있을 것이다. 걸러지지 않는 인터넷 기사들, 블로그 글들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음모론은 더욱 확산된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일수록 소문은 발없는 말이 되어 달린다. 거대한 사건일수록 음모론은 제기되고 국민들은 정부의 공식발표에 의심을 사기 시작한다. SNS의 발달로 속도까지 빠른 세상이기에 음모가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가질 수가 있는 세상이다.
음모론을 제기하는 국민들의 문제가 아니다. 허위 사실 유포죄로 국민을 단죄하는 게 현재 시점에서 정부가 해야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정부의 발표나 정치인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못한다는 데 있다. 최근 수없이 있어왔던 정치인들의 비리 등을 비롯한 일련의 사태들로 음모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일부 음모론은 사실로 밝혀지기도 하기에 국민들은 정부와 정치가, 언론인에 대해 불신이 쌓여가고, 이러한 현상이 음모론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음모론이 확산되면 피해를 입는 건 정부, 정치인 그 누구도 아니다. 바로 국민이다.
서로가 믿고 신뢰할 수 있으려면 음모론도 없어야 되지만 정부와 정치인, 언론인들의 신뢰회복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들도 조금 더 투명하게 사건을 바라보고 얄팍한 바람에 휘둘리지 않게 신념을 바로잡아야 한다. 더 이상의 유언비어와 무성한 추측성 보도, 음모론의 양산과 확대는 바라지 않는다. 좀 더 진실한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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