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감 - 김찬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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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우리나라 뉴스에는 소위 ‘갑질’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많다. ‘갑질’이라는 단어는 순서나 차례를 매길 때 쓰는 ‘갑’이라는 글자에, 어떠한 행동이나 동작을 의미하는 ‘질’이라는 글자가 붙어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흔히 ‘갑을관계’라고도 하는데, 이는 권력과 돈을 가진 강자가 가지지 못한 약자에게 행하는 모욕을 주는 말과 부당한 행동들을 의미한다.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가 대한항공 일등석에서 승무원의 서비스를 문제 삼으며 난동을 피워 이륙 준비 중이던 항공기를 되돌리고 승무원을 비행기에서 내리게 하면서 화제가 되었던 ‘땅콩회항’ 사건과 부천 현대백화점 VIP 모녀가 백화점 주차장에서 주차 아르바이트생의 말을 무시하고, 직원들을 무릎 꿇게 하고 뺨을 때리고 폭언을 퍼부은 사건, 한 대형마트에서 20대의 한 여성이 어머니뻘인 마트 계산원에게 폭언을 품은 사건 모두 소위 말하는 ‘갑질’을 대표하는 사건이다. 앞에서 언급한 사건들 이외에도, 최근 우리나라 사회에서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갑질’을 하는 사례들이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현상들이 만연한 우리나라를 파악하는 데는 ‘자존감’이라는 요소가 필수적이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지만, 세계 최상위권의 자살률과 최하위권의 행복지수, 인터넷에 범람하는 악성 댓글, 가혹한 입시경쟁 등의 사실을 볼 때, 낮은 자존감이 우리나라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낮은 행복감과 낮은 자존감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각박하게 만든다. 자신 스스로의 자존감이 낮으니 자신의 가치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엄청나지만, 우리나라 사회는 웬만큼 잘난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 사람을 인정해 주지는 않는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급격한 성장 이후 저성장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삶의 기반이 흔들렸다. 궁핍한 경제생활 속에서 비롯된 결핍과 공허함, 불안감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모멸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확인한다. 낮은 자존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 중 하나는 거칠게 행동하는 것이다. 폭력을 행하고 폭언을 서슴지 않는 것도 이런 행동들을 통해 자부심을 얻기 위함이다. 누군가를 낮추고 깔아뭉개면 자신이 높이 올라가는 듯한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갑질’의 핵심은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짓밟고 이를 통해서 나의 존재 가치가 높아지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모멸은 모욕하고 경멸하는 것, 타인을 의도적으로 낮추고 격하시키며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것,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내준다고 해도 반드시 지키려는 그 무엇을 망가뜨리는 행위이다. 모멸감이라는 감정은 사람이 가장 견디기 힘든 감정이라고 한다. 종종 뉴스에서 보도되는 자살과 폭력 사건의 대부분은 타인으로부터 받은 모멸감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최근 군부대 내에서 발생한 ‘윤 일병 사건’이나 예전 ‘연쇄살인범 신창원 사건’만 봐도 모멸감이 한 인간을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또한, 영화 <올드보이>나 <디스커넥트>는 모멸감을 받은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며, 어떻게 행동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모멸감을 주는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이유를 짓밟는 행위이며, 이는 물리적인 폭력보다 훨씬 치명적일 수 있다.
여타 다른 선진국에서도 이런 모멸이 없다곤 할 수 없지만, 유독 이런 현상들이 우리나라에서만 심하게 나타난다. 왜 그럴까?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는 내부에서의 요구로 혹은 혁명으로 신분제가 서서히 사라졌지만, 우리나라의 신분제 붕괴는 외부의 영향(강대국의 영향)에 의해 일어났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고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우리나라의 신분제는 단숨에 붕괴하였다. 짧은 기간에 기존의 질서가 송두리째 뽑혔고, 전쟁으로 인해 도시가 파괴되면서 출신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해지면서 양반과 천민의 경계는 점점 사라졌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스스로의 신분제도 철폐가 아니었다. 신분제도에 억압된 사람들이 힘을 모아 무너뜨린 신분제의 청산도, 지배계층으로부터의 자발적인 개혁도 아니었다.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신분제도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아직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신분의식이 남아 있다. 기존의 신분 질서가 무너진 데에 반하여 신분과 서열이라는 의식이 우리의 머릿속에 남아 있고, 단지 그 기준이 전통적인 신분 제도가 아닐 뿐이다. 그 대신에 빈부, 외모, 지위, 학력이 강력한 기준으로 자리 잡고, 이런 차이를 중심으로 귀천을 구분하며 위아래를 구분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 때문에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를 자신보다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또한,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새마을운동을 통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전 국민의 목표가 오로지 가난의 탈출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삶의 다양한 관점을 보는 가치를 가지지 못했다. 돈이 없어도, 권력이 없어도 한 사람이 자존감을 갖고 행복을 누리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사회는 오로지 돈과 권력만이 자존감을 유지하는 요소가 된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사회는 경제 수준에 비해서 행복지수도 낮고 자존감도 낮다.
우습게도 우리나라처럼 ‘사장님’ 혹은 ‘사모님’ 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는 나라가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치는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타인이 보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상대방을 하대하고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하면서 타인에게 모멸감을 준다. 이렇게 모멸감을 느낀 사람은 낮아진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다시 타인에게 모멸감을 준다. 일례로, 서비스직에 종사하거나 주문받는 등의 아르바이트 경험을 하며 모멸감을 느꼈던 사람이 손님의 입장에 서면 모멸감을 주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군대에서 많이 맞은 사람이 후임이 들어오면 더 괴롭히고, 호된 시집살이를 해 본 며느리가 새로 며느리가 들어오면 더 구박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러한 모멸의 악순환은 대한민국 사회의 수준을 낮추고, 살기 어렵게, 각박하게 만든다.
더욱이 압축성장 이후, IMF 사건 이후 급격화된 양극화 속에서 살아가다가 최근 들어 저성장의 길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또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누군가에게 마음 붙일 곳도 없는 사회가 되었고,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물질이나 권력을 인정해주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게다가,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자주 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감이 낮다는 연구 결과와 같이, 정보의 폭증으로 인해 타인과 자신을 계속 비교하게 되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이 늘어났다. 그래서 누가 모멸감을 주지 않더라도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생활하면 순전히 본인의 낮은 자존감 때문에 모멸감을 느낀다.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접을 받지 못하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하청업체의 대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갑질’을 하고, 직원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언성을 높이고, 자기가 누군지 아냐고 하면서 특별 대우를 받지 못해 폭언을 하며 자기의 감정을 표출한다. 모멸감을 주는 사회만큼 무서운 것이 쉽게 주위의 환경으로부터 모멸감을 느끼는 마음이다. 이것은 모멸감의 악순환을 만드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나라 사회의 모멸의 악순환을 깨야 한다. 그래야만이 우리 사회의 폐해가 없어지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품위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품위있는 사회는 서로 간에 모멸을 주고받는 일이 없으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며 권리를 인정하는 사회이다. 즉, ‘갑질’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이며, 가진 자 스스로도 ‘갑질’을 부끄럽게 느낄 만큼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회라는 말이다. 자기 스스로의 자존감만 높아도 모멸감의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위해 우리는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해주는 사회를 만들어야한다. 다행인 것은 옛날과는 다르게 ‘갑질’에 대한 사건들이 뉴스에 종종 나오고, 이런 행동들을 부끄럽게 여기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거론되지 않을 사건들이 - 갑질이나 성희롱 등 - 뉴스에서 보도되고, 국민들이 이를 보며 분노하는 현상들에서 우리는 긍정적인 미래를 찾을 수 있다. 압축성장의 여파로 사람들에게 생긴 상처들이 아무는 과정에서 생긴 고름이 지금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수치와 굴욕, 모멸이 없는 사회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과 같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누군가를 모멸하고 경멸하면 자신에게 되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이를 통해서 각자가 존중받고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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