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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 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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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환
댓글 0건 조회 4,647회 작성일 15-04-05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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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나라 책도 아닌 중국 작가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 아닌가 싶다. 흔히 접하지도 않았을 뿐 더러 중국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나도 모르게 각인된 어떤 이미지 때문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책은 부성애를 그리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을 읽은 독자들도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도 ‘허삼관 매혈기’는 아버지의 사랑만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책의 서문에서 작가 위화는 “이 책은 평등에 관한 이야기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작가는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평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말일까?

 

  허삼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도 명예도 아닌, 그저 이웃, 주변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그들보다 배부르게 먹고 살다 가는 것이다. 작가가 서문에서 소개한 자신의 우상들과 대등한 위치에 놓이고 싶어하는 옛 시인의 평등과는 다른 것이다. 허삼관에게는 그런 흠모의 대상은 없을뿐더러 고상한 가치관도 없다. 단지 허삼관은 그만의 평등관을 갖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그 평등관은 모두가 다 똑같다는 절대적 평등관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허삼관의 모습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드러난다.

 

  먼저, 허삼관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임분방과의 이야기이다. 허삼관은 자기가 일하던 공장의 동료 임분방이 다리를 다치자 문병을 가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하고 만다. 그 후 허삼관은 피를 팔아서 갖은 음식들을 임분방에게 사준다. 아마도 허삼관은 그런 행동이 자신의 잘못을 만회하는 길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임분방과의 관계도 다시 평등하게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더 가관인 것은 허삼관이 자신의 부인인 허옥란에게 잘못을 들키자 임분방에게 했던 행위를 상세히 털어놓는 장면이다. 여기서 허삼관의 평등관이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허삼관의 행동은 결혼 전 허옥란의 남자친구인 하소용이가 허옥란을 상대로 한 ‘젖을 꽉 쥔’ 행위와 똑같기 때문이다. 그 행위로 인해 허삼관의 아들 일락이는 허삼관의 친아들이 아니게 되었고, 허삼관은 그것을 굉장히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렇게 하소용과 ‘똑같은’짓을 함으로써 허삼관은 허옥란과의 관계도 평등을 회복했을지도 모른다.

 

  허삼관의 평등관은 자식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허삼관의 큰아들 일락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허삼관의 씨가 아니다. 가족들이 흉년으로 인해 굶고 있을 때 허삼관은 피를 팔아 국수를 가족들에게 먹이지만 일락이는 예외로 한다. 피를 판 행위는 목숨을 판 행위와 같으므로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너에게는 피를 판 돈으로 국수를 사 줄 수가 없으니 이해해 달라는 허삼관의 논리와 그것에 수긍하는 일락이의 대화내용을 읽고 있자니 기가막혀 웃을수도 울 수도 없다. 나와 너의 기브앤 테이크 관계를 지나치게 따지는 허삼관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차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일락이에게 다른 가족과 똑같이 국수를 사주는 것을 보면 그의 평등관에도 역시 예외는 존재했나 보다.

 

  허삼관에게 매혈을 한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를 갖는 일이다. 결국 피를 파는 행위가 그에게는 평등을 위한 행위였을 것이다. 본인에게나 가족에게 중요한 일이 생기면 피를 팔아서 해결했던 그에게 매혈은 돈 이상의 가치, 정말 목숨과도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즉, 그에게 남들과의 평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매혈이었을 것이다. 일단 사람은 돈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남들은 밥도 먹고 학교도 가는데, 돈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해서 ‘차이’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매혈이다. 그러나 허삼관의 세계관에 따르면 그는 피를 팔아 꽤 평등한 삶을 실현한 것 같지만, 그의 평등관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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