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금서 - 김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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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금서 - 김진명 (2009)
우리 나라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중 사극은 끊임없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결부되어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극은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점에서, 여타의 드라마와 차별되며, 그에 따라 시청자들은 단순한 허구적인 이야기 보다 깊은 관심을 보이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적 사건을 드라마의 일부로만 사용할 수도, 혹은 허구적 요소가 매우 적을 수도 있지만, 시청자들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에 보다 더 재미를 느끼는 것은 분명한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에서도 ‘본 영화는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각색되었다’와 같은 문구를 굳이 삽입하는 경우를 고려해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따라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가의 입장에서는,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구별하지 못하게 하는 점은 시청자로 하여금 모든 이야기가 사실로 여겨지게 만드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대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찾아보지 않는다면 사극에 나오는 이야기 중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구별할 수가 없게 되어 버리고 우리는 마치 거의 대부분이 정말 있었던 일인 것처럼 여기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드라마는 ‘시청률’ 확보를 통한 수익을 목적으로 제작되는 것이지,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주입시키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드라마의 내용에 대해 일일이 사실인지 아닌지 구별해가며 보지 않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이러한 드라마를 많이 접하게 될수록 허구를 진실로 여기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하였지만, 이 문제는 모든 창조적인 결과물에 대해 적용할 수 있으며, 그 중 가장 광범위한 것 중 하나가 소설이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은, 말 그대로 소설이다. 작가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영감을 얻고 그로부터 극적인 요소를 도입하기 위해, 때로는 없던 인물을 창조해내고 있었던 사실을 일부 변형시키기도 한다. 독자들은 ‘소설’을 읽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허구성이 포함되어 있음을 고려하고 책을 읽겠지만, 아무래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도 동시에 생각하다 보면, 과연 이 내용은 사실일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어떤 작품들에 대해 온통 거짓말 투성이, 왜곡 덩어리 등과 같이 치부해버리기도 하지만, 어떡하랴, 원래 소설이란 그런 것임을.
내가 지난 번에 한번 리뷰를 했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저자 김진명 작가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흥미진진한 소설을 쓰는데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표적인 작가임에 틀림없다. 김진명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어본 독자들은 잘 알 텐데, 이 작가는 본래 한국과 일본, 중국 등과 엮어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쓴 작품들이 많다. 그의 소설들이 워낙 널리 읽히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의 소설에 나오는 사건들을 정말 있었던 일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이것은 그만큼 그가 이야기를 잘 엮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많은 대표작들 중에 이번에는 ‘천년의 금서’라는 작품을 이번에 읽어보게 되었다. 예전에 ebs에서 잠깐 읽어주는 것을 들었는데, 그 내용이 참 재미있고 흥미진진했었다.
이 소설은 국호인 ‘대한민국’에 나오는 ‘한(韓)’이라는 글자의 뿌리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사료를 뒤져보아도 ‘한’이라는 말을 쓴 경우는 매우 드물며, 고조선을 계승한 조선과 달리 ‘한’을 계승한다는 측면에서의 대한제국의 국호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궁금해 한다. 우리 역사상 처음 ‘한’이라는 말을 사용한 경우는 ‘삼한’이며, 그 삼한은 한반도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던 작은 세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그 작은 삼한을 계승한다고 ‘한’이라는 말을 국호에 쓰게 되었는지,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에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의문에 대해 따라가는 추리소설적인 측면이 강하다. 소설의 처음에는 어떤 한 대학의 여 교수인 미진이 자신의 사고에서 ‘사서삼경’에 줄을 걸고 목을 매단 채로 앉아서 죽는 사건이 발생하며, 이에 대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일 것이라는 의문에서, 친구이자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이정서가 사건을 쫓아가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녀의 컴퓨터와 연구 기록에서 그들의 또 다른 친구인 한은원 이라는 역사학자와 함께 어떤 연구를 진행해 온 것을 알게 되었고 그녀들이 함께 연구하던 것은 다름 아닌 ‘오성취루’, 즉 수금화목토성이 루성 (지금의 양자리) 근처에 모였다는 것, 와 ‘한’의 뿌리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은원과 연락이 안 되는 사실로부터 정서는 직감적으로 정서의 죽음은 은원과의 연구 때문일 것으로 생각했고, 중국에 가 있는 은원의 안전도 매우 불안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서는 은원의 웹하드에서 도저히 연락이 되지 않는 은원이 자신에게 남기는 메시지인 ‘나는 오성의 집결을 관측한 기록을 보고 동국(東國)이 이미 큰 나라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로부터 천 년 후 이들의 자손이 주(周)를 찾았으니 그 내력이 중화(中華)에 못지않으리라. 놀라운 일이로다! 놀라운 일이로다! – 왕부 중에서’를 확인하게 된다. 은원은 정서가 자신을 도와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서는 그 뒤로 은원이 지나간 흔적을 쫓으며 그녀를 찾고자 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남겼던 메시지를 발견하고 그녀가 알고자 하는 ‘한’의 근원에 대한 근거를 찾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주도하는 세력들의 위협에 쫓기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과정 중에 정서 역시 은원이 알고자 한 진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고, 왕부가 남긴 ‘씨성본결’이라는 책이 각종 성씨의 기원을 담아둔 책으로 오래전부터 금서로 취급 받아온 사실과, 그 내용에 ‘한’의 기원 역시 담겨 있을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정서가 위기에 빠진 순간 극적으로 은원과 만나며 상황을 타개하게 되고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귀국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은원은 국사편찬 심의회의에 참가하여 자기가 모아둔 근거, 기원전 18세기 ‘단군세기’에 기록된 오성취루를 시뮬레이션으로 보이며 그 동안 무시되었던 ‘단군세기’에 대한 불신을 바꾸는 등의 주장을 통해 이미 선입관을 가지고 단단히 무장하고 있는 수많은 심의위원과 학자들 앞에서 국호인 ‘한’의 유래에 대해 교과서에 실릴 것을 주장한다.
내가 라디오로 들었던 부분은 마지막 부분인 심의회에서 은원이 자신의 근거를 내세우며, 기성 연구학자들에 대한 대담하고 거침없이, 하지만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쏟아내는 장면이었다. 아마 이 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이 부분일 것이다. 보수와 진보, 남성과 여성 등과 같은 프레임도 등장하며, 일본의 역사왜곡, 중국의 역사왜곡, 한국 역사학자들의 부정적인 세력다툼 등에 대한 내용도 포함한다. 그리고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기 위해 은원의 발표 방식을 조금 더 파격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실 소설을 읽는 입장에서 그 내용들의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궁금해진다. 정말 그 내용들이 사실일까. 김진명 작가가 본래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글을 쓰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아쉬운 점도 느껴지지만, 그가 정말 흥미진진하게 글을 쓴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책을 읽고 나니, 정말 내가 역사에 대해 매우 무지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고, 역사에 대해 많은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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