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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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를 읽고
1930년대 제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인하여 많은 나라들이 복구에 힘쓰고 어려웠던 시절과 달리 미국은 이를 기반으로 경제적 성장을 이루며 번영의 시대를 구가하였다. 당시 경기가 좋았기 때문에 주식시장은 호황을 누렸고 앞으로도 미국경제는 장미빛일거란 전망에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낙관적인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불안감에 휩싸인 사람들은 너도나도 주식을 팔게 되고 결국 역사에 검은 목요일이라고 기록된 뉴욕주식 시장의 대폭락이 발생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많은 은행과 공장이 폐쇠되었을 뿐만 아니라 약 천만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실직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경기의 후퇴는 즉시 세계경제에까지 파급되어 여러 국가에서 수백만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불황은 194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분노의 포도’는 당시 대공홍과 큰 가뭄이 불어닥친 오클라호마를 배경으로 하며 삶의 터전을 읽고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서부로 향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경기침체와 가뭄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농민들이 자신의 농토를 버리고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로 떠나게 된다. 장기적인 경제 불황과 가뭄으로 인한 농토의 황폐화뿐만 아니라 19세기 산업혁명을 발단으로 하여 기술의 발전이 농업에도 영향을 주었고, 이는 도시뿐만 아니라 농업사회 역시 기계화시켰으며 수많은 농민들이 자신의 농토를 버리고 도시로 이동했던 이유 중 하나이다. 사람의 편의를 위한 기기의 발전이 농업생산량의 증가와 편의성을 가져오기도 하였지만 반대로 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위협하기도 한 것이다. 기계화로 인한 생산량의 증가, 하지만 일자리 축소와 수입감소에 소비자의 구매력 감소. 이는 재고만 급증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또 농작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기에 대규모 개혁이 없이는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때문에 사람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나게 되는 것이었으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도로와 자동차라는 두 가지 필수요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가족의 둘째 아들은 서부로 떠나기 전 농업이 아닌 중고자동차 가게에서 일을 했었다. 자동차 역시 산업발전의 결과물이며 당시 미국은 대대적인 도로 건설로 인하여 전 지역이 연결될 수 있었고 이는 자동차에 대한 수요의 증가와 자동차를 기반으로 한 생활에 맞는 주유소, 식당등과 같은 서비스 산업을 등장시켰다. 책 속에서도 주인공 가족은 물이나 식료품이 필요할 때 도로변의 가게와 식당을 찾고, 중고자동차 가게에서 일하면서 자동차에 대한 지식이 많던 형을 부러워하고 같은 직업을 같기를 희망하는 동생을 볼 수 있으며, 수요가 증가하자 낮은 품질과 높은 가격에도 장사가 잘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주인공 가족이 서부로 떠나게 된 배경과 과정뿐만 아니라 서부에 도착하고 그 이후의 삶을 통해서도 당시 급변하는 사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산업의 발전으로 라디오와 신문, 그리고 영상매체를 통한 광고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주인공 가족이 서부로 떠나게 된 것도 결국 광고 때문이었다. 기업들이 노동자를 모집하기 위한 광고, 실제 1부의 광고가 나간다 하여도 이를 보는 사람은 그에 4배 혹은 5배 이상이 될 수 있다. 때문에 기업에 일자리를 갖기 위해 지원하는 사람은 증가하게 되고, 앞서 이야기 했던 농업생산물과 같이 일자리에 있어서도 공급은 적지만 수요는 많기 때문에 임금은 점점 더 낮아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광고를 통해 지원자가 몰릴수록 임금은 더 줄어들게 되고 노동자는 여전히 힘든 삶을 살게 되며 기업만 배불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었다. 점점 열악해지는 노동조건속에서 공동체가 등장하게 된다. 노동자들끼리 모여서 설립한 이상적인 공동체는 결국 노동조합이라 할 수 있다. 결국 1930년대에 노동자들을 위한 법이 설립되면서 이들의 공동체는 성공을 이루었다 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 노동자들이 뭉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한 고용주들의 음모와 횡포는 끊임없이 발생하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정당한 임금을 요구하며 파업을 주도한 사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이 당시 고용주들의 방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분노의 포도’라는 소설의 제목은 작가는 ‘사람들의 영혼 속에는 분노의 포도가 가득했고, 분노의 포도는 가지가 휠 정도로 열매를 맺는다’라는 ‘공화국 전쟁의 찬가’라는 시집에서 따왔다고 한다. 포도는 알갱이들이 뭉쳐서 하나를 이루는 과일이다. 농민들이 서부로 모여들면서 새로 얻게된 과일 따는 직업, 하나하나 결집되는 농민들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결국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이들의 희망을 향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던 사회의 모습, 알알이 맺힌 농민들의 상실과 서러움에 대한 분노, 그리고 소설 마지막에 ’사람들의 영혼 속에 분노의 포도가 가지가 휘어지도록 무르익어 간다’ 는 구절은 소설이 제목이 뜻하는 바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소설속 이야기는 사실을 배경을 한 만큼 전혀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격변하는 산업사회속에서 발전한 나라라면 누구나 겪었던 일이고 우리나라 역시 경제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다른나라들이 겪었던 것과 같이 실업률이 갈수록 증가하고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이는 방송이나 매체를 통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식들이다. 빠르고 정확한 정보와 지식이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가난할수록 정보로부터 소외되고 부유한 사람들은 오히려 정보를 가공하고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기에 이러한 문제들이 더욱 심화되는 것 같다. 이러한 문제들이 심화될수록 정당한 노력이 반드시 경쟁에서 이기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기에 오히려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할 수도 있고 양쪽이 주장하고 요구하는 바가 확연히 다르기에 쉽게 모두를 만족시키는 조건을 제시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이런 때 일수록 인간 본연의 마음으로부터 문제를 생각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단순히 부의 축적을 위한 것이 사람을 위하는 것으로, 소설 속에서 모든 것을 잃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애를 바탕으로 희생한 주인공의 여동생처럼 서로가 포용하고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절대로 감상적이거나 이상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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