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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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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위주형
댓글 0건 조회 4,269회 작성일 14-12-09 01:14

본문

 

< 상실의 시대 >

 

 

 

 

‘죽음은 삶의 반대편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분명히 그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음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이런 것이었다. 그 어떤 진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진리도, 그 어떤 성실함도, 그 어떤 강인함도, 그 어떤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실컷 슬퍼한 끝에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렇게 배운 무엇인가도 다음에 닥쳐오는 예치치 않은 슬픔에 대해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혼자서 그 밤의 파도 소리를 듣고,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매일 골똘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책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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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은 이 책의 내용과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책의 일부 글귀이다. ‘상실’... 우리는 누구나 다 ‘상실’하며 살아간다. 다 가진 것 같지만 누구나 결핍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현재는 곧 과거가 되고, 우리의 미래는 곧 현재가 되며 젊음은 아스러지고 생명의 불꽃은 언젠가는 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난 무라카미 하루키.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 혼자라는 고독 속에서 꿈과 사랑, 그리고 정든 사람들을 잃어가는 상실의 아픔을 겪는 세상 모든 청춘을 위한 소설이다.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와타나베'라는 한 남자가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 날에 겪은 감미롭고 황홀하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와타나베가 '기즈키'와 '나오코' 혹은 '나오코'와 '미도리' 등과의 파격적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겪는 사랑뿐 아니라, 질투, 미움, 고독의 심리를 저자 특유의 탁월한 문학성과 문장력에 의해 현란하게 펼쳐낸다. 그 속에서 인생의 허무와 무상, 그리고 그러한 감정을 뛰어넘어 재생의 의욕을 심어주고 있는 책이다.

 

<상실의 시대>라는 책의 분위기에 처음부터 압도당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연애소설보다는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 다른 연애 소설을 볼 때는 스토리 라인을 대강 예상하면서 주연들이 엇갈리거나 서로 갈등이 생겼을 때 함께 긴장하고 갈등한다. 그리고 그 갈등이 해소되었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상실의 시대>는 “왜 그런 감정을 느낄까?”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이 책에는 주인공인 저자의 자전적인 인물, 와타나베를 중심으로 여러 여자 주인공들과 복잡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가끔 헤깔리기도 하고, 가끔 지루하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가 등장인물 개개인을 매력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책장을 넘길수록 그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이 책에서는 보통의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보통의 사랑’이라고 딱히 정의 내려진 건 없지만, 다들 뭔가 이상하고, 어느 한 부분이 결여된 사람이어서 그런지 사랑을 하는 방식 또한 매우 새로웠다. 글 속에서는 여러 가지 삼각관계가 끊임없이 나온다. 그래서 연애소설의 그런 풋풋함보다는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를 보듯이 책을 읽는 내내 무언가 계속 흥미로웠다. 이 책이 계속 흥미로웠던 것은 작가의 청년 당시 삶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의 내용은 매우 ‘직설적’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당당한 면이 참 멋있게 느껴질 정도이다. 스스로의 약점과 감정적인 치부도 부끄럼 없이 표현하고 고백하고 있는 작가가 멋있다고 느껴졌다. 결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마저도 솔직하게 말을 한다. 마음속에 든 감정에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다는 건 당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솔직함이 책의 솔직함이 되었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보다 완벽한 ‘문학’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전혀 보지 못한 표현들을 아무렇지 않게 계속해서 새롭게 탄생시킨다. 똑같은 표현, 평범한 표현은 없다. 생생한 살아있는 글이 독자의 마음을 그렇게 많이 움직이지 않았나 싶다.

 

<상실의 시대>는 젊은 날 느끼는 상실, 그로인한 방황과 고독을 넘어서서 현대사회 자체가 ‘상실의 시대’ 임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발전하여 삶은 편리해졌고, 상실하기는커녕 많은 것을 얻어 가는데 사람들은 심적 상실감, 고독감을 느끼며 괴로워하고 심지어 목숨을 끊기도 한다. 그것은 내적인원인, 즉 사랑의 상실로 각박해져 가는 현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속에서 와타나베처럼 메말라 가는 사람들, 심지어 나도 그것을 느끼고 그 대열에 끼어있다.

 

잃는 순간 얻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순간 죽음과 가까워지고, 타인의 존재를 상실하는 순간 고독을 얻게 된다. 나오코는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가즈키를 얻고, 와타나베를 잃었다. 와타나베는 진정한 사랑을 선택함으로써 나오코를 잃고 미도리를 얻었다. 모두 무엇인가를 잃고, 얻는다. 잃으면서 얻는다. 얻기 위해 잃기도 하고, 잃어버리기 위해 얻기도 한다. 어떤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어떨 때에는 잃을 수밖에 없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어쩌다 보니 잃기도 한다. ‘어떻게 잃느냐?, 무엇을 얻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다만, 내가 지금 무엇을 ‘상실하고 있다.’는 그 상실 자체에 대해 깨닫고 있어야 한다. 존재함 그 자체를 깨달아야 온전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 상실함 그 자체를 알고 있어야 온전한 나와 소통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상실하려고 하는가?’ 작가인 하루키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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