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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센, 그 탄생과 영광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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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성호
댓글 0건 조회 4,406회 작성일 14-12-0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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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의 맹주였던 청나라가 서양 열강들에게 갈기갈기 찢어지면서 찬란했던 동양의 시대가 막을 내린다. 한 때 지구상에서 가장 진보되고 찬란한 문명을 가져 세상의 중심이었던 동양은 서양 열강들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하지만 그 중 일본이라는 한 나라는 메이지 유신으로 대표되는 개혁들로 근대화에 성공해 서양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약소국을 식민지로 잡아먹는 유일한 아시아 국가가 되었다. 진주만 폭격으로 미국과 태평양 전쟁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항공모함 등 해군전력은 일본이 우위에 있을 정도로 강력한 국가를 이룩했다. 최근 일본의 우경화에 따라 태평양전쟁, 일본에서는 대동아 전쟁이라 부르는 이 전쟁을 미화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많은 일본인들이 만약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이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만약 격침된 항공모함이 일본 것이 아니라 미국 항공모함이었다면, 미드웨이 해전을 승리로 이끈 뒤 하와이에 상륙하고 미국과 평화 협상을 했다면, 현재 일본은 많이 달랐을 거라 생각한다. 동아시아와 태평양을 욱일기 아래 내려놨을 것이고, 미국과 비슷한 국력을 유지 했을 거라 생각한다. 이러한 꿈, 소망이 플라자 협정이후로 버블이 붕괴되고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일본인에게 마약처럼 작용하고 있다. 현 아베 정권은 일본인들이 점점 더 마약에 취하게 하고 다시금 19세기의 커다란 일본을 다시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 과정의 일환으로 2차 세계대전 때 만들어진 제로기, 0식 함상전투기를 전시하고 수리, 보수하여 하늘을 날게 하려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제로기는 개발 당시 연합군의 전투기를 능가하는 대단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제로기는 당시 미쓰비시의 공학자 호리코시 지로가 맡아 제작했다. 공학도로서 호리코시 지로의 행동에 대해 과연 공학자가 역사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느냐, 그리고 과거의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려는 일본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미국 라이트 형제가 비행에 성공한 1903년에 태어난 호리코시 지로는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처음 도입된 살상용 비행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런 꿈을 바탕으로 1924년 동경제국대학 항공과에 입학한다. 당시 일본은 서양의 발달된 문물을 국가적 차원에서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과학, 공학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중이었다. 라이트 형제가 동력비행에 성공한 뒤에도 한동안 일본은 비행기를 만들 능력이 없었지만 8년 늦은 1911년 첫 일본산 비행기의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이후 일본은 맹렬하게 모방하고 열심히 따라잡았다. 자체 힘으로 수상 전투기도 만들었다. 1921년에는 최초의 항공모함 호쇼를 진수했다. 항공학과 대학생 호리코시는 이런 시대의 공기를 마시며 전투기 설계자로 성장했다. 지로는 3년의 대학생활을 마친 뒤 1927년 4월 미쓰비시 내연기 주식회사에 입사했다.

 

  호리코시 지로는 본받을만한 공학자였다. 미쓰비시에 입사 후 여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며 1932년 입사 후 5년 뒤, 그가 29살의 나이가 되었을 때 최초로 전투기 설계의 주임을 맡았다. 해군에서 주어진 첫 프로젝트 ‘7번 실험기’를 성공적으로 개발하는데 성공한 지로는 2년뒤 항공모함에서 이륙하는 함상전투기 ‘9번 실험기’ 개발도 성공적으로 마치며 천재적 설계자로 인정받게 된다. 그가 개발한 ‘9번 실험기’는 1937년 중일전쟁에서 사용되어 첫 전투에 적기 30여기를 격추시키게 된다. 이 때 지로의 자서전에서는 아침 신문에 1면에 자신이 설계한 ‘9번 실험기’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그 이후 해군으로부터 ‘12번 시험함상전투기’ 계획 요구서를 받았고 이 프로젝트가 훗날 유명한 제로기를 탄생시키게 된다. 지로는 설계 초기 단계부터 미국 전투기를 압도하는 기동성과 항속거리를 얻기 위해 ‘경량화’를 최대의 과제로 삼았다. 기술자로서 지로는 성실하고 창의적이었고 속도에 따라 프로펠러의 각도가 조정되는 신기술을 채택하는 등 눈치 보지 않고 신기술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이렇게 개발한 초고성능의 ‘12번 시험함상전투기’는 1940년 정식으로 해군에 채용되며 일본이 기원한지 2600년 되는 그 해를 기념하여 ‘0식 함상전투기’라는 정식 명칭을 얻었고 사람들을 이를 줄여 ‘제로기’혹은 ‘제로센’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공학자로서의 호리코시 지로는 공학도로써 존경할만한 삶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근면성실하고 맡은 프로젝트에 대한 집중도가 높고 또 창의력을 발휘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태도는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는 나에게 큰 감명을 준다. 하지만 자신이 개발한 전투기가 일본의 야욕에 사용이 되고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고 한다면 과연 옳은 일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로같은 경우 앞선 중국 침략전쟁에 대해서는 어떤 반성이나 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치 독일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태도를 보이지만 ‘승산이 없어서’라는 태도에 가까웠다. 진주만 공습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지만 이 또한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와 전쟁을 했을 때 이길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입장을 보인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지로는 자신의 조국 일본을 정말 사랑하는 애국자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국가가 인륜적으로 옳지 않는 일을 할 때 눈을 감고 그저 밝은 부분만 본 것은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와 자주 비교가 되는 사람으로는 동시대의 비행기 설계자 후고 융커스가 있다. 독일 융커스사를 만들고 비행기를 설계한 후고 융커스는 나치에 반대했다가 훗날 가택연금이 되었을 정도로 역사의식이 있는 공학자였다. 그에 비해 지로는 역사감각이 치열한 기술자가 아니었다. 과연 과학자는 자신의 창조물이 인륜적으로는 어긋나지만 조국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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