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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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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중건
댓글 0건 조회 4,005회 작성일 15-01-04 20:40

본문

기아는 불행이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라고 볼 수 있는 어린이들이 구조적 부조리에서 제일 먼저 당하게 되는 사회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기아를 겪은 부모 밑에서, 또는 전쟁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상황 아래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통을 겪는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사회 시스템의 진보로 인해 오늘날은 과거에 비해 전세계의 생산량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파격적인 진보가 몇 번씩 이뤄지면서 분명 전세계가 누릴 수 있는 이익의 총량은 분명히 늘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익이 전세계 모두에게 골고루 분배가 되었는가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지금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굶주림에 고통 받는 약소국이 존재하는가 하면 넘치는 부를 주체하지 못하고 누리고 있는 강대국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120억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데,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국가 시스템 측면과 환경적 측면으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 단순히 학술적인 배경에 근거한 전개가 아닌 저자의 아들과의 질의-응답식으로 설명하기에 좀 더 내용이 부드럽게 다가온다.

환경적 측면에서 발생하는 기아는 ‘경제적 기아’로 정의하고, 이는 자연재해나 전쟁 등으로 발생되기 때문에 국제적인 도움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한 문제이다. 하지만 국가 시스템 측면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기아’는 환경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해결이 복잡하게 된다. 거대기업의 횡포, 혹은 이미 오래 전에 구축되어버려 고치기 힘든 시스템, 기아국가의 정치적 문제 등은 식량이 여유롭게 있되, 그것을 옮기는 데에 문제가 생기게끔 한다. 실제로 두 가지 기아의 원인에서 실제로 더 큰 문제는 ‘구조적 기아’일 것이다. 저자는 아옌데와 상카라의 예를 통해 모든 기아의 원인이 그저 인간의 욕심에서 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이후 저자는 자연토대설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18세기에 제기된 자연도태설은 기아가 인간의 수를 식량에 맞춰 적당히 인구밀도를 줄이는 지구의 지혜라고 하는 이론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식량 공급의 증가를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주장임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과거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 이후 기아국가들이 제대로 된 성장 기반을 가질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매달 조금씩 후원금을 보내는 나눔만 할 것이 아니라, 전세계 구성원들이 기아문제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과 더불어 의식변화를 가진다면 분명 잘못된 현 사회 구조의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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