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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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에 대하여
-문형배-
2025년, 탄핵의 소용돌이를 마감할 114쪽 결정문을 쓰면서, 그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냈을까.
책은 자전으로 문을 연다. 서두의 질문의 씨앗은 1980년대, 안치환을 흥얼거리며 책을 사랑하던 한 소시민의 세월에 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그는 구로공단의 작은 공장에 들어가 사람들의 손과 숨을 가까이 바라보며, 분쟁의 말끝마다 스치는 서러움을 배웠다. 그때부터 법은 그에게 권위의 표지가 아니라 설명되어야 할 언어, 약한 쪽의 일상을 지키는 도구가 되었다. 커다란 선언보다 작은 설명이 우선했고, 사정을 끝까지 듣고 가능한 해법을 먼저 제시하며 마지막에만 권능을 부르는 자제의 순서가 습관이 되었다. 그 습관은 곧 독서의 방향을 정했다. 그는 고전에서 방법을 찾았다. 몽테스키외와 도스토옙스키에게서 원칙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 방식을, 칸트와 톨스토이에게서 설명의 윤리를 배웠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조문처럼 굳지 않는다. 고전에서 길어 올린 일상의 말투로 지금 여기의 쟁점을 비추며, 법의 문장을 인간의 호흡에 맞춘다.
돌이켜보면 그의 고전 읽기는 흔한 감상문이 아니다. 주제를 요약하거나 인상을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학이 말하는 정의의 보편과 재판이 다루는 진실의 구체를 잇는 사고법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독해는 종착지가 늘 ‘지금 여기’다. 내가 깨달은 것을 어떻게 오늘의 사회에 적용할 것인가. 그 질문이 2부 전체를 관통한다. 이 지점에서 인용은 장식이 아니라 도구가 된다. 그는 ‘호의’를 선량함의 감상으로 축소하지 않는다. 타자를 존중하기 위한 자기 절제, 관용, 그리고 자제의 실천 기술로 재정의한다. 그러므로 문장은 자연스레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판단하며, 어디서 멈출 것인가로 내려앉는다.
이러한 적용의 기술은 책의 후반부 문턱에서 제도의 언어를 얻는다. 3부에는 사법 독립, 공판중심주의, 양형의 원칙 같은 항목들이 배치되어 있지만, 문체는 건조한 교범으로 흐르지 않는다. 고전으로부터 다져진 호의의 기술 은 끝내 판결이라는 절차의 품위로 승화된다. 고전으로부터 ‘왜’를 확인한 뒤 현실에서 ‘어떻게’ 그 성찰을 운용할지 설명하는 구성이다. 그는 말한다. ‘호의’는 감정의 온기가 아니라 절차를 사람 답게 만드는 운영이며, 핵심은 자제와 독립이다. 그래서 “사형을 선고하지 않았던 원칙, 조정의 비율을 높이려 한 경험” 같은 일화들이 공허한 미담을 넘어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제도적 태도로 자리 잡는다. 신념이 태도로 번역되는 순간, 호의는 사적 미덕을 넘어 공적 규범이 된다.
이 책을 덮고 나면, 그날 대심판정의 모습이 떠오른다. 선고를 앞둔 이상할 만큼 조용한 법정, 그리고 선고 시작 21분 만에 낭독된 재판관 8인 전원일치의 주문. 카메라와 언론은 판결 뒤 그의 ‘정치’를 비췄지만, 선고문을 읽는 그의 음성과 단어들은 절차와 자제의 문법을 증명했다. 감정을 삼키고 사실과 규범의 다리를 놓는 태도. 바로 그 ‘호의의 기술’이 저자의 언어로 대중들에게 다시 한번 강조되었다.
나아가 퇴임의 언설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결정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고, 인용·기각의 승패와 정치의 정념을 넘어, 한국 사법제도에 대한 시민적 예의를 환기한다. 출간 이후 인터뷰에서도 스스로를 ‘시민’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저자는 꾸준히 자신이 ‘정의’를 집행하는 영웅이 아님을 분명히 하며, 영웅서사를 거부하고 주권자의 자리를 복원하는 언어를 택했다. 정치가 감정의 전장으로 흔들릴수록, 정의는 감정을 형식으로 길들이는 시민의 기술 위에서 실현된다. 그의 120편의 글에서 반복되는 ‘호의’의 요청. 말을 아끼는 절제, 상대의 논리를 최선으로 이해하려는 관용은, 그 기술의 최소 단위다. 그래서 이 책은 일반적 회고록이 아니라 읽고 적용하는 훈련 매뉴얼에 가까운 듯하다.
결국 우리는 승패의 언어에 지나치게 익숙해졌다. 유튜브의 알고리즘과 편향된 ‘정치적 성향’의 틀이 타인의 의견을 지우는 동안, 그가 강조한 절차와 호의의 미학은 자주 밀려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특별하다. 제목에서부터 직접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배우고 살아야 하는지 길을 가리킨다. 파면 주문의 낭독, 퇴임사, 담담한 인터뷰로 이어지는 일관성.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제도적 품위에 대한 신념, 감정의 자제를 통한 공적 언어의 정돈, 그리고 시민을 주어로 세우려는 노력. 그의 일관된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다시 한번 묻게 된다. 그는 고전을 법정의 언어로 번역했고, 다시 우리 삶의 언어로 되번역 했다. ‘호의’라는 다리 아래에서 우리는 승패를 넘어 ‘예의’를 회복할 수 있고, 그것이 절차적 제도로 승화되었을 때 비로소 정의는 실현된다.
마치 역사속 수도 없이 많은, 그 날들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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