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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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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준
댓글 0건 조회 935회 작성일 25-10-2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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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원제: The Conscience of a Liberal)’가 긍정적 평가를 받는 것은 단순히 저자 폴 크루그먼이 미국의 유명 경제학자이고, 그가 뉴욕 타임스의 고정 칼럼니스트이며 케인스 이후로 가장 글을 잘 쓰는 경제학자라는 최고의 평가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예견한 미래와 새롭게 이루어가야 할 세상에 대한 제언, 미국의 정치와 경제를 분석하고 그 잘못된 점에 대해 꼬집은 날카로운 시선과 그에 대한 대안은 단지 미국 내의 사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 왔고 내부의 정치적 대립각을 이루고 있는 다른 국가에게도 적지 않는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다. 그는 정치적 변화가 경제적 문제점을 야기 시키는 근거가 된다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함으로써 현재의 경제적 상황을 분석하기 위한 순수경제학적인 접근이 가진 한계를 보여주었다. 또한 미국의 초창기 시절부터 21세기의 미국에 이르기까지 사회, 정치, 경제 전반에 이르는 역사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현대사에 대한 입문서로서의 역할도 톡톡하게 수행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 전반에 걸쳐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몰락하였고 세계화는 시장 경제가 얼마나 강력한 힘과 우월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화 경향이 다수의 국가를 잠식하고, 정부가 경제적 측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축소되면서 시장 영역이 더욱 확대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세계의 경제는 성장세를 맞이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표면적 수치로서만 유효한 평가일 뿐 실제로는 고소득층에 유리한 정책이 도입되고 소득분배가 악화되면서 대부분의 경제적 이익이 소수에 불과한 엘리트층에 집중되는 구조적 기반이 형성,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 바로 폴 크루그먼의 입장이다. 이는 경제적 불평등이 선행되면서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정치적 입장의 차이가 생겨 현재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립 구도가 발생하게 되었다는 일반적인 관련 학자들의 입장을 완전히 뒤집은 것으로, 실제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원인과 결과가 바뀌어 있으며, 정치적 움직임의 결과로 경제적 불평등이 야기되었음을 주장하고 이를 미국의 역사를 낱낱이 분석하여 증명해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가 있다.

 폴 크루그먼의 통찰력은 가히 놀랄 만하다. 그는 1997년 아시아에 외환 위기가 오기 전 태국의 고정 환율시스템의 문제가 있음을 알았고, 1998년 러시아의 금융위기 가능성 또한 경고하였다. 이처럼 전 세계 경제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경제학자로서 폴 크루그먼이 1970년대 이후로 보수주의 운동의 여파를 꾸준히 지속해 온 미국 사회에 대해 경고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점은 결코 가볍게 여길 사안은 아닐 것이다. 폴 크루그먼이 미국 고소득층의 세금 부과율을 증가시켜야 할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 2007년 무렵인데, 실제로 이와 관련한 세금 정책이 다시금 화두에 오른 것은 2011년이다. ‘투자의 귀재’, ‘오마하의 현인’ 등으로 불리며 미국 최고의 투자자로 일컬어지는 워런 버핏이 ‘슈퍼부자 감싸기 정책을 중단하라(Stop Coddling the Super-Rich)’라는 글을 뉴욕타임즈에 기고하여 슈퍼 리치에게 증세를 해 미국 정부의 재정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견을 밝힌 것이 오바마 대통령의 고소득 증세 방안의 계기가 되어 일명 ‘버핏세’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되었다. 2011년 오바마 대통령은 부자증세를 골자로 한 재정감축안을 발표했지만 타협안 마련에 실패하였고, 이후 2012년 버핏세는 경기부양과 부유층 증세에 의한 예산안에 포함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그 논란이 가중되었다.


 폴 크루그먼이 논한 경제와 정치의 관계를 커뮤니케이션 이론 측면에서 살펴보자. 사람이 모이면 집단이 이루어지고, 집단이 이루어지다 보면 권력이 생겨난다. 집단 내의 구성원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생겨나고, 집단과 집단 간의 네트워크 또한 형성된다. 그리고 권력은 네트워크를 움직이는 장악력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지속적으로 이동한다. 이는 커뮤케이션 권력에 대해 이야기한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이 자신의 글 ‘Why Networks Matter’에서 네트워크 환경 속에서의 권력 체계를 논한 내용에 의한다. 폴 크루그먼의 주장에 의해 사회적 제도와 규범을 결정짓는 주요 원인인 정치, 크게 두 가지의 정치적 입장으로 나뉘어 서로 경쟁하게 되는 당파, 이 모든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장(場)이다. 결국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기득권 점유를 위해 끝없이 벌이는 경쟁은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해 나갈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며,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혹은 경제적 불평등의 완화는 바로 커뮤니케이션을 누가 주도해 나갈 것이냐에 달린 문제로 해석된다. 또한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원활히 수행되는가에 따라 경제적 상황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되는 측면으로 행동하고 결정하려고 한다. 폴 크루그먼 이 또한 이 책을 통해 이에 동의한 바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당장 이익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사회 전반에 풍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정책을 내세운 정당인에 투표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정책을 내세우는 사람에게 투표하려 한다는 것이다. 마누엘 카스텔의 커뮤니케이션 권력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네트워크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측면으로 향한다. 그 중 강력한 배경과 입지를 가진 이들이 네트워크 속의 또 다른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강력한 세력을 확보하게 되면, 어느새 집단은 그들의 이익을 향해 움직이도록 조종된다. 따라서 일정 규칙에 의해 프로그램화된 기존의 네트워크를 재 프로그래밍 할 필요가 있다. 이는 2007년 당시 보수주의의 장기 집권을 위협할 수 있는 진보주의의 노력을 주창한 폴 크루그먼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어떤 집단이건 그것을 지배하는 지배층은 존재하고, 그 집권이 지속되다 보면 집단은 자연스럽게 소수의 지배층을 위한 방향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이에 대한 각성과 재 프로그래밍이 요구됨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두 학자는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을까.


 폴 크루그먼이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케인스주의자이며, 정치적으로는 진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음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가 자신이 취하고 있는 경제적, 정치적 입장을 단편적으로만 주장하고 그것을 정당하고 정의로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은 아니다. 폴 크루그먼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정치적 균형을 이루어야 경제적 호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이다. 1970년대 이후로 미국 정치에 장기적으로 이어져 온 보수주의의 득세가 결국 경제적 불균형을 이루는 주요 요인이 되었으니, 이에 맞서는 진보주의 운동의 부흥으로 보수주의의 세력을 완화시키고 커뮤니케이션의 균형을 찾자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적 불균형의 문제를 완화시키자는 것, 또한 그것에 멈추지 말고 더 나아가 새로운 경제적 호황의 시기를 누려보자는 것이 그의 주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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