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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하루 / 신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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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형도
댓글 0건 조회 5,582회 작성일 14-10-3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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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하루 / 신준모

 

         요즘은 그렇지 못하지만 과거에는 일을 할 때 혹은 가끔가다 무언가 번잡한 생각이 들 때면 우롱차를 다려 마셨다. 좋은 차일수록 물의 온도와 양, 그리고 달이는 시간 등에 따라서 그 맛이 금세 바뀐다. 때문에 한 번 달일 때마다 두세 잔 분량의 끓는 물을 부어서 대략 여섯 번 정도를 다려 마시게 된다. 작업은 번거롭지만 그 자체를 즐기게 되면 금세 익숙해진다. 더욱이 한 번 다려낼 때마다 찻물의 빛깔과 향기, 맛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즐기면 보다 섬세하고 다양하게 맛을 볼 수 있다. 글쎄, 이것이 차를 즐기는 한 방법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차도 우리고 우리다 보면 어느새 그 본유의 향과 맛이 떨어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점점 차 달이는 시간을 길게 하여 보다 진하게 우려내보려 하지만, 끝내는 처음 두 세잔에서 느꼈던 맑고 진한 연녹색 빛깔과 달콤한 향기를 재현하지는 못한다. 도리어 억지로 달이는 시간을 늘리면, 돌아오는 것은 향 빠진 찻잎이 주는 타닌의 씁쓸함과 칙칙한 황갈색의 찻빛이 주는 실망감뿐이다. 호승심에 어떻게든 마시겠다고 덤볐다가는 공연히 입맛만 버리게 되어 처음 달여낸 찻물이 나에게 주었던 그 작은 감동마저 잊게 될지 모른다.


         찻잎도 이러할진대, 세상일이 다 이런 것은 아닐까 한다. 무언가 처음에 접하게 될 때에는 그 사물 혹은 사람의 조그마한 장점마저도 크게 보인다. 또 그 당분간은 무언가 달리보이기도 하며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만남 혹은 접촉이 잦아지게 되면, 그 대상에 대한 정보도 늘게 되면서 차츰 익숙해지게 된다. 처음에는 그 '알아 가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지지만, 이내 그것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적에는 그 대상에 대한 흥미도 차츰 떨어지고 실망감이 더해지기도 한다. 씁쓸해지고 칙칙해지는 찻물에서 느꼈던 것처럼. 좀 탁하게 표현하자면 질리게 되는 것이랄까.


         그래도 비록 매 잔마다 그 찻물이 주는 향과 맛과 빛깔의 변화를 '알고 있다'고 해도, 문득 생각날 때면 어김없이 찻잎을 꺼내 조심스레 달여 마셨던 것은 찻물이 나에게 주지 못하는, 바로 내가 차를 마시는 순간마다 받게 되는 어떤 '느낌'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단순히 알고 있다는 차원에서 논의될 것이 아닐 것이다. 때론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매 순간순간마다 미묘하고 은밀하겠지만 나를 각성시키거나 나에게 전혀 다른 인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의도와 비슷한 맥락에서였을까. 세상일에서도 나는 가끔 과거에 대한 경험을 찾는다. 짤막한 인생 경험 속에서 느꼈던 것들, 그리고 그에 대한 의미를 한 번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몇 개월 전 여러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중 이런 사람을 봤다. 자신의 지론은 너무나도 확실한 것이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을 평가내리거나 어떤 상황을 판단할 때, 자신의 그 틀 안에서만 해석을 하던 친구였다. 사람, 연애, 그 외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물론 누구나 다 이런 틀이 있기 마련이지만, 가끔은 이게 자기 자신을 더 고립시키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런 것이 고지식해진다는 것일까? 그 사람은 앞으로 그 틀이 본인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 친구뿐만이 아니라 보통은 이 사실을 본인들은 잘 인지하지 못한다. 나는 이게 두렵다. 과거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지속적으로 환기하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고자 하는 말은 사람의 지론, 혹은 경험 등은 절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은 가고 변화도 존재하며 예외도 존재한다. ‘본인의 생각이 무조건 답이다’라는 식으로, 마치 그것이 매뉴얼인 것처럼 맹신하면 안되는듯하다. 같은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이러한 인상을 충분히 심어줬고 계기도 제공해 줬다고 볼 수 있겠다. 비록 알고 있었던, 그리고 항상 뻔해보였던 무엇들에 대해서 다시 새로워지는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이런 계기가 있을지언정, 새롭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 자신의 마음이 중요할 것이다. 대상에 대해 뻔히 안다고 치부하고 지겨움을 느끼는 것도, 같은 대상에 대해 오랫동안 접해오면서도 매번 새로움을 느끼는 것도, 결국에는 그 느낌을 걸러내는 것은 나의 인상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나 인상들을 좌우하는 것은 대상 자체의 좋고 나쁨 혹은 미추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혹은 세상의 판단 기준이나 시각일 것이다. 고로 인상이나 느낌에 대한 '책임'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식이든 시각이든 뭐로든 표현할 수 있는 내 마음에 우선 있는 것이니, 마음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반성의 마음으로 찻잔을 들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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