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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윌 헌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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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성호
댓글 0건 조회 5,760회 작성일 14-09-0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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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유명한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8월 11일 세상을 떠났다. 태어나서 기억이 있을 때부터 그는 이미 티비 속에서 유명하며 자주 나오는 배우였고 20여년을 살면서 수도 없이 많이 보았던 백인 배우라 생각된다. 영화 속에서 훈훈한 미소를 띄며 옆집 착한 아저씨 같은 그가 우울증으로 자살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그가 주연한 영화 중 고등학교 도덕시간에 처음 본 ‘굿 윌 헌팅’을 보게 되었다. ‘굿 윌 헌팅’에서 그는 숀 맥과이어라는 심리 치료사로 주인공인 윌의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는 멘토로써 나온다. 특히 어릴 적부터 이공계로 진로를 정하고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수학천재 윌은 친근하게 다가왔다. 어릴 때 부터 친척, 친구 등 주변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과학고를 다니는 친구들이나 카이스트를 다니는 친구들에게 ‘너넨 머리가 좋고 좋은 학교 다녀서 인생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을 자주 해왔고 그 말을 실제로 실현해 내기 위해 가슴 속 상처가 생겨도 애써 무시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왔던 것 같다. 이런 일과 속에서 윌의 이야기는 공감이 많이 되었으며 지친 나에게 위로를 해주곤 했다.

 

  굿 윌 헌팅은 영화의 주연이기도 한 멧 데이먼이 하버드에 다니며 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구스 반 산트가 감독했으며 1997년에 개봉한 영화다. 윌은 남부 보스턴 빈민가 출신으로 허름한 집에 살며 망나니 같은 친구들 3명과 같이 붙어 다니며 청소부 같은 일을 하며 매일 저녁에는 바에서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았다.

 

  윌은 망나니 같은 삶을 사는 도중에 인생에 있어서 3번의 큰 울림이 찾아온다. 하나는 하버드 옆에 있는 바에서 하버드생 스카일라를 만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MIT교수 랭보를 만난 것, 또 하나는 랭보의 대학시절 룸메이트이었기도 했던 숀 맥과이어라는 심리 치료사를 만난 것이다. 스카일라와의 첫 만남에서 윌은 짧은 지식으로 잘난 척하며 자신의 친구 척을 놀리려는 하버드 생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다. 스카일라는 이런 윌의 모습을 보고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게 되었다. 이 때 스카일라는 하버드생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적극 적으로 대쉬를 하여 윌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윌은 고아며 여러 양부모를 거쳐 가며 아동 폭력에 시달리며 자랐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아이들은 정상적인 가정환경 특히 정상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야 정상적인 정신체계를 가지게 되는데 윌 같은 경우에는 이런 과정이 순탄치 않아서 마음의 병을 가지게 된 것이다. 첫 번째 울림인 스카일라를 제외한 나머지 두 울림은 윌이 2명의 ‘아버지’를 만나게 된 것이다. 하나는 랭보 교수고 하나는 숀이다. 랭보의 경우는 아이에게 있어서 취미 생활을 같이 공유 할 수 있고 또한 아이가 성공하도록 채찍질을 가하는 아버지 유형이라고 볼 수 있고 그에 비해 숀은 아이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유도하는 아버지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윌은 불우한 성장환경에 의해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세상을 향한 문을 닫아 놓았다. 또한 사랑을 주어야 할 사람들로부터 어릴 적 버림받았고 상처 받았던 기억 때문에 자신이 철저하게 신뢰하는 친구들 외의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닫았다. 윌은 처음에 랭보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고 숀 이전에 랭보가 소개시켜주는 모든 심리치료사들을 자신의 지식으로 깎아 내리고 모욕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윌은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을 랭보와 함께 나누며 랭보를 향한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물게 된다.

 

  처음에 숀을 만났을 때 윌은 다른 심리치료사들에게 했었던 것처럼 헛소리와 모욕감을 주려고 하는데 숀의 아내를 모욕하는 얘기를 할 때 숀이 화가 나서 윌의 멱살을 잡게 된다. 이 때 윌은 ‘이 심리치료사도 상처를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놀라게 된다. 숀과의 두 번째 만남은 영화에서 큰 의미가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윌이 처음으로 친구들이 아닌 다른 사람과 진지한 얘기를 하게 된다. 이 때 숀은 명대사 하나를 날린다. 내 맘에 젤 와 닿았던 말은 ‘내가 네가 어떤 앤지 어떤 삶, 아픔을 가지고 있는지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는다고 알 수 있을까?’이다. 윌은 사람들의 얘기를 듣지 않으려고 하며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자신과 관련된 예를 들으며 이 생각이 서서히 깨지게 된다. 이 순간부터 숀과 윌의 교감이 시작되게 된다.

 

  이 영화에는 크게 두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숀이 심리치료를 하는 과정, 또 다른 하나는 스카일라와 연애하는 과정이다. 윌은 스카일라와 만남이 지속 될수록 스카일라를 피하게 된다. 이는 2가지 원인에 의한 것인데 하나는 윌이 숀과의 만남에서 털어놓는데 지금은 완벽한 스카일라가 만나면 만날수록 재미없어지고 안 예뻐 보이면 어뜩하냐는 고민과 또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을 까봐 방어적인 자세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버려야한다는 생각이다. 연애과정에서 나온 고민 또한 숀이 자신의 아내 얘기를 함으로써 윌의 마음을 조금 더 열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카일라가 윌의 형제들을 궁금해 하며 윌의 삶, 상처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자 윌은 자기 내면의 아픔이 분노로 표출되어 스카일라를 밀어내고 다시 문을 굳게 닫아 버리게 된다.

 

  이 굳게 닫힌 문은 우연한 기회에 열리게 된다. 윌의 두 아버지 간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모든 아버지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싸움이다. 랭보의 경우 윌의 재능이 아까워 숀에게 아인슈타인의 예를 들며 아인슈타인이 젊을 때 윌의 친구들 같은 망나니들과 놀았으면 그 대단한 상대성이론이 나왔겠냐며 숀에게 윌로 하여금 빨리 일자리를 잡게 유도하라고 몰아세웠고 숀의 경우 카진스키라는 천재 수학자가 있었지만 정서적으로 불안한 나머지 자신의 지식을 폭탄테러에 이용했다는 예를 들며 자기 내면에서 준비되지 않으면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맞서게 된다. 윌은 이 두 아버지의 싸움을 우연하게 지켜보게 된다. 이 때 숀이 랭보에게 ‘윌은 너 와 다르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데 이 말은 윌 가슴에 있는 단단한 문에 큰 흠집을 내게 된다. 윌은 이 말을 들으며 숀은 자신을 자신 그대로 받아 드리며 진심으로 자신을 위한다는 숀의 마음을 느꼈다. 앞에 생긴 큰 흠집이 문을 완전이 부수어 버린 것은 숀이 자기 자신도 학대를 당했다는 점을 밝히고 윌에게 다가가며 ‘이건 니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한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유명한 치료법이다. 아이들이 부모가 싸우거나 이혼하거나 자신에게 학대를 가하면 그것이 자신이 모자라고 자신이 잘못해서 그랬다고 마음에 세기게 된다. 이런 흉터가 윌을 그토록 닫힌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건 니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들은 윌은 마음구석에서 이때까지 쌓였던 모든 아픔, 분노, 슬픔이 증발하며 눈물을 터뜨리며 숀을 끌어안는다. 여기서 인상깊게 보아야 할점은 숀이 앞에서 윌을 부를 때처럼 [kid]가 아닌 [son]이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아버지가 없는 윌에게 아버지가 생기는 순간 이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마음의 문이 열린 숀은 기차를 타고 지나가는 씬에서 앞에서 밖을 바라 보지 않았던 것과는 반대로 밖을 바라보며 기차를 탄다. 또 한 앞에 나왔던 기차 씬에 비해 훨씬 더 긴 컷으로 화면이 나오게 되는데 이는 윌의 마음이 열린 것과 또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를 전달해준다고 생각된다. 영화의 제일 마지막 씬은 스카일라를 찾아서 생에 처음으로 보스턴을 벗어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앞의 기차 씬과 마찬가지로 윌이 마음을 열었고 세상을 받아드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간혹 뉴스를 보면 사회의 지도층이며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자란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그런 사람들 중 지식적으로는 성숙했지만 감정적으로 메마르고 남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나온다. 영화초반에 나오는 윌이 이런 모습일 것이다. 1등만을 원하며 효율성만 바라는 사회에서 전쟁터와 같은 경쟁을 뚫고 사회의 꼭대기까지 올라간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너무 낙천적인 생각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힘들고 지치는 경쟁을 거치고 또 거치며 폭력적으로 변하는 내 모습도 본적이 있고 이기적으로 변하는 내 모습도 본적이 많았다.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으로 있는 내가 보다 나은 과학자, 보다 나은 사회 지도층이 될 때에 능력, 지식뿐만 아니라 정서적, 감정적인 부분도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 영화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로빈 윌리엄스라는 대 연기자가 좋은 곳으로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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