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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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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유진
댓글 0건 조회 6,114회 작성일 14-09-30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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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작가로서의 절정기에 이르렀지만 필명을 변경하면서까지 발표한 ‘데미안’을 통해 헤르만 헤세는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한 사람의 성장기? 젊은 나날의 방황, 아니면 끊이지 않는 불안함을 안고 있는 개인의 삶의 자각일지도 모른다. ‘한 젊음의 이야기’라는 부재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데미안’은 주인공인 싱클레어의 젊은 나날을 조명하나, 일반적인 성장기와는 거리가 느껴진다. 책에 읽고 나서 부분 부분의 이야기는 이해가 되었지만 작품을 통해 얘기하고자 하는 큰 그림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느낌이 들었고 생각 끝에 이는 내 삶에 있어서 스스로가 충분한 고뇌와 사색을 거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싱클레어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싱클레어는 젊은 날의 방황과 그에 대한 각성을 통해 자신의 내면 세계에 집중하며 길을 찾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싱클레어는 표면적이고 사회적인 일반적 규범보다 자신만의 세계와 가치관을 중요시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고민에 빠지나 자신만의 인도자인 데미안과의 일화를 통해 정신적인 성숙을 이루게 된다. 포근하나 세상의 경계를 나타냈던 아버지의 집, 첫 눈에 시선을 빼앗고 남몰래 광적인 사랑을 속삭이게 한 이름 모를 베아트리체의 존재 그리고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기 보다 종교적 열망에 사로잡힌 피스토리우스와의 만남 등을 통해 싱클레어는 하나의 나를 완성하게 된다.

 

삶의 의미란 누구에게나 특별하게 다가온다. 단순하지만 철학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다. 나의 삶에 대해 얘기하자면, 치밀하게 계획적이지 않고 큰 의미는 찾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나쁠 것도 없었다고 생각해 왔다. 만사에 신경을 쏟는 것은 감정의 낭비이며 특정하게 형언할 수는 없지만 인생이란 ‘원래’ 뜬구름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자답하였었다. 하지만 원래 그렇다는 것은 있을 수 없듯이 돌이켜보면 현실안주에 지나지 않았고, 근래의 나날들은 ‘원래’ 그렇다고 받아들이기에는 부끄러운 하루하루라고 생각되었다.

 

헤르만 헤세가 자신의 방황을 토대로 내린 인생에 대한 결론이 ‘데미안’이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앞서 얘기하였듯이 난 아직 나의 삶과 길에 대해 충분한 사고를 거치지 못하였고, 이로 인해 싱클레어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자아실현을 위한 싱클레어의 고통과 노력은 내게 뜬구름과 같은 자문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내게 학문적으로 완전해질 수 없지만 그에 다다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뿐만 아니라, 완전해질 수는 없겠지만 내적으로 보다 고양된 자신이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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