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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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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성준
댓글 0건 조회 5,311회 작성일 14-11-1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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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웁베르트 에코

 

처음에는 단순 추리소설인 줄로만 알았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는 전권 소장 하고 있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추리소설 장르를 좋아하기도 했고, 그저 머리나 식힐 겸 하여 골라든 책이 ‘장미의 이름’이었다.


처음 두 세 페이지를 읽어 내려가며 숨이 턱 막히는 듯 했다. 중세시대의 한 수도원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개인적으로 고전 풍의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니와, 모름지기 추리소설이라면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건 현장에서 펼쳐지는 두뇌 싸움과 그 속의 스릴감을 잘 표현해야 한다는 편견이 한 몫 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책 중반 이후 이야기 전개가 심화되며 내가 오해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책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읽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도사 윌리엄이 논리와 추론에 근거하여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는 모습 속에서 묘한 희열을 느꼈다. 수도사라면 으레 생각하듯이 신앙에 빗대어 혹은 의존하여 사고하고 행동할 것이라는 편견을 여지없이 깨는 모습이 참신하게 다가왔다. 이후 추리소설을 표방하지만, 중세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한 편의 대서사시와 같은 움베르트 에코의 희대의 명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 책을 알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 까지 느껴졌을 정도이니 말이다.


장서 (책을 만드는) 수도사들이 살해되어 가는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윌리엄은 사건의 팩트와 논리적 추론을 통해 접근을 해 가는 반면, 수도회의 원로급인 호르헤는 전형적인 그리스도적 신념에 기반하여 사건을 바라본다. 사건의 범인이 호르헤라는 점에서 이야기는 클라이막스에 다다르지만, 그보다는 두 수도사간의 견해 차이가 중세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호르헤가 후배 수도사들을 죽일 수 밖에 없던 것은 그들이 장서관에 있는 금서를 탐하였기 때문인데, 이는 중세 시대의 극히 단절되고 보수적인 점을 대변하고 있다. 그 당시 금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현세를 탐구하고 이성적인 사고에 기반한 탐구를 하는 책들이었는데, 이는 그리스도 기반의 내세나 영원과 같은 가치와 반대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호르헤 입장으로써 금서에 대한 탐독은 이단으로써 처단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중세 사회에서 그리스도교가 행했던 이단 척결, 그리고 신이라는 미명 아래 웃음과 소통이 억압된 모습이 여지없이 투영되어 나타난다. 새로운 지식을 억압하고, 교리에 어긋나는 발언이나 사상은 모두 이단으로 치부해 처단하는 것은 중세가 암흑이 시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웃음은 금해야 할 악덕으로 여겨졌는데, 그 이유는 예수가 웃지 않았고 따라서 예수를 따르는 수도사들에게 또한 웃음은 금지되어야 할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이 금서로 지정된 까닭이기도 하다).


비록 추리소설이지만 정체된 사회, 소통이 부재된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 말하고 있다. 중세 그리스도교에서 경전은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고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것이라는 사상이 결국 작은 수도원 안에서 조차 끔찍한 비극을 불러 일으킨 모습을 현대 사회를 살아간다고 해서 결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과연 현대라고 해서 소통이 활짝 열려있다고 할 수 있을까? 현 그리스도교 및 여타 종교들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주체인 우리가 언제나 관심을 갖고 경계하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 사회에서도 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비극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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