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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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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중건
댓글 0건 조회 5,224회 작성일 14-08-31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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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개미와 베짱이라는 동화가 있다. 좋은 봄 날씨에 노래를 부르고 놀기만 하던 베짱이와 열심히 일하며 겨울을 대비하는 부지런한 개미의 모습을 보여주고 게으름과 부지런함에 대한 교훈을 주는 이야기다. 어려서부터 들어온 이런 동화에서 보여주듯 게으름은 죄악이라 말하는 사회에서 자라왔기에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란 제목은 내게 금단의 과실 같은 달콤한 제목으로 보였다.

저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문학뿐만 아니라 수학, 철학, 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그는 전쟁을 반대하는 글을 쓰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수학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였고 전쟁 이후에도 다수의 수학, 철학 논문을 작성했다. 특히 1919년에 그가 집합론에 남긴 문제는 “러셀의 역설”이라 불리며 유명해졌다. 그는 1950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훌륭한 문학가로서도 활동하였으며, 자타가 공인하는 종교 비판가이자 반전 평화 운동가였다. 자신의 삶을 정력적으로 이룩한 사람이 바로 러셀이다.

이 책은 러셀이 잡지들에 발표했던 글들과 새로 쓴 몇 가지 글들을 묶어놓은 것이다. 십여 개의 간단한 주제에 대한 러셀의 생각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걔 중에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에 대한 생각과 같이 정치적인 이야기도 있고,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처럼 철학적인 이야기도 있다. 각각의 주제들은 어떻게 보면 서로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사고든 행동이든 지나치면 위험하다는 것이 각 주제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일반적인 생각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 제일 처음 소개된 소주제인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사실 내가 생각하던 내용과 많이 달라서 적잖이 당황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게으름’은 행동이 느리고 매사에 귀찮아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이러한 느긋함에 대한 찬양이라든가, 아니면 게으름을 어떤 비유의 표현으로 썼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셀은 게으름을 이런 보편적인 의미의 게으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여가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했다. 일을 하지 않고 쉰다는 개념으로 본다면 게으름도 맞는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과거에는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인간은 열심히 일해도 자신과 가족의 생계에 필요한 정도밖에 생산할 수 없었다. 비록 그의 아내도 남편 못지않게 열심히 일했고 아이들도 나이가 차는 대로 노동력을 보탰겠지만 말이다. 그만큼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았을 당시에는 효율이 현저하게 떨어졌고, 여가는 꿈도 꾸기 힘들 정도로 모두들 열심히 일을 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도 사제집단이나 전사 같은 소수의 특권계층은 상황이 좀 다르다. 그들은 평민들의 잉여 생산물을 공급받으며 일을 하지 않고 충분한 여가를 즐겼다. 처음에, 그들은 힘으로 강제하여 농부들을 생산케 하고 잉여를 내놓도록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한 대가의 일부가 놀고 있는 사람들을 부양하는 데로 빠져 나간다 하더라도 열심히 일하는 것이 농부들의 본분이라는 윤리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아마 근면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게 하며 농부들을 세뇌시켰으리라. 이러한 생각은 성공적으로 실현되어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 현대 사회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예전에 비해 엄청난 생산성과 효율성을 자랑하며 공급되는 양이 많아졌다. 같은 양을 생산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반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그만큼 사람들의 노동시간을 줄여주는 게 아니라 절반은 실업자로 버려두고 절반은 예전과 같이 과로에 시달리게 하는 현실을 러셀은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면 모를까 여가보다 노동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러셀은 ‘사회를 현명하게 조직해서 적정한 양만 생산해내고 근로자가 하루에 4시간씩만 일한다면 모두에게 충분한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며, 실업도 없어질 것’이며 이 때 생겨난 여유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도 여가를 가져야 한다는 다소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의 시점에서 의견을 피력한다.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면 러셀의 주장은 과학이 발전하여 생산량이 전보다 훨씬 늘어난 현대 사회에서는 게을러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냉전시대를 지나면서 사회주의의 몰락과 민주주의의 득세라는 결과를 알고있는 내게 러셀의 주장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탁상공론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러셀의 주장대로 일부 사회의 통제가 진행된다면 정말로 좋겠지만 인간은 늘 평등만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현대 산업의 흐름이 서비스 산업으로 흘러가면서 수요와 공급을 일정하게 컨트롤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그의 주장은 이상주의적 발언밖에 되지 않아 보인다.

비록 저자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기엔 개인적으로 무리가 있었지만, 책에서 보여주는 사회 문제에 대한 통찰과 깊은 생각은 독자에게 ‘문제를 바라보고 고민하며 해법을 찾아가는 일련의 논리적 사고’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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