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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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 우리 사회와 다문화
우리는 같은 시간대 안에 있어도 저마다 다른 시계에 맞춰 산다. 부모와 아이, 남자와 여자, 황인과 백인, 도시와 농촌, 더 열거하자면 환경, 직업, 생물학적 특성, 경험 등에 따라 개인 혹은 집단이 인지하는 시간의 흐름이 좌우된다. 물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정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활방식, 사고방식 등에 대하여 하루, 일주일, 혹은 그 이상의 시간 안에서 생활의 틀을 만들게 된다. 즉, 우리의 삶에 소위 ‘패턴’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패턴’에 따라 생활하고, 사회 안에서 비슷한 환경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은 개개인의 패턴에 대하여 유사성을 띄게 된다. 이러한 유사성을 이루면 비로소 사회 안에서 개개인의 삶을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이 유사성은 반대로 행동과 생각을 특정 틀 안에 머물게 하고, 자신들만을 위하는 이기심을 유발하며 세상을 보는 눈도 좁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틀 안에서 지속적인 생활을 하다보면 각자의 삶 속에서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게 되고, 더 나아가 사회의 측면에선 소외되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이 부분에 존재하는 사람들, 작품 『코끼리』에서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를 다룬다.
필자는 네팔노동자의 아들을 화자로 세워, 소년의 시각으로 이주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삶을 비춰준다. 어머니가 일찍이 불행 가득한 마을을 떠나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이 소년은 이제 고작 13살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 버린 아이다. 소년은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차별 받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친구의 손을 건드린 이유로 싸움에 휘말려야 했고, 소년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들은 그의 아버지를 가자미 짝 취급하듯 한다. 일을 하던 도중 손가락이 잘려도 이들은 하소연조차 하지 못한다. 그들은 돼지우리 같은 집에서 절망적인 삶을 보내면서도, 언젠가는 돌아가게 될 고향을 희망삼아 살아가며 이 삶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소년은 한국인과 비슷해 보이기 위해 표백제로 세수를 하고, 등장인물 쿤 역시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머리를 염색하고 짝퉁 옷을 입는다. 이렇게 하면서까지 이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사회의 구성원이기 이전에 “사람대우”를 받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외치는 사람대우는 과연 어떤 것일까? 자신들이 기업에서 노비처럼 일한다 생각하여 외쳐대는 보통 사람들의 ‘사람대우’와는 분명 다르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렇다 하여 다른 문제를 떠올리기에도 막연하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우리에게 시대의 실태를 일깨우기 위해 하나의 소설을 제시한 듯한데, 알고 보면 현실이 더 매정하다.
강남에선 단 십분만 있어도 오늘의 대한민국이 보인다. 우뚝 솟은 삼성전자 건물을 중심으로 겹겹이 서있는 고층 빌딩들의 벽면을 자동차와 버스의 경적소리와 사람들의 발걸음소리가 때리며 공명한다. 제대 했을 즈음인 듯하다. 그 한 때라기보다는 상당히 긴 기간 동안 강남의 한 출구에서 동남아권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 종이에 드문드문 적힌 글귀 중, 크게 보였던 게 “저희 한 번 봐주세요”. 내가 본 이 날의 사람들은 두 부류였다.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사람들. 그러나 애초에 이 두 부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만남의 장소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이 모습을 그저 구경거리로 삼는다. 약속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보건대, 이 벽은 웬만해선 허물어지지 않을 듯 했다. 이 날의 구세군 종소리는 간절하게 들리지 않았다. “경제는 발전했지만, 인권 의식이 약하다”는 말, 그래서 강남에선 단 십분만 있어도 오늘의 대한민국이 보인다.
가끔 우리나라는 이제 ‘다문화 사회’에 진입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면서 종종 방송매체나 신문은 이주여성들이나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결혼하여 소위 다문화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느 프로그램에서 언급하길 이러한 모습은 사실 전체 이주민 중 1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현실의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삶이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고 응답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단적인 현실의 예로 이들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용 혹은 인간관계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는다. 고용만 따지고 봐도 외국인 노동자의 장점이 값싼 노동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차별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장점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이외에 노동 환경이나 2세들의 교육문제 등에서도 이들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물론 요즘은 이러한 사회문제가 점차 많아지고 부각되면서 다문화 사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제도적 개선도 이루어지고 있는 듯한데, 과연 이것이 실효적일지는 의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겐 아직도 그들은 불법 체류자일 뿐 이니까.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민들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 중,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수는 150만 명을 넘는다. 이를 볼 때 다문화 사회라는 말은 어떤 것을 지향하기보다 현 사회의 상황을 표현하는 수식어에 더 가까운 듯하다. 또한 우리는 다문화 사회에 진입했다고 말하기 전부터 이미 다문화 사회를 이루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마치며, 무언가의 큰 계기와 함께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작은 것부터 돌아 볼 수 있는 세계적 시각을 갖추길 기대해 본다. ‘세계화’라는 공허한 구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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