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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장 지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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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현준
댓글 0건 조회 4,702회 작성일 14-06-2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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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장 지글러

 

  이따금씩 자신 내부의 문제나 밖의 일이 힘들고 지칠 때 술 한 잔 하며 몇 만원씩 써버리는 이런 우리네 삶에 지구 반대편에서 굶어 목숨이 끊어지는 생명들에게 단돈 몇 천원 기부하는 것이 힘든 것은 돈이 없거나 아까워서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실제로 5초마다 열 살 미만의 어린이 한 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는다. 현 시점에서 전 세계의 농업은 120억 명 정도는 문제없이 먹일 수 있다. 그러니 기아 문제는 불가항력적인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내 코가 석자인데’ 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 대해 돈이 없다 라기 보다는 우리 머릿속에 가득한, 일이든 무엇이든 걱정거리들로 인해 경제적 여유가 아닌 심적 여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말 그대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생활 속에서 술 한 잔 커피 한 잔하기에도 혹시나 내가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아닐까? 나 자신과 타협을 봐야하고, 흥건히 취한 뒤에는 다음날 아픈 머리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결국 후회하는, 이런 여유 없는 ‘이 곳’에서 ‘우리’는 한없이 이기적여 져왔다. 어쩌면 남들과 경쟁하는 이 사회에서 이기기 위해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노력하고, 설령 경쟁에서 이겼다고 해도 그 노력을 저울질해서 딱 그만큼의 보상을 받는 ‘이 곳’에서 한 번 잘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우리’에게 이기적이지 말라고 하는 것은 자아정체성까지 흔들리게 만드는 말이다. 이 와중에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은 오히려 위선자나, 위선도 필요 없을 정도로 배부른 사람일 것이다.

 

  생각해보라. 만약 지금 먹지 못해 목숨이 끊어질 생명이 눈앞에 있다면 그 사람을 매정하게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을 까? 용기라면 웃긴 표현이지만 실로 우리는 누군가가 죽도록 내버려둘 용기조차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텔레비전 선전에 기부방송이 나오면 너무나 용감하게도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 채널을 다른 채널로 잘만 돌린다. 그들이 우리의 눈앞이 아닌 지구반대편에 있다는 이유로 말라죽어가는 그 모습을 무시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생기는 것만 같다. 우리와 직접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고, 안 봤으니 모르는 일이라고 판단하는 것일까? 이러한 점에서 거친 인생을 달리는 치타 같다고 우리 자신들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실로는 듣기 싫고 보기 싫고 인정하기 싫은 것에 대해서는 껍데기 속으로 숨어버리고 무시하는 모양새가 거북이나 달팽이 같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성선설’이든, 흔히 종교에서 말하는 ‘도덕법’이 되었든 우리는 죽어가는 생명을 앞에 두고 돈 만원 아낄 수 있는 그릇은 애초부터 못됨을 말해준다. 하지만 우리가 신의 아들들이 아닌 것인지 어째선지 실제로 우리는 ‘도덕법’ 따위 없는 듯이 생활하고 있다. 누구나 지구 반대편에 죽어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 씩 들어보았고, 그 이야기는 어른이 되어 ‘내 코가 석자’ 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릴 적 들었던 전래동화처럼 안중 밖의 일들처럼 느껴지지만 그 이야기는 전래동화도 아니고 동물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며, 바로 우리 반대편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우리는 경쟁을 하면서 때로는 승자가 되어야 했고 당연히 패배자에게 동정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 만큼 그 경쟁은 치열했다. 수많은 패배자들의 치욕스러운 얼굴을 외면했고 그 행위에 익숙해 졌으며, 지독하게도 우리가 패배자에게 빼앗은 것은 단 1g이라도 우리의 노력에 대한 권리라고 느끼고 있으며 이것을 패배자들에게 돌려주는 일은 멍청한 일임을. 우리가 패배자이었을 때 1g까지도 싹 다 뺏겨 보았기 때문에 더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얻은 돈이 몇 천원이든, 몇 만원 이든 우리의 손안에 들어온 피 같은 재물은 우리의 노력이고 권리가 되어 다른 누구에게 나눠줄 수 없도록 그렇게 우리의 마음은 정신은 황폐해졌다.

 

 경제적인 것이 문제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심적으로 빈곤하다.

 

  이제 그들에게 나누어주는 우리의 노력의 대가를 무상으로 나누어 준다고 생각하지말자. 몸이 속한 ‘이 곳’에서의 삶이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면, 경쟁 ‘밖’에 있는 정신적인 순간만큼은 우리의 심적 빈곤함을 달래줄 물과 빵을 산다고 생각하자. 피 같은 그 노력의 대가를 나눔으로써 꺼져가는 생명을 한번이라도 살려보았는가? 살려보고 보람을 느껴보고 매 말라버린 우리의 마음에 그 물 한 방울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각자 느껴보자.

 

 그들의 배고픔만큼이나 우리의 황폐화된 정신 또한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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