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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을 다시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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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유진
댓글 0건 조회 5,848회 작성일 14-07-08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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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다시 읽고>



 

 인력거꾼 김첨지의 하루를 다룬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몰라도 김첨지의 “설렁탕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라는 명대사를 듣지 못한 사람은 없을 정도로 유명한 단편 소설이다. 그리고 6차 교육과정을 이수한 1980년대 출신들은 중학교에서 필수적으로 배운 작품이기에 요즘 세대들이 유일하게 기억하는 일제강점기의 문학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처럼 교과서에도 나오며 잊혀질만하면 매체를 통해 패러디로도 종종 언급되는, 한국 단편 소설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히는 이 작품을 최근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내신에 급급하여 감상이라는 미명 하에 분석과 이해로 수용하였던 김첨지의 일상은 처음 접했던 그 때와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먼저 이 작품은 명백히 비극적이며 슬픔을 자아낸다. 웬일인지 그날따라 금전 운이 따라주지만 그나마도 병약한 아내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반전된다. 일하러 가기 직전까지 아내에게 모질게 굴고 술 마시는 와중에도 아내가 죽었다는 짓궂은 농담을 했지만, 결국엔 설렁탕을 사간 새침한 김첨지의 눈에서는 운수 좋은 날 억수같이 쏟아졌던 비처럼 닭똥 같은 눈물이 흐른다. 절박한 하층민인 인력거꾼의 일상에서 불현듯 나타난 죽음은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김첨지의 현실을 부정하는 듯 하는 대사를 끝으로 작품은 끝난다.

 

 사실적인 1920년대 묘사와 가장 비극적인 일상에 대해 ‘운수 좋은 날’이라 언급하는 반어적 표현을 통해 당시 하층민의 비극에 대해 담담히 기술하고 있는 작품에 대한 감상은 일부분은 아내에 대한 김첨지의 애잔함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작품을 새로이 읽으면서 주목하게 된 점은 이러한 김첨지의 인물상에 관한 점이다. 김첨지의 성격은 아내를 대하는 모습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겉은 무뚝뚝하고 화를 잘 내지만 마음 속으로는 아픈 아내를 배려하고 걱정하는 새침떼기와 같은 면을 보이며, 아내의 죽음에 오열하는 좋은 남편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말 김첨지는 좋은 남편 그리고 좋은 가장일까?

 

 몸을 가누기 힘든 아내에게 걸죽하게 욕을 하고 눈을 바루 뜨지 못한다며 아내의 뺨을 후려치고, 선술집에서 아내의 죽음을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 모습은 아내를 배려하는 남편의 일반적인 모습이라 보기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아내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설렁탕의 가격은 일제강점기에 10전 정도라고 하는데 선술집에서 마셨던 막걸리 한 잔이 마찬가지로 10전이라는 점을 참고하면 특별히 고가의 음식이라 생각되지 않으며, 실제로 일제강점기를 포함하여 한국전쟁 직전까지 설렁탕은 비싼 음식이 아니었다 한다. 더군다나 김첨지가 술에 취한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러한 술값을 생각해보면 설렁탕 한 그릇 사다주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지 않았을까. 이러한 김첨지에 대한 ‘겉으로는 무뚝뚝하나 실은 자상하고 상냥한 남편’이라는 일반적인(또는 교과서적인) 평가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본 소설을 다시 읽으며 인상 깊은 점이 있다면, 작품의 내적인 면이 아니라 작품을 대하는 내 태도에 있다. 비록 내용에 하등 상관없는 사소한 부분이었으나 널리 알려져 있는 감상과 해석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를 비판 없이 받아들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스스로의 감상을 배척하고 작품을 이해로써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그동안 나에게 있어 독서란 해답지를 미리 보고 푸는 수학 문제와 다를 바가 있을까하고 자문하게 되었다. 감상문을 제출하기 위해 200자 원고지에 줄거리를 빽빽이 요약하고 남의 비평을 참고하였던 내 자신의 경직된 자세를 너무 늦게 알아챈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는 고기는 씹을수록 맛이 나고 책은 볼수록 그 맛이 다르다는 세종대왕의 말처럼 책을 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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