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더 느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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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지구촌은 월드컵의 열기로 한껏 달아올랐다. 국민들의 희망을 안고 각국의 축구대표팀들이 매경기마다 분골쇄신의 자세로 각축을 벌이고 있다.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는 관중의 응원을 잊게 하고 떨어지는 땀방울은 시야를 흐리게도 하지만 우승을 향한 선수들의 의지는 꺾을 순 없을 것 같아 보인다. 2006년 한여름 전투경찰 복무시절 나는 전남지방청에서 주관하는 축구대회 결승전 경기에 선발출장을 했었다. 수비수로써 최선의 방어를 해야 했기에 얽히고 설키고 넘어지고 부딪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겨야 된다는 신념하나만으로 경기를 하였기에 내가 어떻게 경기를 펼쳤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단지 경기 후 밀려드는 피로감과 근육통 점점 잦아드는 거친 숨소리만 생생하게 기억날 뿐이다.
우리는 월드컵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처럼 인생의 월드컵을 뛰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국민은 세계의 어떤 나라 보다 월등히 인생의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우리는 인생에서의 승리를 원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친구, 동료 보다 더 나은 위치 더 큰 성공을 이루는 것이 행복의 길인 마냥 그렇게 달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 저자 장샤오헝의 ‘느리게 더 느리게’는 우리가 맹목적으로 향하고 있는 ‘승리’가 정말 우리가 원하는 ‘승리’인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은 하버드생들이 뽑은 명강의 중의 하나인 탈 벤 샤하르 교수의 ‘행복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왜 하버드생들은 이 강의를 명강의로 지목을 하였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도 쉼 없이 달려 왔고 그리고 현재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만 모인다는 하버드대학에서 이 교수는 1등을 추구하는 하버드생들에게 내일의 성취를 위해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라고 삶의 여유를 강조하며 한 일화를 소개한다.
한 탐험가가 열대우림을 통과하며 인디언들을 고용했는데, 나흘째에 인디언들이 멈춰버리고 꼼작하지 않았다. 왜 안 가느냐는 탐험가의 질문에 인디언들은 영혼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여기까지 너무 빨리 오느라 영혼이 뒤처지고 말았으니 그 영혼이 우리를 따라잡을 때까지 적어도 하루는 기다려야한다고 했다는 일화다. 우리는 인디언들과 같이 영혼을 기다릴 여유가 있을까? 영혼을 기다린다고 한다면 과연 몇 명의 사람들이 동의를 할 것인가? 차라리 잠깐 쉬고 도착해서 푹 쉬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평생 쉬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샤하르 교수가 언급한 느릿느릿한 여유에서 얻는 행복을 경험한 적이 있다. 단순히 휴가를 받고 떠나는 짧은 여행이 아니라 느리게 살았던 1여년간의 호주생활이였다. 무일푼으로 외국을 나갔지만 무일푼이라는 것으로부터 어떠한 열등감도 느끼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나를 안타깝게 보거나 비교하지 않았다. 외국 땅에서 나의 목표는 단순히 1년 동안 잘 지내다 가는 것이였기에 누구보다 뛰어나야 된다는 경쟁심도 없었고 성공해야겠다는 막연한 의지도 없었다. 오직 경쟁자는 나였고, 내일 놀기 위해 오늘 일하는 매우 단순한 삶이였다. 오늘 벌고 있는 돈이 어디에 쓰일 것인지, 오늘 하는 일이 내일의 여유를 위한 것이라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기에 지금 행하는 일이 행복한 것은 당연지사였고 인생 곳곳에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따라서 마음과 몸이 살쪄서 인생에서 가장 건강했던 때로 기억이 남는다.
지금 덜 쉬게 되면 미래에 더 쉬게 될까? 더 행복 할까? KAIST에 재학하고 있는 모든 학생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YES일 것이라 간절히 바라며 생활을 하고 있다. 일찌감치 잘못된 질문임을 깨닫는 학생들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우울함에 빠지기도 하여 잘못된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KAIST 재학생들은 샤하르 교수가 말하는 느릿느릿하고 여유로운 삶을 통한 경험적 지식습득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 경험의 의미는 중요치 않다. 단지 여유로움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통한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 그 자체에 큰 가치가 있는 것이다. 뿌리가 튼튼하지 못한 나무는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쓰러지게 마련이다. 반면 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키가 작더라도 언제든지 클 수 있는 힘을 가진다. 보이는 성과를 위해 덩치만 키우다보면 언젠간 쓰러진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하지만 삶의 여유를 가지고 슬픔, 절망, 기쁨, 행복, 사랑 등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다양한 감정을 배우고 그러한 감성과 더불어 이성을 활용하는 법을 배운다면 누구보다 튼튼한 뿌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단지 조금은 느리게 자라지만 결국엔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샤하르 교수의 ‘느리게 더 느리게’를 통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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