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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미스 해전- 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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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정민
댓글 0건 조회 5,929회 작성일 14-08-29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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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미스 해전- 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 베리 스트라우스, 이순호 옮김

 

세계사 큰 영향을 끼친 해전을 엄선해서 세계 4대 해전이라 명명하고 많은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져왔다. 세계 4대 해전 중 가장 먼저 일어난 해전은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왕인 크세르크세스가 직접 부왕의 뜻을 이어받아 마라톤 전투 이후 그리스를 세 번째로 침공하여 벌어진 전투이다.   

기원전 8세기경 폴리스(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가 형성되면서 그리스는 신화와 영웅에 대한 세계관을 접고 서양 문명의 모태라 할, 그리스 문명기로 접어들게 된다. 이후 전개된 그리스인들의 활발한 식민 활동과 해외 진출로 폴리스들은 사회, 경제적 변화를 맞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귀족과 세습왕권의 기존 정치체제도 흔들리게 된다. 그 결과 기원전 6세기 무렵 아테네를 비롯한 폴리스들이 평민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는 정치개혁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그리스 민주정치의 출발점으로 현대 민주주의의 토대이다. 아테네와 달리 상공업이 발달하지 않은 스파르타 국가는 사회 구조상 군국주의의 길을 걸었으나 그 역시 본질적으로는 민주주의 국가였다.

 아테네을 중심으로 성립된 도시국가들이 소아시아의 일부와 서지중해 지역으로 그리스 세계의 판도를 넓히며 민주정치의 기반을 구축해 가고 있던 기원전 5세기 말, 페르시아는 당시 엄청난 힘을 가진 제국이었다. 동방에서 오리엔트를 통일하고 제국의 관심을 유럽으로 쏟기 시작했다. 그들은 막강한 전투력과 방대한 자원으로 소아시아의 그리스 식민 도시들을 손쉽게 정복했다. 페르시아는 기원전 492년 그리스 본토 침입을 시도하게 되고 이로써 페르시아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이 첫 번째 그리스 원정은 함대가 폭풍으로 파괴되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간다. 그리고 2년 뒤 페르시아 다리우스왕은 아테네 북방 마라톤 지역에 군대를 상륙시킨다. 이 무렵 아테네는, 일부 폴리스들의 비협조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밀티아데스의 지휘 아래 애국심을 바탕으로 페르시아 군을 맞아 승리를 거두게 된다.

마라톤 전투 이후 10년뒤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왕은 그의 아버지인 다리우스 왕과 같이 그리스에 눈독을 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그리스를 침략한다. 이에 그리스의 각 국가들도 그 동안의 적대적 행보를 접고 페르시아 침공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여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1,200여 척에 이르는 대 함대와 막강한 지상군을 거느린 페르시아 대군을 그리스 군이 단결심 하나만으로 당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페르시아 군이 테르모필라이 협로에서 스파르타 군을 격파에 그리스 군의 패색은 더욱더 짙어 졌다. 이 위기에서 그리스를 구해 준 인물이 바로 테미스토클레스다. 어느 큰 전쟁이나 그렇듯이 살라미스 전쟁에도 소위 영웅이라 일컫는 인물이 있는데 그리스에게 영웅은 바로 테미스토클레스이다. 자신의 노예를 이용하여 페르시아 군에게 정보를 흘려 야밤에 기습을 하도록 유인하고, 살라미스를 떠나려는 다른 그리스인들을 어쩔 수 없이 전쟁으로 몰고 간 그의 계략은 뛰어났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은 그리스 본토를 점령했기 때문에 굳이 해전을 치르지 않아도 무방했다. 그런 그를 살라미스 해협으로 끌어들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연출한 것은 테미스토클레스의 지략이었다. 어찌 보면 살라미스 해전은, 지상전에서 승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살라미스 의 좁은 해협으로 페르시아의 1,200여 척의 함대를 유인함으로써 전술상의 이점을 이용해서 승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아침 전투 중에서 가장 볼 만했던 것은 역시 페니키아인 부대(페르시아)와 그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던 그리스 함대 간의 교전이었다. 페니키아인의 날랜 함선들은 재빨리 아테네 함선 열을 둘러싸거나, 대열 속으로 진입하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테네 함선 열의 양측이, 돌출된 갑으로 방어되고 있어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아테네 함선들은 중앙선에 빈틈없이 촘촘한 대열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속도가 빠른 페니키아인 함선들이 공격하는 시늉을 하며 돌진을 시도해 보기도 했을 것이나, 아테네 함선 열은 도무지 틈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페니키아인 함선들은 공격과 퇴각을 반복했을 것이다. 몇 가지 점이 페니키아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우선 살라미스 해협의 제한된 공간 안에서는 페니키아인들이 최고 장기로 여기는 전술을 구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요소는 함선 수가 너무 많다 보니 어렵사리 전술을 구사하려 해도 가까이 있는 아군 함선들끼리 부딪힐 확률이 높았다.”

 그리스의 테미스토클레스가 뛰어난 통찰력으로 지휘관으로써 승리를 계획했다면 그 계획을 실현 시킨 것은 노예나 하층민인 노잡이들이 들이었다. 그 당시 해전에 쓰인 삼단노선은 갑판 위에 지휘관을 포함한 12명의 궁수와 병사가 있었지만 그들이 움직일 경우 배는 쉽게 중심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실제 전속력으로 배를 추진시켜 적선을 들이받는 공격을 해야 하는 해전에서는 갑판아래의 100명이 넘는 노잡이들이 실제 전투인원이라 할 수 있다. 노잡이들은 구령에 맞춰 노를 저어 주는 단순한 기계에 불과한 존재였음에도 그 역할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살라미스 해전이 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이점이다. 이 책의 저자 배리 스트라우스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이 해전을 귀족(평민)의 전투가 아닌 ‘이름 없는 민중의 전투’이며 ‘그리스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말하고 있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의 자유는, 평범한 이름을 가진 보통 사람들에게 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진정 민주주의를 건 전쟁이었다. 아테네 부대의 주요 키잡이들 역시 민주주의의 산물이었다. 그들은 고물에 서서 양손에 하나씩 키를 잡고 배를 조종했다. 배를 조종하는 순간순간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했고 키잡이는 마음이 안정돼 있고, 아는 것이 많고 끈덕진 면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들의 특질이야말로 아테네 민주주의가 장려한 기질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를 배출한 사회는 우수한 키잡이들도 양성했다는 사실이 이제 곧 밝혀 질 것이다.”

“페르시아 기마 귀족이 급습 무기로 오랫동안 애용해 온 막강한 이란 화살도 어부와 뱃사공들의 보잘것없는 도구인 ‘단 한 번의 노젓기’에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살라미스 해전으로 페르시아 전쟁의 모든 국면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후에도 그리스군은 지상에서 여러 번의 전투를 치르고 페르시아 군을 완전히 격파한 뒤에야 진정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이 살라미스 해전의 패배를 계기로 그리스 침공을 단념했다는 점에서 이 전투는 결정적이었다.

 이 책 에서는 살라미스 해전을 단순히 진술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생생하게 재현했다. 고대 작가들의 해설과 더불어 시시각각 변해 가는 해전의 전개 상황을 장소, 날짜, 시간, 인물별로 재구성해 놓았다. 또한 기원전 5세기 삼단노선을 재현한 올림피아스호를 타고 저자가 직접 살라미스 해협에서 당시의 상황을 시연해 보았기 때문이다. 살라미스 해협의 물살, 바람, 파도, 그 밖의 다른 기후 조건들도 저자가 몸소 체험한 것에 토대를 둔 것이라 더욱 실감이 났다. 

 또 하나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 힘이었다. 페르시아가 패한 요인 중 전술적인 부분보다는 막강한 왕권이 한 몫을 했다. 그리스 함대가 도시간의 경쟁을 접어두고 공동의 선을 위해 싸우는 동안 페르시아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왕의 명령에 굴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페르시아 함대의 각 부대는 왕의 눈에 들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즉, 자유는 목숨을 걸어도 좋을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다 보니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힘을 합쳤지만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어차피 다른 사람은 그 권력을 누리지 못할 것이므로 별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스의 테미스토클레스의 명석함이 타고난 것이라면 명석함으로부터 나온 책략이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아테네의 자유로운 시민사회와 민주주의가 발판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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