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에르와 아마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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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 (Peter Shaffer's Amadeus, 1984)
나는 음악에 대해 아주 무지하다. 유럽의 고전적 음악 또는 클래식(classical music)이라고 불리는 것 중 알게 모르게 자주 들어서 어느 정도 익숙함을 가진 멜로디는 있지만, 단지 그뿐이다. 학창시절의 음악 시간에 ‘사계’나 ‘꼭두각시 인형’과 같은 곡들을 듣고 어떤 내용인지 설명도 들었지만, 그때는 나의 가슴을 그다지 흔들지 못했다. 다만, 집에서 자주 들었던 피아노 카세트 테잎이 있었는데, 아마 피아니스트의 이름이 ‘리처드 클레이더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곡들의 제목은 기억하지 못 하지만 그때 그의 피아노 연주는 아주 즐겨 들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그 시절에 피아노나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 연주를 직접 보고 들었더라면 아마 내가 클래식과 조금 더 친해지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유년기를 지나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가며 어른이 되면, 자기의 과거에서 아쉬웠던 순간을 종종 되돌아 보게 되는데, 나의 경우에는 음악이 그 중 하나이다. 어머니의 음악과 노래를 좋아하시는 성향을 이어 받아서인지, 나도 세상은 음악 없이는 못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또래 친구들처럼 대중가요를 종종 듣는 수준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런데 커서 보니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음악이 있으며, 정말 아름다운 선율을 이끌어내는 놀라운 창작물을 대하게 될 때마다 음악의 위대함에 놀라게 되었다. 비단 클래식뿐만 아니라 요즘 나오는 대중가요, OST, pop, new age 등 모든 음악들이 정말 놀랍도록 창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음악’에 대해 조금씩 다가갈수록 조금 더 일찍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그리고 그 동안 어렵다고 생각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몇 백 년이 넘도록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명곡들을 작곡한 음악가들에 대해 조금씩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천재 작곡가로 알려져 있는 ‘모차르트’의 일생을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를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개봉한지 약 30년이 되었지만 지금 보아도 충분히 짜임새 있고 볼만한데, 특히 모차르트의 곡들을 배경 음악으로 적절하게 이용하여서 음악이 영화와 아주 잘 어울리게 연출되었다. 영화의 제목 ‘아마데우스’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라는 이름에서 따왔으며, 이는 영화가 모차르트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영화의 제목을 ‘살리에르’로 바꾸어도 될 정도로 살리에르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한 노인 (살리에르)이 죄책감에 자결을 시도하는 모습에서 시작되며, 정신 병원으로 옮겨진 후 신부에게 자신의 죄책감에 대한 고백을 하면서 자신(살리에르)과 모차르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살리에르는 질투심이 매우 많다고 스스로 이야기 한다. 특히, 어린 나이에 교황청에 초청되어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차르트가 부모(아버지)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매우 부러워했다. 위대한 작곡가가 되고 싶어 했던 어린 살리에르는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아버지를 미워하며 교회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기도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죽임을 맞자 이를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게 된 신의 뜻이라고 받아 들였다. 그리고 그는 비엔나로 간 뒤 궁정음악가가 되어 황제 옆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작곡하게 되었다. 자신이 꿈에 그리던 일을 할 수 있었기에 살리에르는 다른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고 여자나 다른 유혹에 빠지지 않았으며, 가난한 음악가들을 돕는 등의 선행을 베풀고 정도를 지켰다. 평범한 시골 출신의 아이였던 사람이 꿈꾸어 왔던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어 행복해하였지만, 이는 천재 한 명이 나타나고 난 이후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4살 때 협주곡을 작곡하고 7살 때 교황곡을, 그리고 12살에 오페라를 작곡한 모차르트가 비엔나에 자신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나타나게 되었다. 그의 천재성은 어린 시절부터 명성을 떨쳐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되었는데, 살리에르는 그런 놀라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기 위해 그의 연주회를 찾아 왔지만 모차르트의 예의 없고 방정 맞은 모습에 충격을 받게 된다. 그런 음탕하고 천방지축의 사내가 너무나 놀라운 음악성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살리에르는 질투심을 크게 느끼게 되었다. 모차르트의 무례한 행동은 곧 바로 귀족이나 교황 등에게 거슬리게 보이게 되지만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한 모차르트는 그런 사람들을 오히려 비웃게 된다.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싫어하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황제가 모차르트를 궁으로 초대 했을 때 살리에르가 준비했던 행진곡을 황제와 다른 신하들이 보는 자리에서 모차르트가 원곡의 부족함을 지적하며 피아노로 연주하다가 편곡 해버린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그 일은 원 작곡자를 비웃고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특히나 어설프게 치던 황제에 대한 배려 없이 듣기만 하고 바로 거침 없는 피아노 연주를 보여줬던 점은 황제를 무안하게 만들어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살리에르가 연정을 품으며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 정도로 아꼈던 한 소프라노 가수를 모차르트가 앗아갔다는 것을 살리에르가 알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살리에르는 자신에게 그런 능력을 주지 않은 신을 거부했고 그는 모차르트를 저주하게 된다.
모차르트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자신을 다른 일반적인 음악가들과 동등하게 비교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귀족이든 황제든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으며, 자신의 특별함을 인정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의 그런 행동은 결국 스스로의 파멸을 이끌게 되었다. 무례한 행동에 대한 여러 귀족들의 견제와 함께 스스로의 고립성으로 인해 그는 어떤 일도 구하지 못한 채 지내게 되어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연주회를 열어줄 고용인은 나타나지 않고 다른 어떤 일자리를 만들 수 없게 되자, 그제서야 모차르트는 무엇인가 심각성을 깨닫게 되는데 살리에르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심지어 모차르트의 아내 마저 나서서 살리에르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이때부터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의 어려운 경제력을 자신을 통해서 풀어나갈 수 있게 만들어 자신에게 의존적이게 만든다. 살리에르는 겉으로는 모차르트를 도와주는 척 하지만, 하녀를 보내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보고하게 만들었으며, 심지어 모차르트의 아버지 형상을 한 채로 그의 앞에 나타나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모차르트는 어렵게 열게 된 연주회에서 금지된 내용을 다루어 논란을 일으키고 공연 중에 황제가 하품을 하게 만들었지만, 살리에르는 황제의 마음에 드는 오페라를 선 보이면서 다시금 황제의 신임을 얻게 된다. 모차르트는 날이 갈수록 술에 빠져 지내며 자신을 망가뜨리게 되고,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무대는 점차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다. 결국 그는 쓰러져 자신의 몸을 가눌 수 없게 되는데, 이로 인해 그의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곡들을 살리에르가 받아 악보에 적어 주는 상황으로 이끌게 된다. 이 부분은 사실 이 영화에의 백미이다. 자신의 머리 속에 들어있지만 죽어가는 중에 악보로 적을 수 없는 모차르트와 자신에게 그런 능력은 없지만 그의 음악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살리에르, 두 사람 중 한 명만 있다고 하더라도 완성될 수 없는 곡을 두 사람이 함께 쓰고 있는 장면이다. 서로 떨어져 합쳐질 수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 결국 하나가 되는 이 부분에서 모차르트는 살리에르에 대한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결국 죽음을 맞는다.
천재성을 가진 모차르트의 죽음은 너무나 비참했다. 살리에르를 포함한 일부의 지인들과 가족만이 그의 곁에 남아 있어 주었고, 그가 묻힐 때는 제대로 된 묘 조차 가지지 못한 채 다른 사채들과 함께 묻히는 비극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세기를 넘나드는 놀라운 곡들을 만들어 내었던 천재적인 작곡가의 말년이 너무나도 비참하게 그려져서 보기에 가슴이 메어진다. 살리에르도 매우 뛰어난 음악가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가 만난 모차르트는 노력으로 닿을 수 없는, 자신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수준의 존재라는 것을 인식한 이후에 지속적인 열등감에 시달리고 결국 그의 시기심은 모차르트를 죽이고 자신을 평생 고통 속에서 살게 만들었다.
살리에르 증후군 이라는 말이 있다. 남에 비추어 자신이 부족해서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해서 열등감과 좌절감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사람이 가진 심리적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앞선 글에서 적은 것처럼 이 영화의 제목을 ‘살리에르’로 바꾸어도 이상하지 않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영화의 내용이 살리에르의 관점에서 그에 대한 질투심과 자신의 행동에 따른 후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시대적 분위기를 잘 느끼게 해주도록 만든 배경과 많은 참가 인원, 그리고 장면마다 매우 어울러지게 연출된 배경 음악 등은 영화에 깊이 빠져들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계속 모차르트의 특유의 웃음 소리와 놀라운 음악, 그리고 그를 시기하면서도 그가 쓴 악보를 보며 희열에 빠지는 살리에르의 모습이 계속 머리 속에 잔상으로 남아 있다. 여느 예술가들처럼 작품에 담긴 작가의 극적인 인생을 알게 되면 그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데, 영화 초반에 나왔던, 너무나도 익숙한 곡,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무지크(Eine kleine Nachtmusik)를 다시 찾아 들어보니 이렇게 놀라웠던 곡이었나 새롭게 느껴진다. 그 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클래식 음악에 대해 조금 더 다가선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http://youtu.be/o1FSN8_pp_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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