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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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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중건
댓글 0건 조회 4,317회 작성일 14-06-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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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 히가시노 게이고

 

한 소녀가 성폭행 도중 사망했다. 가해자는 미성년자 2명. 정황을 알게 된 소녀의 아버지는 우발적으로 가해자 소년 1명을 살해하고 나머지 1명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건을 담당한 형사는 또 하나의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소녀의 아버지를 쫓아야 한다. 미성년자라서 가벼운 벌을 받게 될 가해자 소년들을 지키기 위해 피해자의 아버지를 검거해야 할까? 바로 이러한 딜레마에 관한 소설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이다.

최근의 영화화에 힘입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 책을 보게 되면서 그간 읽어왔던 작가의 추리소설들을 생각하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표면적으로는 딸을 죽인 가해자들을 향한 아버지의 복수극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그 내면에는 청소년 보호법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다. 단순히 복수극에 초점을 두지 않으며, 복수를 하려는 사람과 그 복수를 도와주려는 사람, 도와주려는 사람을 막으려는 사람, 방관하는 사람 등등의 시각에서도 이야기를 전개한다.

작가가 초점을 둔 것은 소년범죄이다. 아무리 잔혹한 범죄를 저질러도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갱생’의 이름 아래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나는 미성년자들. 그리고 그들을 보면서 피눈물을 흘리는 피해자와 그 가족. 법과 사회의 부조리함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문제이다. 피해자의 아픔에 대해서는 너무도 소홀한 법은 과연 법이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더불어 슬픈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사회 시스템의 결함을 인지 하고 있으나, 적극적으로 변화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피해자 아버지의 복수에 내심 동조하면서도 ‘심정은 이해하나 경찰에 맡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세상, 그리고 자기의 생활만 보장되면 다른 사람의 일은 아무래도 좋다는 세상 속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는 묻혀버리기 일쑤인 것이다.

책의 결말을 통해 작가는 어떻게 해야 한다 라는 식의 생각을 독자에게 주입하지 않는다. 그저 빠른 전개로 상황을 마무리하고 독자에게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법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인가? 정말로 옳은 것이면 왜 끊임없이 개정되고 있으며, 경찰은 그러한 법을 지키기 위해 하염없이 뛰고 있을까? 작가는 작 중 인물을 통해 독자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이 법이라면 소년법이 과연 존재가치가 있는 것일지 의문이다. 법에 감정이 들어가선 안 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사람들이 공감 할 수 없는 법은 그 의미가 퇴색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법은 가해자의 갱생보다 짖밟힌 피해자의 마음을 더 헤아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상황에 따른 법의 적용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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