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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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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성준
댓글 0건 조회 4,635회 작성일 14-07-0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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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알베르 카뮈


 ‘부조리’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이치에 맞지 아니하거나 도리에 어긋남을 뜻한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살며 ‘부조리’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면 좌절, 회의, 격노와 같은 어두운 감정이 수반되고 세상에 대한 원망과 경멸을 느끼기도 한다. 다시 말해, ‘부조리’ 함에는 단순히 이치에 맞지 않은 것을 넘은 근본적인 무엇인가가 있고, 이는 사회 혹은 세상과 자아 간의 비합리성에 기인한다. 카뮈의 <이방인> 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재판에서 느낀 것, 재판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뫼르소가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보다는, 어머니 장례에 대한 태도에 관한 것 같은 종교적, 도덕적 관례를 따르지 않는 뫼르소의 기존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두고 스캔들을 만드는 모습으로부터 뫼르소가 느낀 부조리함이 그것이다. 사건의 본질인 아랍인 살해 경위로부터 동떨어져도 한참 떨어진 재판. 작품 속 뫼르소의 평소 행실이 질 좋지 않은 친구를 사귀고, 주위에 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태도로 비추어 보아 사회적으로 인식이 좋지 않은 점으로 보아, 제 삼자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을 빌미로 뫼르소의 행동을 제제하려는 목적성을 느낄 수 있겠다. 하지만 뫼르소 본인에게 느껴지는 본질(아랍인 살해 사건)과 실존(재판 과정)사이의 괴리는 그 무엇보다도 고통스럽고 증오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재판 내내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모습을 띈 것, 심지어 아랍인을 살해한 이유가 무엇이냐에 대한 답변을 ‘태양 때문에’라고 한 것이 영 이해가 안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주였다 한들 무엇이 그리 대수이겠는가?


 뫼르소의 모습 조금 더 깊은 곳에는 실존주의 철학이 존재한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실존주의는 본질(essence)와 실존(existence)에 대한 것이며, 본질은 실존에 대립된다. 인간으로 대입시켰을 때, 실존이란 누구나 가지는 육체의 덩어리이며 본질은 하나의 육체 덩어리를 다른 육체 덩어리와 구분시켜 주는 그 무엇이다. 친구 A와 친구 B가 있을 때 먼 곳에서 희미한 실루엣만 보일 때는 그가 A인지 B인지 혹은 사람인지 사물인지 조차 알 수가 없다. 즉, 본질이 결여되어 있는 실존 자체일 뿐이다. 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가서 그가 친구 A라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그 존재는 본질을 가지게 되어 비로소 친구 A가 되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에서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인간의 육체는 실존의 탄생 이전에 그것을 규정할 본질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유 없이, 우연하게 이 세계에 던져진다. 이러한 사상으로 인해 실존주의에서는 세계 내에 던져진 인간에게 미리 정해진 규범이나 규율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무엇이 정의롭고 무엇이 악덕인지, 무엇이 기쁨이고 무엇이 슬픔이지 조차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다. 이러한 모습은 뫼르소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도 있고 안 피울 수도 있다. 여자를 등쳐먹고 사는 레몽과 친구가 되어도 좋고 안 되어도 좋다. 연인 마리와 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통상의 기준으로 서열화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의미가 사라진 모습 속에서 뫼르소의 입버릇인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어요’가 떠오른다. 특히, 사형 선고를 받은 뫼르소에게 죽음 앞에서 더더욱 그 무엇도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사람인지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잠시나마 생겨났지만, 곧 세계의 무관심 앞에 마음을 놓고 자유로운 죽음을 맞이한다.


 이러한 지독하리만큼 회의적인 사상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합리를 찾고자 하는 인간과 비합리적인 세상 사이에서 발생하는 부조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으로써 생각할 여지는 있다. 지하철 역에서 누군가가 나를 밀었고 그 바람에 내가 또 누군가를 밀쳤는데 하필 그 사람이 철로에 떨어져 들어오던 기차에 치어 죽었다. 살인의 의사는 없었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있는 이러한 부조리함. 이와 비슷한 수 많은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합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합리도 아니요 비합리도 아닌 ‘부조리함’ 그 자체. 이러한 개념이 이 세상을 사는 데에 때로는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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