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계급 (The fifth estat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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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계급 (The fifth estate, 2013)
널리 알려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을 언급한지 벌써 35년이 되었으며, ‘권력이동’을 출간한지도 25년이 되었다. 그가 미래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가졌다는 점을 알게 해준 (1970년에 출간된 ‘미래의 충격’도 포함한) 세 가지의 저서를 보면, 권력의 원천이 힘과 돈으로 대표되던 과거와 달리 권력의 본질 자체가 변화하면서 컴퓨터 및 정보 기술로 대변되는 지식 정보 계층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권력이동’에 따르면, 정보화 사회에서는 국경을 초월한 지식을 바탕으로 권력 이동의 폭과 속도는 매우 광범위하고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그가 약 30여년 전에 쓴 이러한 저서들은 비록 세부적인 자세한 사항을 다루지는 않지만 거시적 시각에서 전반적인 인류의 사회 흐름의 변화를 매우 잘 예측하였다. 그의 예측대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는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된 전자 산업과 정보 산업의 발달을 기반으로 하여 정보의 흐름은 빛의 속도로 이동하고 있으며, 많은 정보와 지식들로 인해 우리의 집단적 지적 수준은 과거의 어느 시기보다도 높아지게 되었다.
그런데 ‘정보’라는 말 자체는 ‘진실’의 동의어나 유의어가 아니며, 그 속에는 과장과 왜곡, 날조된 사실들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넘쳐나는 정보의 ‘공해’ 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찾아내는 것과 그에 대한 ‘진실’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기관과 언론 그리고 거대 인터넷 사이트와 같이 정보를 만들어내거나 관리하는 집단, 그리고 정치인, 법조인 등과 같이 관련 법안을 다루는 집단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인터넷과 소셜 시스템의 발달로 현대의 정보 전달 방향이 과거처럼 일방적이지 않고 양방향성을 띄고 있지만 한쪽은 집단적이며 시스템적으로 정보를 생산, 관리하고 전달하는 반면 일반적인 개개인들은 다양한 정보를 다루기는 하지만 매우 제한된 사실에만 접근 가능하며 조직적이지 못하고 시간이나 돈과 같은 재화의 한계로 인해 그 깊이가 얕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중은 집중성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이미 정보의 생산과 관리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최근 대중들이 스스로가 독립적으로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주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를 다루는 집단에 대해 충분히 견제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점이다. 게다가 일부의 사례를 보면 대중들의 노력으로 정부, 지자체, 고위 공무원, 언론, 기업 등등의 문제점들을 다양하게 밝혀내기도 하는데, 오히려 이것은 대중들이 그러한 판단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 것으로, 이는 마치 가둬진 연못 속의 물고기가 주인이 흘린 빵 부스러기를 찾아 먹으면서 자기가 주인으로부터 먹을 것을 쟁취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과 진배없다. 대중들이 권력 집단의 허점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워낙 다양한 시선과 방향으로 문제를 다루기 때문인데, 그러한 허점들이 권력 집단이 무너질 만큼 크지도 않으며 찾아낸다고 한들 이미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룰 속에서 이겨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단호하게 말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정보를 다루는 권력 집단과 대중 사이에 대등한 관계는 절대로 형성될 수가 없다. 따라서 그들이 (사실상)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들에 대한 진실 여부의 판단 기준 조차 거의 대중의 힘이 아니라 그들에 의해 정해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국내외의 사정을 살펴보면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권력 집단을 흔들어낸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정상적인 룰로 이길 수 없는 이 관계를 깨뜨렸던 그와 같은 사건들의 핵심은 바로, ‘내부고발자’이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가치판단은 일단 제쳐두고, 나는 지금과 같은 정보의 방향성과 그 진실성에 대해 어느 정도 만족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다시 말하면, 흔히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이 옳을까. 최근에 본 영화 ‘제 5계층’은 ‘진실’은 무조건 알리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 고민을 하게 만들면서 권력과 정보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이 영화는 전문 해커 출신의 ‘줄리안 어샌지’와 그의 초창기 동료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의 실화를 다룬 것으로, 이 두 사람은 정부나 기업 같은 거대 권력 및 이익 집단의 왜곡된 사실을 파헤쳐 진실을 밝히기로 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전무한 폭로사이트인 WikiLeaks를 만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WikiLeaks는 국내에서는 크게 그 영향력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영국 등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정부와 기업들과 같은 권력과 이익 집단에 대해 매우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그들이 폭로한 사건 중 가장 큰 파장을 준 것으로는, 2010년 이라크에서 미군 아파치 헬기가 기자를 포함한 민간인 12명을 사살하는 동영상을 편집 없이 그대로 공개한 것과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관련 기밀 문서 수십만 건을 편집이나 삭제 없이 그대로 공개한 것이다. 이러한 폭로는 지금까지의 언론 역사상 유래가 없는 수준으로, 정보를 여과 없이 드러낸 것에 대해 일부 기성 언론들은 매우 비판하기도 하였지만 WikiLeaks의 엄청난 정보력과 폭로에 대해 국제적 지지를 이끌어내게 되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이 되었다. 이 WikiLeaks가 다른 어떤 언론이나 기관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특수 암호 프로그램을 통해 정보 제공자의 신상을 매우 높은 수준으로 보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래 매우 똑똑한 해커 출신으로 과거에 이미 미국방부 등을 해킹한 이력이 있는 어샌지는 언론의 자유와 검열을 반대해 정부나 기업 등의 비윤리적 행위와 관련된 정보를 국민들의 알권리를 보호하고 국민들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최대한 정보를 공개하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했던 것이 정보 제공자의 신원을 철저히 보호하는 것이었고 그는 높은 수준의 암호화 기술을 개발하여 그 플랫폼을 통해서 내부고발자와 같은 정보 제공자의 신상을 안전하게 보호해주었다. 어샌지는 혼자서 하기에 일이 벅찼기 때문에 다니엘과 함께 시작을 하였고 영화는 그 시점에서부터 시작한다. 두 사람이 처음에는 블로그나 트윗 같은 인터넷 수단을 이용하며 시작한 정보 폭로는 이후 많은 지지를 얻게 되고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하여 WikiLeaks라는 폭로 전문 사이트를 개설하게 된다. 그들의 서버는 법률적인 문제로 인해 스웨덴, 벨기에와 같이 기밀을 공개할 때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사이트의 운영은 알려지지 않은 자원봉사자들로 인해 이루어지고, 운영비도 기부금으로 충당된다고 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핵심은 세 가지 정도인데, 하나는 설립자인 어샌지와 다니엘에 대한 것으로, 그들은 처음 시작할 때의 순수한 의도는 같았지만 운영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며 이로 인해 결국 두 사람은 결별하게 되는 점이다. 여기에서 영화는 어샌지가 편협한 성격을 가지고 다니엘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사실 이 영화가 다니엘이 쓴 ‘Inside WikiLeaks’를 많이 참조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사람을 온전히 담아내었다고 보기 힘들다. 그래도 본래 변덕스럽고 괴짜같은 행동과 사고를 가지고 있는 어샌지 옆에서 기술과 운영 및 개인의 활동에 대해 다니엘이 밸런스를 잡아주었기 때문에 WikiLeaks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다른 한 가지는 두 사람이 결별되는 이유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알권리라는 이름 하에 정말 숨김 없고 편집 없이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점에 대해 과연 그것도 윤리적으로 옳은 행위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방부 내부에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엄청나게 많은 미공개 기밀 자료를 빼낸 브랜들리 매닝 일병은 군사재판에 기소되었지만 그로부터 넘겨받은 방대한 자료를 여과없이 공개하였고 이는 미국의 정치 외교적 활동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자료에는 해외에서 몰래 활동하고 있는 많은 정보원들과 활동대원들의 인적사항과 작전 내용이 적나라하게 그대로 노출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안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따라서 알권리와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될 치명적인 부작용 (생명의 위협한 사실을 밝히는데 생명의 위협이 발생하는 아이러니) 사이에서 무엇이 우선되어야 할 것인가 고민되게 한다. 마지막 핵심은, WikiLeaks도 정보를 확보하여 제공한다는 점에서 언론이며 이는 기성 언론과 다를 뿐이지 결국은 파급효과가 훨씬 큰, 거대한 권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어샌지, 1인에 의해 현재에도 진행 중인 WikiLeaks가 제동을 잃고 그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면 더욱 파괴적인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WikiLeaks의 설립자 줄리언 어샌지는 현재 잉글랜드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망명을 신청하여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이는 극단적인 무정부주의자라고도 하며 비판하고 어떤 이는 인권주의자라고 하며 지지하기도 한다. 이번 영화에 대해서도 (본인 생각에) 편협한 시각으로 제작되는 것에 대해 어샌지는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분명한 점은 그의 활동은 매우 급진적이며 극단적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그는 분명 기존의 기성 언론을 뛰어 넘는 제 5계급, 새로운 정보 기술을 활용하는 새로운 정보의 혁명,을 만드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 영화 또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가 진실인지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정보를 다루는 권력들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과 함께 알권리에 대해 고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어샌지가 한 말을 남겨본다.
'진실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며, 모두 자신의 이야기만을 할 뿐이니, 진정 알고 싶다면 그 너머를 스스로 알아내려 하는 그 행위 자체에 힘이 있다.'
- 2014. 04. 09 작성, 2014. 04. 29 관리자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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